“왕복 600km 상경 진료 그만” 의료공백에 동네병원 가는 환자들
전국 병원 5200곳과 네트워크 구축
전공의 이탈후 정부 지원금 확대… 삼성병원 회송 환자 두달새 18%↑
“수가제 개편 뒤따라야 정착 가능”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회송상담센터.
2020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이원희 씨(63·여)는 간호사와 상담을 마친 뒤 웃으며 일어났다. 이 씨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후 경과 관찰을 위해 퇴원 후에도 6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했다.
울산에 사는 이 씨는 검사를 받을 때마다 직장에 이틀씩 휴가를 내고 왕복 600km 거리를 오갔다. 병원 측은 이날 상담을 마친 후 앞으로 이 씨가 집에서 가까운 부산 기장군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해당 병원에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의료기록도 전송했다. 이 씨는 “만약 상태가 악화되면 수술했던 이 병원 교수님이 다시 진료해주신다고 해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 환자 돌려보내면 지원금 준다
복지부는 또 2월 중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대거 병원을 이탈하자 대형병원을 응급·중증 환자 위주로 전환하면서 경증 입원 환자를 중소형 병원에 보낼 때 지원금을 늘려 대형병원과 중소형 병원에 건당 각각 9만 원 이내를 주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경증 환자 회송을 위해 전국 병원 약 5200곳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다. 급성 치료가 끝났거나 경증인 환자가 회송 대상이다. 이 병원은 이날 진료를 받던 70대 간암 환자의 복수천자(복수를 빼내는 것) 시술을 동네 병원에 의뢰하기도 했다. 이 병원 회송센터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 후) 응급실이 포화 상태다 보니 대여섯 시간 기다려야 시술을 받을 수 있다”며 “마침 대기가 필요 없는 환자 거주지 인근 병원이 있어 연락해 예약까지 잡아줬다”고 했다.
● “응급·중증 중심 진료 정착돼야”
회송은 환자가 동의해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안심하고 집과 가까운 동네 병원으로 향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양지혁 삼성서울병원 파트너즈센터장(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은 “회송 후에도 삼성서울병원과 같은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안심을 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협력 병원들에 진료 프로토콜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회송 환자의 증세가 악화되면 다시 이송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도 마련했다.
가벼운 질환은 동네 병원에서 맡고 응급·중증 환자만 대형병원을 찾게 하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는 국내 의료의 오랜 과제였다. 복지부는 그동안 대형병원의 경증 환자 비율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 후 대형병원이 비상진료 체계로 전환되며 의사들 사이에선 “의도치 않게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추세가 정착되려면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 체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사의 개별 행위마다 수가를 매겨 지불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선 뇌, 심장 등 어려운 수술의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다 보니 대형병원들이 질환의 경중에 관계없이 환자를 많이 볼수록 이윤이 남는 구조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대형병원들이 집중해야 할 중증·고난도 진료를 정의하고 그에 따라 수가 제도를 조속히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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