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서 버텨도 무대 서면 행복했던… 그 시절 제게 주신 賞”

이태훈 기자 2024. 4. 16.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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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이해랑연극상 시상식
제34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배우 박지일과 특별상을 받은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가 올해 심사위원들과 함께했다. 왼쪽부터 배우 남명렬, 평론가 이성곤, 심사위원장 박정자, 박지일, 이상용, 연출가 김삼일, 윤광진. /박상훈 기자

“안녕하십니까. 대학로 인기 배우 박지일입니다!”

15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에서 열린 제34회 이해랑연극상 시상식. 올해 수상자인 배우 박지일(64)의 첫 인사에 부슬비를 헤치고 모인 하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 10년 전부터 수상 소감 멋지게 준비하자고 김칫국을 마셨는데 우물쭈물하다 이제야 왔습니다.” 하객들을 한 번 더 웃음으로 휩쓸었으니 이젠 울컥울컥 눈물 흘리게 할 차례. “기록적 폭염의 여름, 선풍기도 없는 관 속 같은 쪽방에서 내내 비빔면만 먹으며 연극을 했습니다. 환기도 안 되는 지하 소극장에서 몇 달씩 연습하고 공연해도,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행복했습니다. 그 불안한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30여 년 지난 지금, 이 상은 그 애처롭던 젊은 시절의 제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박지일은 부산에서 연극배우로 6년을 버티다 포기하려던 1992년, 극단 산울림의 제2회 이해랑연극상 수상 기념 작품 ‘죄와 벌’에 출연하며 서울에서 연극 인생을 새로이 시작했다. 부산에서 그를 불러 올린 연출가 채윤일은 이해랑 선생의 유작 ‘햄릿’의 조연출이기도 했다. “이해랑 선생님을 직접 뵙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어마어마한 인연 아닙니까? 선생님 고맙습니다!” 박지일은 또 배우로서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켜준 출연작 ‘슬픔의 노래’의 김동수 연출과 원작 소설가 정찬, ‘서안화차’의 한태숙 연출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배우 이대연은 축사에서 “전설로 남은 연극 ‘슬픔의 노래’에서 형이 독백할 때 핏발 서린 눈동자, 눈물, 마룻바닥 무대 위에 뚝뚝 떨어지던 땀방울을 잊을 수 없다. 연극을 할 땐 배역을 뒤집어쓰고 사는 것 같았다. 차가운 연습실에 혼자 남아 끝까지 진지하게 인물과 치열하게 싸웠던 그 모습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고 했다.

이해랑연극재단(이사장 이방주)과 조선일보사가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은 연출가 이해랑(1916~1989) 선생이 추구한 리얼리즘 연극 정신을 이어가는 국내 최고 연극상이다. 수상자에겐 트로피와 상금 7000만원이 주어진다. 심사위원들은 “박지일은 38년째 연극 무대를 고집해 오고 있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라며 “그의 연기는 공간과 환경의 차이에 상관없이 마법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고, 극장을 다른 세계로 만드는 기적 같은 체험을 가능케 한다”고 평했다. 방준오 조선일보 사장은 시상식에서 “38년간 6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열정과 성실로 이뤄낸 박지일씨의 성취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연극에 청춘을 바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격려와 자극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올해 특별상은 이상용(73) 극단 ‘마산’ 대표가 받았다. 그는 53년간 마산을 중심으로 경남 연극을 이끌며 30여 편의 희곡을 쓰고 200여 편을 무대에 올렸다. 심사위원들은 “올곧은 리얼리즘 정신으로 경남 연극을 지켜왔다”고 선정 취지를 밝혔다. 이 대표는 “1971년부터 올해까지 다른 직장 전혀 가지지 않고 연극만 했다. 나야 원도 한도 없지만 뒷바라지하는 아내는 죽을 지경이었다”고 했다. “70대 중반이 되며 이제는 연극을 그만둘까 했는데, 오늘 이 상을 받고 보니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만둘 게 아니라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더 열심히 연극을 해야겠습니다.” 하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배우 손숙이 사회를 본 이날 시상식에는 김윤철·임선옥 등 이해랑연극상 운영위원, 박정자·김삼일·윤광진·남명렬·이성곤 등 심사위원, 김성녀·길해연·박명성·예수정·손진책·한태숙 등 역대 수상자, 이해랑 선생의 가족인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과 이석주·이은숙씨, 차혜영 차범석연극재단 이사장, 손정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평론가 정중헌·허순자, 배우 성노진·정경순,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영화 ‘파묘’의 장재현 감독, 방준오 조선일보 사장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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