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지주사 전환 선언했지만…FI와의 분쟁은 여전한 ‘암초’

김경수 기자 2024. 4. 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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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6년째…신창재 회장의 고민도 커져
경영수업 중인 오너 3세들의 향후 역할도 주목

(시사저널=김경수 기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최근 지주사 전환을 통해 그룹의 '새판 짜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한때 든든한 우군이었던 재무적 투자자(FI)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6년째 분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보생명 안팎에서도 분쟁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FI와의 갈등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오너 3세들까지 경영에 전진배치하면서 교보생명의 향후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2013년 6월17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49차 세계보험협회 연차총회'글로벌 리더십 패널' 토론에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보험산업의 미래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주사 전환 가능성 있나

지난해 2월 교보생명은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로드맵을 내놨다.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지주사 체제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신성장동력 발굴, 관계사 간 시너지 창출 등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동안 교보생명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곗바늘을 과거로 되돌려보자. 2012년 사모펀드인 어피너티 에쿼티파트너스(9.05%)와 IMM PE(5.23%), 베어링 PE(5.23%), 싱가포르투자청(4.5%) 등은 '어피너티 컨소시엄(24.01%)'을 구성했다. 어피너티는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을 1조2054억원에 매입했다. 당시 어피너티는 2015년 9월말까지 교보생명의 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최대주주인 신 회장 개인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교보생명은 저금리와 규제 강화로 약속된 기한까지 IPO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보다 못한 어피너티는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피너티는 지분 가격 책정을 위해 회계법인인 '딜로이트 안진'에 가격을 의뢰했고, 주당 약 40만원으로 책정했다. 반면 교보생명 측은 "주당 가격이 20만원으로 책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FI와의 갈등은 교보생명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기업 경영에서 중대한 사안을 두고 주주 간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 같은 목소리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사법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지주사 전환은 불가능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신 회장에게도 FI와의 분쟁은 가장 골치 아픈 숙제다. 최근 보험 업황이 둔화 국면을 맞으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 신성장동력을 마련하려면 FI와의 갈등을 신속히 매듭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보생명과 FI 간에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에는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등 여론전을 펼쳐 분쟁이 확대됐다면, 최근에는 이 같은 양상이 크게 줄어들었다. 

교보생명 측도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는 2015년까지 IPO를 하려 했지만, 여러 사정상 진행하지 못했다. 어피너티 측에서도 이사회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면서 회사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이해했다"면서 "2018년 회사는 IPO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피너티에서 풋옵션을 행사했다. 결국 IPO 역시 무산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갑자기 달라진 그들의 행보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교보생명과 어피너티 모두 새로운 대표가 합류했고, 핵심 경영진 역시 대부분 교체됐다"면서 "과거와 분위기가 조금 바뀐 듯하다. 열린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금씩 조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의 경영 행보에 주목되는 점도 여기에 있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FI와의 풋옵션 갈등으로 경영 상황이 녹록치 않은 상황인 만큼 3세들의 경영 승계 역시 과제를 안게 됐다. 교보생명이 지난해부터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신 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높인 후 단계적으로 두 아들에게 지분을 증여해 기업을 승계하겠다는 목적이 반영됐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회사 분쟁 속 3세 경영 승계설 '솔솔'

신 회장 슬하에는 현재 2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인 신중하 교보생명 그룹데이터팀장은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 서울지점에서 2년여간 근무했다. 2015년 교보생명 관계사 KCA 손해사정 등을 거치면서 보험 가입부터 보험금 지급까지 보험업 관련 경험을 쌓았다. 차남 신중현씨는 교보생명 100% 자회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에 둥지를 틀었다. 장남에 이어 차남까지 교보생명 자회사에 입사한 만큼 경영수업이 본격화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중에서도 장남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신 팀장은 현재 디지털 관련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2022년 5월, 데이터 체계 구축을 가속화하기 위해 교보생명 지속경영기획실 산하 그룹디지털전환(DT) 지원담당 직무를 맡았다. 6개월 후에는 교보생명 그룹데이터팀장을 맡아 교보생명과 관계사들의 데이터 체계 구축 및 DT 가속화를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신 팀장이 이끄는 교보생명 그룹데이터전략팀은 교보 계열사 고객 데이터 통합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교보생명, 교보문고,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교보정보통신, 디플래닉스 등 자회사의 '데이터 체계 및 인프라 구축 협약' 체결을 주도했다. 

협약을 통해 교보 계열사에 흩어진 고객 데이터를 통합하고, 데이터 분석과 활용에 기반한 경영 의사결정과 자회사 간 시너지 극대화를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그룹의 통합 데이터 전략 수립과 실행 총괄은 교보생명 그룹데이터전략팀이 주축으로 실행한다. 교보생명이 올 하반기 중 금융지주사 설립을 목표로 하는 만큼 자회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신 팀장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3세들의 경영 참여에 대해 우려섞인 반응도 나온다. 올해 역시 업황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오너 3세를 경영 전면에 배치할 경우 교보생명의 리스크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향후 승계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신 회장이 아직 지분을 증여하지 않아 3세들은 교보생명 관련 지분이 전혀 없다. 이와 관련해 교보생명 측은 "현재 실무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고 오랜 기간 철저한 역량 검증을 거쳐간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본사 광화문 교보빌딩 ⓒ시사저널 박정훈

교보생명 측 "디지털 사업 주력해 실적 반등"

공은 이제 신 회장에게 넘어갔다. 교보생명과 어피너티의 분쟁이 지속되면, 신 회장의 입지와 영향력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신 회장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해 경영을 모두 정상화할 경우엔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한층 더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 회장 역시 경영권 승계 문제를 고민하던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회장을 맡은 후에는 교보생명을 생명보험 업계 3위(총자산 기준) 회사로 키워냈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로 근무하면서 회사를 운영한 경험은 없었지만, 특유의 감각으로 교보생명을 국내 굴지의 생명보험사로 성장시켰다. 

최근 취임한 조대규 신임 대표이사의 역할도 주목된다. 신 회장이 조 대표와 함께 '투톱' 체제를 형성하면서 지주사 전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역할도 나눴다. 교보생명은 2021년부터 '양손잡이 경영'을 본격 추진 중이다. 본업인 보험사업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증대하는 동시에 디지털 전환 등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2인 각자대표 체제를 운영하는 것도 효과적인 본업·신사업 시너지 확대를 위한 선택이다.

신 회장은 회사의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한 장기 전략과 기획, 자산 운용 등 미래 먹거리 전략 추진에 힘쓰고, 조 대표는 제3보험을 중심으로 한 보장성 보험의 시장 경쟁력을 끌어올려 수익성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수익성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제3보험 중심의 보장성 보험 경쟁력을 강화한다. 이 둘의 시너지 효과로 본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수익성이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보험업권의 디지털 전환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는 지금, 신 회장은 디지털 혁신을 최우선 가치로 투자를 확대하면서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2021년 보험업계 최초로 '본인신용정보관리업'(금융마이데이터) 본허가를 획득한 후 2022년 자사 앱에 은행, 증권사 계좌 잔액과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오픈뱅킹' 조회 서비스를 선보였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등 구조적 위기에 빠진 생명보험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교보생명은 제3보험 상품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주요 질병에 대한 보장을 종신까지 제공하는 '교보평생건강보험'을 출시했다.

디지털 전환, 생명보험 기반 성장 등 계열 다각화로 실적 반등의 꿈을 키운 교보생명. 6년째 이어지는 FI와의 분쟁 등을 통해 경영 구설에 오른 신 회장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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