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시비가 빈번한 이유 [크리틱]

한겨레 2024. 4. 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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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의 전시 '한국의 보물들'에 출품된 박수근, 이중섭 작 회화 4점을 놓고 진위 공방이 불거졌다(한겨레 4월5일치 18면). 한국화단 최고 스타인 박수근, 이중섭 두 작가에게는 유독 위작 시비가 빈번하다.

일본 유학파 이중섭과 보통학교만 나온 박수근의 출발선은 크게 달랐지만, 한국전쟁으로 두 작가 모두 어렵게 화업을 이었다.

시대를 공유했던 두 작가의 작품에는 굴곡진 한국 근대사의 서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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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작가의 1940년 작 ‘맷돌질하는 여인’. 1940년 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입선작으로 도록에 수록된 이미지만 전해진다.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의 전시 ‘한국의 보물들’에 출품된 박수근, 이중섭 작 회화 4점을 놓고 진위 공방이 불거졌다(한겨레 4월5일치 18면). 한국화단 최고 스타인 박수근, 이중섭 두 작가에게는 유독 위작 시비가 빈번하다. 그림값이 워낙 높고 수요가 많으니 위조 또한 따른다지만 작품 관리가 허술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두 작가는 공통점이 많다. 박수근은 1914년생, 이중섭은 1916년생으로 동년배다. 일제 강점기에 화가로 등단했고, 박수근은 강원도 금성, 이중섭은 원산에서 평양을 무대로 활동하다 한국전쟁 발발로 남하했다. 일본 유학파 이중섭과 보통학교만 나온 박수근의 출발선은 크게 달랐지만, 한국전쟁으로 두 작가 모두 어렵게 화업을 이었다. 격변기를 살았던 만큼 이들의 개인사도 평탄치 않아 박수근은 51세에, 이중섭은 40세에 건강 악화로 작고했다. 화풍이 정점에 이를 중년에 세상을 등진 셈이다.

시대를 공유했던 두 작가의 작품에는 굴곡진 한국 근대사의 서사가 담겨 있다. 그 가치는 미술시장에서도 확인되는데, 박수근의 1950년대 작 ‘빨래터’는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고, 이중섭의 1954년(추정) 작 ‘소’는 2018년 경매에서 47억원에 낙찰돼 박수근의 최고가 기록을 넘어섰다. 화풍의 독자성이 뚜렷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친숙한 소재로 풀어낸 정서는 상통하며, 시장 역시 두 작가의 1950년대 작품을 최고 가치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련의 공통점은 두 작가에게 위작이 많은 요인으로도 작동한다. 피난길에 떠밀리듯 남하했으니 이북에서의 작품을 챙겨왔을 리 만무하다. 1930~40년대 작품의 실종은 그중 일부가 발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시기 작품 편년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어 그 가능성은 다른 말로 위조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두 작가는 작업이 왕성할 시기에 타계해 남긴 작품도 많지 않다. 높은 인기에 비해 원작 수가 절대적으로 적으니 이 또한 위조를 부추긴다.

박수근 작가의 1950년대 작으로 알려진 ‘맷돌질하는 여인’. 1940년 작을 반복 작업했다는 해당 작품은 진위 논란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실제로 1940년대 후반 작으로 공인됐던 박수근의 ‘맷돌질하는 여인’은 2012년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위작으로 논증됐다. 이 작품은 하드보드에 그려진 유화인데, 한국전쟁 때 유엔군 비상식량을 담던 상자에 쓰인 하드보드는 미군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생계를 잇던 박수근에게 값비싼 캔버스 대용이었다. 1940년대 작품에는 쓰일 수 없던 재료로 부정할 수 없는 편년의 오류다. 이밖에 타당한 여러 근거가 제시됐지만, 해당 작품은 제작연도만 고쳐 1950년대 진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사실 우리 근대 작품에서 편년의 오류는 비일비재하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던 과거 제작연도를 남기지 않은 작품이 수두룩해 작가 또는 유족의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곤 한다. 작품의 진위를 가릴 결정적 근거인 편년의 오류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토에서 위작 논의가 제기된들 경매에서 수십억원에 거래된, 혹은 전문가 집단이 공인한 작품이 원작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미국발 위작 논란에서도 이변은 기대하지 않는다. 전문감정 이래 봐야 개인의 주관과 경험에 의존하는 안목 감정이 대부분이고, 과학 검증도 결정적 확증이라기보다 하나의 근거인 탓에 달리 해석하면 그만이다. 진작과 위작을 가르는 선이 작품 자체보다 시장 질서와 전문가 집단의 권위로 좌우되니 위작 논란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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