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열번째 ‘미안한 봄’…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진도 팽목항’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4. 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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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추모 열기 고조
16일 진도 팽목항 등서 20여개 추모행사
유족들 동거차도 참사해역서 선상추모식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희생당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3시 30분쯤 전남 진도 팽목항.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팽목항이 또 다시 세월호 참사 열 번째 '슬픔의 봄'을 맞았다. 지금은 진도항으로 불리는 팽목항은 세월호 참사 후 차디찬 바다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이 가장 먼저 도착했던 곳이다. 그곳은 세월호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진도로선 아픈 자리다. 10년 전, 희생자들이 수습될 때마다 통곡이 넘쳤고, 지금까지도 5명은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팽목항도 10년 세월이 묵으면서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난해 8월 진도에서 제주를 오가는 여객터미널이 팽목항 옆에 새롭게 조성돼 제법 항만으로써 면모를 갖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전남 진도 팽목항이 또 다시 세월호 참사 열 번째 '슬픔의 봄'을 맞았다. 15일 오후 한 추모객이 방파제 기억의 벽에 새겨진 추모의 글을 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하지만 다짐과 회한이 담긴 노란 리본과 기다림의 의자, 기억의 벽은 십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란 깃발이 나부끼는 방파제 끝에는 리본이 그려진 빨간 등대가 추모객들을 맞이했다. 방파제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는 가족들이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길 기다리며 머물렀던 임시 컨테이너 숙소인 '팽목기억관'과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했던 '팽목성당' 또한 행정에는 눈엣가시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날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날 팽목항을 찾은 추모객들은 방파제 등대~팽목기억관을 둘러보며 학생들의 흔적을 살펴보는 등 조용히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올해는 유독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더욱 커지는 추모 분위기다. 

"하늘도 슬퍼했나"…빗물인가 눈물인가

팽목항은 이날 오전부터 강한 빗줄기가 내렸다. 오후 들어 비가 그쳤지만 앞바다 풍랑은 거셌다. 지역 주민들은 수년째 추모일 전후에 비가 내리자 하늘도 추모하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사고 전부터 줄곧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두여객터미널 건너편 횟집·편의점 주인은 "(기상 상황을)정확하게 헤아려 본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추모일이 닥치면 매년 비가 내리다시피 한다"며 "하늘도 슬퍼한 것 같다"고 했다. 진도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비가 우리의 상실과 슬픔을 드러냈다"고 반응했다. 

​희생자들의 영정이 남아있는 팽목 기억관 ⓒ시사저널​

궂은 날씨에도 팽목항은 하루 종일 전국 각지에서 온 '희생자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팽목항은 하루 종일 전국 각지에서 온 '희생자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 수많은 빛바랜 노란 리본들이 난간에서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노란 리본들은 10년 전 그날과 오늘을 잇는 매듭이다. 추모객들은 노란 리본 옆을 천천히 걸으며 야속한 바다를 묵묵히 바라봤다.

또 다른 추모객들은 노란색 리본이 그려진 빨간 등대를 보며 희생자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끓는 아픔을 공감했다. 전남 여수에서 일부러 진도를 찾았다는 이민숙(여·53)씨는 "여전히 아이들의 죽음에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단원고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키우는 김정희(61·전남 나주)씨는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슬픔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봄은, 죽었다"…'기억의 벽'에 새겨진 그리움과 분노 

방파제 기억의 벽에 새겨진 추모 문구를 무심하게 들여다보던 정 아무개(남·56)씨는 "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영문도 모른 채 공포에 시달렸을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말끝을 흐렸다.

