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동기간

양민주 시인·수필가 2024. 4.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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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주 시인·수필가

칠 남매는 오롯이 건강하다. 막내가 지난해 환갑을 넘겼으니, 우리 나이는 60대 초반에서 70대 후반까지 분포돼 있다. 아버지는 세상을 조금 일찍 떴지만, 어머니는 장수하셨다. 어머니가 땅보탬 되신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당신은 살아생전에 동기간의 우애를 늘 말씀하셨다.

칠 남매에게도 위태로울 때가 있었다. 그중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둘째 누님이 큰 시련을 겪었다. 둘째 누님은 10대 중반에 장티푸스를 앓아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그때의 모습이 아슴푸레 떠오른다.

새봄을 맞아 집안 곳곳에는 작약꽃이 새순을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작약 뿌리를 수확하셨는데 누님은 늘 그 곁에 있었다. 야윈 몸에 붉은 스웨터를 입고 있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도 측은해 보였다. 아버지는 넷째는 몸이 아프니 무엇이든 양보하라고 하면서 사랑을 많이 주셨는데 가족들은 이런 일에 불평하지 않았다.

축담 아래 꽃밭에서 따뜻한 햇볕을 한동안 쬐고 병마와 싸운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는 것이 누님의 일상처럼 보였다. 살고자 하는 의지와 부모님의 지극한 간호로 곡우(穀雨)에 비 맞은 신록처럼 누님의 병은 깨끗이 나았다.

서울에 살고 계신 누님은 올해 고희를 맞았다. 누님 자리에서 보면 위로 오빠 둘 언니 하나, 아래로 여동생 둘 남동생 하나다. 모두 다 갖춘 셈이다. 그런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직해 작은 갤러리를 연 내가 보고 싶어 부산에 계시는 큰 누님과 김해로 오겠단다. 창녕에 사는 셋째 누님께도 전화했지만, 집안일로 오지 못한다고 하여 둘만 온다고 한다. 나는 기분이 들떠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겠노라며 점심시간에 맞춰 오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 날 두 분 누님이 오셨다. 근처 맛집인 삼계탕집으로 향했다. 삼계탕집 앞에는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소고기 전골집으로 향했다. 거기도 정기 휴일이라며 문을 닫았고 생선초밥집도 문을 닫았다. 짚어보니 월요일이라 쉬는 음식점이 많았다. 문을 연 음식점은 분식집뿐이었다. 들깨칼국수를 시켜 먹었는데 두 누님은 내가 미안해할까 봐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칼국수가 맛있다며 남김없이 드셨다.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점심을 먹고 셋째 누님이 못 온 것을 아쉬워하며 김수로왕릉에서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 누님은 오는 가을에 늦둥이가 장가를 든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덧붙여 막내 여동생이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식도 전해준다. “걔는 환갑 지나 공부하면 학비가 아깝지도 않은 지 몰라”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갤러리에서 조촐한 다과를 놓고 앉았다. 두 누님이 잠시 나갔다가 오겠다며 자리를 비운다. 화장실에 갔겠거니 하고 기다리는 데 한참을 지나 큰 누님이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봉지를 내밀며 “너와 올케 양말 두 세트 샀다”하신다. 둘째 누님은 한참을 지나도 오지를 않는다. 걱정되어 문밖에서 기다리는데 멀리서 자기 키의 절반이 넘는 휴지 꾸러미와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힘겹게 걸어오신다. 쫓아가 받으니 “갤러리 잘되라고 휴지와 딸기 샀다. 딸기는 올케 갖다주어라”하신다. 그러면서 슈퍼를 찾느라 헤맸단다.

기차 시간이 되어 누님들을 구포역으로 모셔다드렸다. 큰 누님은 차로 댁까지 모시려 했으나 굳이 구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겠단다. 지하철을 타면 공짜인데, 동생의 자동차 기름값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배려일 것이다. 둘째 누님이 큰 누님을 바래다주고 가겠다며 팔짱을 끼고 지하철역으로 간다. 계단을 오르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왠지 가슴이 울컥했다. 동기간의 정이란 게 이런 것이지 싶다. 사족이지만 나는 불혹을 넘기면서 누나를 누님으로 부르고 있다.


칠 남매는 오롯이 건강하다. 내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지만, 훌륭한 분들이셨다. 칠 남매를 낳아 동기간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셨으니까!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장삼이사로 살아간다. 동기간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우리네 젊은 부부도 아이들을 둘 셋 낳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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