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아웃도어 기업이 만든 일본 된장의 비밀
'지구를 살리기 위한 사업을 운영한다'는 기업 철학을 가진 글로벌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가 전혀 다른 산업인 식품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식품 사업은 특히 일본의 전통적 식품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푸드 컬렉션을 맡고 있는 자회사 파타고니아 프로비젼스(Patagonia Provisions)는 설립 초기부터 환경을 복원하는 농수산업을 지원해 지구를 구한다는 콘셉트로 사업을 펼쳐왔다. 이 회사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재배한 곡물을 활용한 식품, 환경을 복원하는 유기농 식품 등을 제조 및 판매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일본 국내를 한정으로 하는 유기농 된장을 출시해 화제다.
유기농 된장의 키워드는 '쟁기질하지 않고 농사짓기'와 '태양광 공유'다. 이번 글로벌 친환경 된장 프로젝트를 위해 파타고니아로부터 선택받은 치바현 소사시의 젊은 농부그룹인 'Three Little Birds'는 경작 면적의 약 10%에서 쟁기를 쓰지 없는 '무(無) 경운 재배'로 콩과 밀을 생산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연구원들과 협력한 결과 면적당 수확량은 일반 농법과 비슷하거나 더 좋다.
농업의 기본은 토양을 경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토양을 경작하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 '무경운 재배'는 쟁기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잡초가 자라서 작물이 있는 곳과 끝이 어디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게다가 모든 잔디 깎기는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당히 고생스럽다. 하지만 토양 속의 미생물이나 지렁이 등이 살기 쉬워지고, 밭에서 자란 식물을 그대로 깎아 활용함으로써 선순환을 만들 수 있어 토양이 비옥해지는 장점이 있다. 트랙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토양을 파헤치지 않음으로써 식물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탄소로 흡수하여 정착을 촉진할 수 있어 이산화탄소 배출량 삭감에 기여한다.
또한 치바현의 재생에너지 회사에 투자한 파타고니아에 의해 이 지역은 태양광 시설을 농작물과 함께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 발생되는 전기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렇게 재배된 친환경 콩은 후쿠이현의 마루카와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누룩 곰팡이로 자연 양조된다. 이 후 지하수를 사용하여 콩, 현미, 백미를 혼합하고 약 20개월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맛이 깊고 풍부한 일본 전통 된장이 탄생한다.
파타고니아가 지구를 지킨다는 목표로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생산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으나, 제품 포장지에 인쇄돼 있는 창업자의 메시지를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재킷은 5년에서 10년에 한 벌씩 사더라도 음식은 하루에 세 번 먹게 되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지구를 보호하고 싶다면 그 시작은 음식입니다." 회사 설립자 이본 슈나드(Yvon Schnard)의 강력한 메시지다.
이미 슈나드 회장 일가는 2022년 9월 파타고니아 전체 주식 중 98%를 환경 관련 비영리재단인 홀드패스트 콜렉티브에 넘기면서 회사 소유권을 포기하고, 창출하는 모든 이익은 환경 보호와 기후변화 대처에 사용하겠다고 공표해 화제가 됐다. 이러한 파타고니아가 향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미래의 식품관련 사업의 전초기지로 일본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일본이 쌀이 주식이기 때문에 논이 농지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지형과 자연환경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고, 자연에 최대한 의지하고 관리되고 있는 농작지들은 토양의 풍요로움과 생물 다양성에 기여해 왔다고 판단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이 자연과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다양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세계 굴지의 반도체 업체들을 자국으로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70~80년대 반도체 르네상스를 재현하고자 꿈꾸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지만, 파타고니아와 같은 세계적 리딩 기업이 미래 먹거리인 친환경 식품의 생산기지로 일본을 선택했다는 소식도 한국으로서는 신경 안 쓸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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