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 걸은 예수, 믿느냐”…신앙 검증해 교수징계 밟는 대학

김채운 기자 2024. 4. 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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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학대학교가 소속 교수의 신학이 교단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앙 검증' 끝에 중징계 절차에 들어가면서, 전국 신학자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2021년 '신학검증위원회'를 구성하고 박 교수를 조사해 온 서울신학대는 "박 교수가 그의 책 '창조의 신학'과 수업 등에서 유신진화론만을 옹호하고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으로 폄하하는데, 이것이 대학 교단인 기독교대한성결교회(성결교회)의 창조론과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 2년 반의 조사 끝에 중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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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인정하고 신의 뜻으로 해석한 박영식 교수
서울신학대 “유신진화론 가르치는 것 절대 안 돼”
장로교 통합 교단에서 강의하고 있는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 모습. 박영식 교수 제공

“21세기 한국판 갈릴레오 재판이라는 불명예 외에는 얻을 것이 없습니다. 모든 징계 시도를 중단하십시오!”

한 신학대학교가 소속 교수의 신학이 교단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앙 검증’ 끝에 중징계 절차에 들어가면서, 전국 신학자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총장이 해당 교수의 ‘반성문’을 대신 작성해 서명을 요구하고, 이사장은 해당 교수에게 ‘자기반성적 내용’이 담긴 논문을 출판하도록 압박한 정황도 드러났다.

연세대·숭실대·성공회대 등 전국 각 대학에서 모인 신학자들은 17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원두우신학관 예배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 부천시 서울신학대학교 소속 박영식 교수의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에는 전국 신학대 교수 100여명의 이름이 올랐다. 지난달 6일 서울신학대 이사회가 학내 징계위원회에 박 교수의 중징계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2021년 ‘신학검증위원회’를 구성하고 박 교수를 조사해 온 서울신학대는 “박 교수가 그의 책 ‘창조의 신학’과 수업 등에서 유신진화론만을 옹호하고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으로 폄하하는데, 이것이 대학 교단인 기독교대한성결교회(성결교회)의 창조론과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 2년 반의 조사 끝에 중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창조과학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지구 나이 6000년설’ 등을 주장하고, 진화론을 부정한다. 반면 유신진화론은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되, 이를 신의 뜻으로 보고 해석하려는 입장이다. 그런데 성결교회 교리를 보면, 창조과학이나 유신진화론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신의 창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지는 학자의 자유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조사위원들로부터 “성결교회 목사가 맞긴 하느냐.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걸 믿느냐”는 등의 ‘사상 검증’을 당했다. 2022년 6월 황덕형 서울신학대 총장은 박 교수를 찾아가 자신이 대신 쓴 자술서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 교수가 ‘신학적 고백과 반성’이라는 제목으로 자술서를 다시 써내자, 학교는 이번엔 “학자는 글로써 말해야 한다”며 ‘자기반성적 논문’을 출판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박 교수는 안식년 신청도 거절당한 채 1년 동안 학교가 요구한 논문을 썼다. 그럼에도 이사회는 “자기 반성의 내용이 빠졌다”며 다시 박 교수의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신학대 교수들은 “서울신학대가 학문 연구의 자유를 탄압한다”며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성명서를 발표한 연세대 신학 교수 43명은 “박 교수의 창조신학이 성결교단의 창조론과 배치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며 “학자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집필하고 발표한 저서가 학교의 검열과 징계의 대상이 된다면 학문의 자유는 이미 죽은 것”이라고 규탄했다. 전국 조직신학자 54명도 “설령 신학자의 작업이 교단의 신학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진리됨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학문적 논의와 비판적 검증을 통해서 평가받아야 한다”며 “징계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했다.

학교 쪽은 일반 대학과 신학대학에는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백운주 서울신학대 이사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일반 대학에서는 유신진화론을 가르쳐도 되지만, 목회자를 길러내는 신학대학에서 유신진화론을 가르치는 건 절대 안 된다”며 “교수 임용 때도 교단 신학에 따르겠다고 서약했으니 약속 파기”라고 밝혔다. 박 교수의 징계 여부는 25일 결정된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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