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예쁜 줄도 모르고 안락사됐겠죠, '이것' 안 했다면
6개월만에 '상처투성이 똥강아지→캐나다 사랑둥이'로 견생 역전
"집에서 살면 며칠이면 낫는 병, 보호소에선 죽어요…입양까지 시간 벌어주는 게 '임시보호'"
[편집자주] 10일. 유기동물이 보호소에 들어오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기한이 끝나면 대부분 '안락사' 됩니다. 잠깐만 살려주어도 두 번째 기회가 생깁니다. 가족을 만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거지요. 그게 '임시보호'입니다. 그리 열한번째날을 선물해준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김제시 유기동물 보호소에 올라온 공고 사진이었다. 고작 한 살도 안 된 앳된 강아지.
어쩜 이리 꾀죄죄할까 싶었다. 조금은 못생겨 보이기도, 많이 안쓰럽기도 했다.
서 있는 모습도 봤다. 다리엔 상처가 가득했다. 특이사항엔 이리 쓰여 있었다.
'교통사고'. 무거운 생각이 이어졌다.
안 될 거야, 입양은 걱정돼. 평생 책임져야 하잖아. 나 말고 누가 가족이 돼주겠지.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공고 기한이 있었다. 며칠부터 며칠까지. 고작 열흘. 기한이 지나면 안락사. 죽인다는 거였다.
신경이 너무 쓰였다. 하필 왜 내 눈에 띄어 가지고.
"교통사고로 써놓긴 했는데요. 글쎄요. 그렇게 보기엔 심하게 끌려간 듯한 상처가 많아요. 줄에 묶여서 아스팔트 이런데 온몸이 쓸린 게 아닐까 싶어요. 타박상이 가득하죠. 엄청 아팠을 텐데."
그냥 상처가 아니라, 다신 털이 나지 않을 정도의 깊은 상처. 그게 옆구리에도, 다리에도 가득했다. 대체 어떤 XX의 짓일까.
내면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오지랖 부리지 말아. 네가 입양할래?'
'이런 학대에서도 어렵게 살아남았는데 또 안락사라니…그건 너무하잖아.'
그때였다. 강아지를 구조한 동물보호단체가 내게 또 다른 선택지를 주었다.
임시 보호. 버려진 강아지가 새 가족을 만나려면 몇 명이 필요할까.
강아지를 구조하는 사람 한 명. 입양하는 사람 한 명. 두 명 아닌가요.
구조자와 입양자 말고도,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있단다. '임시 보호하는 사람(이하 임보자)'.
강아지가 좋은 가족을 만날 때까지 집에서 돌봐줄 사람. 그게 '임보자'의 일이다. 구조와 입양을 연결하는 일종의 징검다리.
안락사를 막아 살리고, 가족 만날 시간을 벌어주고, 집에서 사랑과 교육을 받으며 사람과 함께 살 준비를 하고. 아픈 아이들은 건강해지고 예뻐지니 입양률도 높아진다고.
강아지 임보를 그리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강아지였다. 헥헥헥, 학학학, 헷헷헥, 핫핫, 헉헉, 헝헝. 가온이가 반길 때면 온몸의 털이 보드라운 풀처럼 흩날렸고, 귀는 순하게 젖혀졌으며, 꼬리는 풍차처럼 휙휙 힘차게 돌았다.
아스팔트에 쓸려 옆구리와 다리에 났던 상처. 커다랗게 생겼었던 딱지. 집은 좋은 곳이었다. 빠르게 회복되었으므로. 한두 달 만에 다 나았다.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가온아, 손." "가온아, 돌아." "가온이 엎드려." 알고 보니 무척 똑똑한 강아지였다. 금방금방 다 배웠다.
의아한 게 있었다. 가장 쉽다는 "앉아"를 외려 못 배웠다. 다리가 아픈 것 같았다. 동물보호단체 직원이 말했다.
"처음에는요. 보호소에 있었을 때 잠도 서서 잤었어요. 뒷다리가 아파서, 구부릴 수 없어서요."
안팎이 모두 상처였기에, 처음부터 함께 잠을 자진 못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잠을 자다 침대가 묵직해서 보니, 가온이가 밑에 떨어진 이불 끄트머리에 올라가 있었다. 외로웠나보다, 이렇게라도 함께 있고 싶어서. 슬프고 짠하고 사랑스러웠다. 속으로 말했다.
'줄에 묶여 아스팔트에 끌릴 정도로 다쳤다며. 많이 아프고 무서웠을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아직도 사람을 이리 좋아하니.'
함께한 지 5개월. 가온이는 무척 사랑스럽고 예뻐졌다. 상처투성이었던 강아지는 어디 갔나. 이리 달라질 수 있을까. 정들고 맘이 익어서일까. 아니, 확연히 보호소에 있을 때와는 달랐다. 예쁜 사진도 사진첩에 가득했다. 기적 같은 날들.
함께하며 가온이도 많이 알게 됐다. 어떤 성격인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가온이는 비로소 가족을 맞을 준비가 다 되었다. 이제 입양 홍보에 나설 차례였다. 내적 갈등이 생겼다.
보낼 수 없어.
아니 보내야지, 그래도.
가온이 집은 여기인 걸. 함께하고 싶고.
더 좋은 데로 갈 기회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 맞아. 기회를 안 주는 것도 미안한 일이니까.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고, 아무도 원치 않으면 우리가 입양하기로. 남편과 그리 맘먹었다.
섭섭하게도 2주 만에 입양 문의가 왔다. 캐나다에서 온 거였다. 거기 산다는 싱가포르인 젊은 부부. 주거 환경도 무척 좋았다. 임시 보호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반려견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유기동물 구조 단체 '어독스'의 신중한 심사, 입양자의 최종 결정. 2주가 그리 흘렀다. 가온이에게 가족이 생겼다.