방파제 기억의 벽에 새겨진 추모의 글 중에는 '4·16 멈춰진 시간' '별이 된 애기들아! 사랑하고 사랑해' '흘러라 슬픔아'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아무 것도 몰랐다' 등 미안함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담겨져 있었다. 또 '봄은 죽었다' '총체적 부실공화국' '침몰하는 대한민국' 등 정부를 통렬하게 질타하는 글도 있었다. '진실이 꽃 필 때까지'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게'라는 다짐의 글도 있었다.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 기억의 벽에 새겨진 추모의 글 ⓒ시사저널 정성환

'기억의 벽'은 사고 이듬해인 2015년 4월 16일 '우리 사회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돈과 권력에 지배받지 않는 민주사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마음을 26개 지역 어린이와 어른들이 타일 4656장에 쓰고 그려 팽목항 방파제에 세워졌다. 석판 12장 10여 미터에는 희생자 304인의 초성이 새겨져 있다. 재질은 경북 상주에서 가져 온 상주석이다. 원래는 비석돌(오석)에다 이 쓰는 데 너무 무겁고 칙칙해 우울할 것 같아서 살빛이 도는 돌을 수소문 끝에 상주석을 택했다고 김환영 작가는 설명했다. 

희생자 가족들이 지금도 교대로 지키고 있는 가족 식당과 희생자들의 영정이 남아있는 작은 기억관. 고령의 나이에 분향소를 찾은 김진철(89)씨는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난다"며 "미래가 창창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느냐"고 참담한 마음을 전했다. 매년 교회에서 단체로 팽목항을 찾는다는 조숙희(64·광주시 남구 봉선동)씨는 "둘째 아들이 희생된 학생들과 또래다"며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다면 내 아들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도 하고 결혼도 했을 텐데"라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부두에서 말없이 그물을 손질하던 어민 김아무개(65)씨는 "10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면서 "당시에도 사고 희생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이후 희생자 가족들도, 진도와 목포 사람들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잊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떠오르면 다들 눈물이 난다"고 덧붙였다.

자원봉사자도 추모에 힘을 보탰다. 전남 강진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이종기씨는 지인(김종봉), 취준생 딸과 함께 해마다 연가를 내 10년째 커피 무료봉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자원봉사자도 추모에 힘을 보탰다. 전남 강진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이종기씨는 지인(김종봉), 취준생 딸과 함께 해마다 연가를 내 커피 무료봉사를 하고 있다. 이씨는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뭔가 해야 될 것 같았다"며 "기억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서 커피 봉사활동을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빼지 않고 하고 있다"고 했다.

오리무중에 빠진 진실규명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김아무개(56)씨는 "세월호, 이태원 참사도 제대로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제대로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고 우리 같은 유가족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참사에 대한 독립조사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도 지역민인 김영민(54)씨는 김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데 선장을 제외한 윗선은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없지 않느냐. 이래서야 젊은 사람들이 나라를 믿고 살 수 있겠느냐"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국민들이 세월호를 계속 상기하고 반성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도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진도와 목포에서 추모행사를 잇따라 열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15일 오후 진도 팽목항 추모기억관 앞에서 한국기독교 장로회 노회가 기억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잊지 않았습니다'…전국 각지서 추모 행렬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광주전남을 전국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고조됐다. 10주기 당일인 16일엔 전국 각지에서 20개가 넘는 추모 행사가 진행된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에서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행동 진도연대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16분까지 팽목항 기억관, 등대 방파제 기억공간에서 추모·기억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4·16재단은 같은 날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참사 해역에서 유가족이 참여하는 선상 추모식을 연다. 유가족은 추모식에서 '세월이'라고 새겨진 노란 부표를 향해 국화를 띄운다. 이어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신항으로 이동해 추모제를 연다.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등이 광주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 마련한 '기억하고 행동하는 광주시민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12일부터 15일 오후 6시까지 광주·전남 지역민 1200여명이 분향소를 다녀갔다. 하루에 300여명 꼴이다. 

앞서 여수와 목포, 순천 등지에서도 13일 문화제와 음악회 형식의 지역 추모 행사가 열렸다.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도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진도와 목포에서 추모행사를 잇따라 열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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