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신한울서 본 'K-원전의 진수'…기술·안전 모두 잡고 수출길에
한반도의 '등뼈'라 불리는 7번 국도를 따라 경북 울진군 북면에 다다르면 아파트 27층 높이(76.66m) 건물 위로 솟은 둥근 돔형 지붕 두 개가 보인다. 용량 1400㎿(메가와트)급 한국형 경수로, APR-1400 노형이 적용된 신한울 1·2호기다.
지난 11일 찾은 신한울 1·2호기는 현재 한국의 원전기술이 집약된 최신 원자력발전소다. 신한울 1호기는 2022년 말부터, 신한울 2호기는 지난 5일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10년 착공했지만 문재인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준공이 미뤄졌다. 착공에서 가동까지 걸린 기간이 국내에 건설된 28개 원전 중 가장 길다. 이 정부 들어 운영허가를 받으면서 원전 생태계 복원의 상징이 됐다.
그만큼 신한울 1·2호기는 안전에 더 힘을 썼다.원전 격납건물의 외벽 두께는 122㎝(센티미터)다. 일반 아파트 두께의 4~6배 수준이다. 주증기배관 등 추가 보강이 필요한 곳은 두께가 197㎝에 달하는 곳도 있다. 비행기가 떨어져도 끄덕없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실제 미국은 27톤의 팬텀기를 시속 800㎞(킬로미터)의 속도로 원전 외벽과 같은 조건의 콘크리트벽에 충돌시켰다. 비행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지만 콘크리트 외벽은 약 5㎝ 정도만 깨졌다. 새로 짓는 신한울 3·4호기는 항공기 사고까지 대비해 137㎝ 두께로 짓는다.
최신식 원전의 내부도 남다르다. 삼엄한 경계와 신원 확인을 거쳐 들어간 신한울 2호기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원전의 두뇌, 조종석 역할을 하는 주제어실(MCR)이다. 두께 6.7㎝, 무게 346㎏(킬로그램)에 달하는 육중한 방탄·방화문 뒤로 85평 남짓한 폐쇄 공간에서 근무자들이 일한다. 총 11명이 1개 조를 구성하고 모두 6개 조가 돌아가며 근무한다. 1개 조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5개 조가 24시간 3교대 근무를 선다.
특히 신한울 원전은 디지털화하면서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 국산화를 이룬 최초의 원전이다. MMIS는 원전의 신경망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주제어실에서 발생하는 각종 신호를 처리하는 설비다. 주제어실 가운데 위치한 대형 정보 표시반(LDP)이 발전소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컴퓨터 고장을 대비해 아날로그 스위치로 제어할 수 있는 안전 제어반도 별도 설치했다. 일반인에겐 보이지 않지만 주제어실에서 상주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해 발전소를 안전하게 정지시킬 수 있는 '원전정지제어실'도 갖췄다는 설명이다.
이순범 신한울제1발전소 기술실장은 "신한울은 기존 원전에 없었던 LDP가 적용되면서 각종 제어장치의 100% 국산화에 성공한 원전"이라며 "외부 인터넷망과 분리돼 해킹으로부터도 안전하다"고 말했다.
신한울 1·2호기 인근에 건설을 재개한 신한울 3·4호기 부지에선 땅을 고르게 하는 정지작업이 한창이었다. 41만평의 너른 부지에 3호기, 4호기 원자로가 들어설 곳이 각각 붉은 깃발, 푸른 깃발로 표시돼 있었다. 이들 원전은 지난해 6월 부지정지 착수를 시작으로 3호기 2032년, 4호기는 2033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건설 재개를 가장 반기는 건 울진 주민들이다. 전체 건설공사비는 11조 7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신한울3·4호기는 건설기간 약 8년 동안 누적 총인원 약 720만명 참여를 통한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 운영기간 60년 동안 2조원 규모의 법정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직·간접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신한울 원전을 둘러본 다음날 대전 소재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구조내진실증시험센터로 향했다. 실제 지진 상황을 구현한 진동대에 0.2g(그램) 규모의 지반가속도(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는 정도)를 가하는 설비 안정성 시험이 진행됐다.
강한 지진이 나면 가장 먼저 걱정을 하는 대상 중 하나가 원전다. '원전 안전'을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경주지진 발생 관련 지진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기기·구조물의 구조·내진성능 검증을 위해 실증시험이 가능한 센터를 만들었다. 지난 1월 준공된 센터는 국내 최고 수준의 내진시험용 진동대 2기와 구조시험을 위한 정동적 유압가력시스템 등을 갖췄다.
이날 시험에서 지진상황으로 가정한 0.2g 지반가속도는 우리나라에서 100년 내 가장 강했던 지진인 경주지진이 인근 월성 원전에 미친 영향보다 훨씬 센 수준이다. 경주지진 당시 월성 원전의 지반가속도 계측값은 0.1g 수준이었다. 통상적으로 원전은 0.2~0.3g 수준의 내진설계값을 갖고 있다.
지반에 고정된 건축물은 지진의 진동과 함께 흔들리지만 원전은 면진설비를 갖춘 설비처럼 하단부를 지반에 고정하지 않고 짓는다. 단단한 암반을 굴착해 조밀하게 철근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한다. 블록을 끼우듯 암반에 발전소를 꽉 끼우는 것과 비슷하다. 지진이 와도 끄떡없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구조내진실증시험센터를 갖춤으로써 지진에 대한 대응력과 안전성이 더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원전의 안전성은 원전의 이용률과도 직결된다. 한수원은 중소기업, 국내외 대학, 연구소 등과 함께 구조내진실증시험센터 인프라를 공유해 원전 연구개발(R&D) 생태계 강화에 일조한다는 계획이다.
박동희 한수원 구조내진그룹장은 "실제 지진이 나면 지진파를 모사해서 테스트할 수 있게끔 센터를 만들었다"며 "문제가 발생 시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고 자체 해결로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울진(경북)·대전=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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