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수박·한산모시… 키워낼 ‘젊은 손’ 없나요

광양∙서천/구동완 기자 2024. 4. 1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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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에 사라지는 지역 특산품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마을의 수박 농가에서 한 농민이 이 지역 특산품인 무등산 수박을 수확하고 있다(사진 왼쪽). 사진 오른쪽은 충남 서천군 한산 모시 홍보관에서 베틀로 모시 원단을 짜는 모습. 무등산 수박과 한산 모시 모두 고령화와 일손 부족 등으로 사라지고 있는 지방 특산품이다. /광주광역시 북구·구동완 기자

지난 5일 전남 광양시 진월면 구룡마을의 한 매화 농원. 입구에 들어서니 매화나무 50여 그루가 잎과 줄기가 무성하게 자란 채 방치돼 있었다. 주변 잡초는 성인 남성 허리 높이만큼 자라 매화나무를 넝쿨째 휘감고 있었다. 농장 주인 조순애(74)씨는 “9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뒤 매실 농사를 접었다”며 “나무에 농약 치고, 비료 주고, 트럭 불러서 매실 옮기고… 나이 든 여자 혼자서는 도저히 (농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해 먹을 만큼 밭농사만 근근이 하고 있다”며 상추밭을 가리켰다.

인근 진월면 신덕마을에서 매실 농사만 25년째 하고 있는 김순모(77)씨는 “30년 전과 비교하면 매실 농가가 3분의 1로 줄었고, 문 닫은 과수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녀 셋 모두 농사를 안 짓겠다며 도시로 떠났고, 가끔 도와주러 와서는 ‘힘드니까 농사 그만하라’고 한다”고 했다. 매실 주산지인 광양의 매실 농가는 2019년 4095가구에서 지난해 3468가구로, 최근 4년 사이 627가구, 15% 이상 줄었다. 생산량도 같은 기간 8331t에서 5698t으로, 31%(2633t) 감소했다.

고령화가 심화되고,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지방 특산품들이 사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산품은 농법이나 기술이전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고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다”며 “전수(傳受) 자체가 불가능해서 특산품의 명맥을 잇는 게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박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광주광역시의 ‘무등산 수박’도 위기다. 20㎏짜리 수박 한 통에 5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는 이른바 수박계의 명품이다. 무등산 수박은 종자 개량이 어렵고, 재배 환경도 까다로워 금곡마을 등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2000년 30가구에 이르던 재배 농가는 현재 9가구밖에 남지 않았다. 농민 수도 부모 가업을 이어받은 10여 명이 전부다. 최연소 농민 문광배(52)씨는 “무등산 수박은 전통 농법이 까다로워 갈수록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며 “이 상태로는 10년 뒤 수박 농사 짓는 사람이 5명 정도만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농부들이 광주의 특산품인 무등산 수박을 들어보이고 있다./김영근 기자

지난 4일 찾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한산모시’ 홍보관 지하에 마련된 모시 공방. 60대 여성 2명이 베틀에 앉아 쉴 틈 없이 베를 짜고 있었다. 교육생 이선숙(64)씨는 “교육받다가 중도 이탈한 사람이 많아 우리 기수에선 나를 포함해 2명만 남았다”고 했다. 홍보관과 공방 등을 운영하며 모시를 생산 중인 한산모시 조합은 최근 10년 사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128명에 이르던 조합원이 현재 49명 남았다. 이 중 가장 젊은 사람이 50대이고, 나머지 48명은 모두 60대 이상이다. 모시 생산량도 2019년 411필에서 지난해 257필로, 4년 동안 154필, 37%가 줄었다.

임은순(70) 조합 대표는 “모시는 재배부터 생산까지 1필을 만드는 데 6개월 넘게 걸리고, 일일이 입으로 갈래갈래 찢으면서 일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라며 “이렇다 보니 전수받으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외국인 근로자라도 찾으려고 다문화 센터에 가봤는데 그들도 배우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머지않아 명맥이 끊길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순병민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업 소득이 몇 년째 오르지 않고 있다 보니 노인들은 점차 농사를 접고 있고, 새로운 농민 유입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특히 까다로운 기술이전이 필수적인 특산품은 더 급속히 쇠락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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