3월 초에 캐나다로 간다고. 가온이와 이리 빠르게 헤어지게 되다니. 좋으면서 섭섭하고, 섭섭하면서 좋고. 직접 데려다줘야지, 캐나다로 가는 티켓을 알아보던 와중에, 이동 봉사자(해외에 입양됐을 때, 동물을 함께 데려가주는 봉사자)까지 구해졌단 소식을 들었다.
그랬다. 이제 가온이와 함께할 날이, 겨우 5일 남은 거였다.
늘 함께하던 산책을 하고, 맛난 간식을 주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한옥 지붕이 있는 숙소 앞에서 가온이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바라보고 눈을 맞추고 품에 안았다.
가온이가 떠나던 날. 인천국제공항에 함께 갔다. 쫄래쫄래 신나서 따라가던 강아지. 15시간을 비행해야 했다. 캔넬 안에 들어가고, 그물 같은 걸로 또 쌌다.
그러니 가온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원래 얌전히 잘 있는데, 무언가 평소와 다르단 걸 직감했는지. 낑낑대고 불안해하는 걸 보며 마음이 찢어졌다.
"가온아, 너 좋은 곳으로 가는 거야. 울지말아."
알 턱 없고 영문 모를 가온이 곁에 수십 분을 함께 있어 주었다. 캔넬 철망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쓰담쓰담. 아무리 인사를 해도 슬프고 충분치 않았다. 낯선 곳에 도착해 우릴 찾으면 또 어쩌나 싶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우여곡절이 끝나고 가온이는 캐나다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 잘 먹고 잘 논다고 했다. 초반에는 잘 노는데 계속 두리번거린단 말에, 또 맘이 아팠지만.
드넓은 땅, 대자연이 가득한 나라. 입양자는 가온이와 로드 트립도 가고, 엄청 큰 반려견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주고, 함께 출근도 했다. 대형견이 많은 나라라 자유로이 누릴 수 있는 게 더 많았다.
그리 6개월간의 임보가 끝났다. 보내길 정말 잘했다고, 이별은 아팠지만. 뛰어놀고 사랑받는 걸 보니, 우리가 가온이의 견생을 힘을 합쳐 바꿔줬구나 싶었다. 너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임보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신재님이 처음 임보하고 고민하는 것처럼 일부 각색했어요. 나머진 사실 그대로입니다. 실제론 가온이를 본 뒤, 입양이나 임보가 더 어려울 것 같아 맘 쓰여 더 데려왔답니다.
신재님은 유기동물 임시보호 전문가입니다. 구조와 입양엔 관심이 많으나, 이 둘을 연결하는 임시보호엔 관심이 부족하다고 여겨,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핌피바이러스'를 만들었습니다. 임보는 너무 중요한데, 정리가 잘 돼 있거나, 안내해주거나, 전문성을 갖춘 곳이 국내에 없어 직접 만든 거지요.
임보는 왜 필요한 걸까요. 신재님에게 물었습니다.
"한 번에 입양 가면 당연히 너무 좋겠지만,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시간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보통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생명을 잃어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예요. 정말 작은 병인데, 집에 가면 며칠이면 낫는 병인데 죽고요. 그런 게 너무 안타까워서. 입양 갈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게 임시보호의 역할이거든요."
유기동물들이 처음 보호소에 있으면 꼬질꼬질하잖아요. 어떤 성격인지 파악도 안 되고요. 그런데 임보처에 가면 일대일 케어와 사랑을 받아요. 그럼 본래 성격이 나오고요. 사람이랑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알려주면서, 건강해지고, 예뻐지니 입양자와 연결이 훨씬 잘 되는 거예요. 또 성격을 아니, 입양자 입장에서도 우리 집이랑 맞는 친구를 가족으로 맞을 수 있게 되고요. 그래야 파양도 줄어듭니다.
그리 임보를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답니다. 첫 고양이 '뭉땡이'는 애니멀호더 집에서 구조된 아이였어요. 반지하 집, 쓰레기 같은 환경에, 고양이 열 마리를 몰아넣고 이사가며 버리고 갔답니다. 점프해서 나올 수 있는 아이들만 살고 나머진 다 별이 되었답니다.
뭉땡이는 임시보호를 한 지 한 주만에 다 회복이 됐어요. 구석에 숨던 녀석이 무릎에 올라오고, 애교도 부리고요. 좋은 가족에게 입양을 갔습니다. 그리 유기견과 유기묘 일곱, 여덟 아이를 임보해 모두 좋은 가족과 연결해줬어요.
핌피바이러스는 5월 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입양제를 연답니다. 보통은 SNS나 온라인에서 유기동물을 보고 입양 신청을 하는데, 여기에 오면 직접 만나 결정할 수 있다고요. 임시보호를 하는 분들도 내 아이 가족 만들어주기 위해 자랑할, 장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입양에 관심 많은 이들이 많이 와서 봐주면 좋겠다고요.
끝으로 신재님에게 물었습니다.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이었어요.
"가온이가 만약에, 보호소에 그냥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안락사를 당했을 거예요. 다친 상태에서 입양해 갈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온이도 사실 처음 봤을 때 예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집에 와서 지내다 보니까 너무 예뻤던 거예요." (신재 대표)
"보호소에 있을 때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었겠어요. 당연하지요."
"보호소 공고에 올라오는, 초점이 나가거나 흐릿한 사진 한 장으론 절대 얘를 판단할 수 없어요.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한 친구들이 훨씬 많은 게 너무 미안하고 또 안타깝습니다."(신재 대표)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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