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관의 마약 파는 사회] 마약 사범은 환자? 범죄자?… 좌·우 진영 따라 판단도, 해법도 다르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2024. 4.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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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개인이 저지른 잘못은
개인 책임이라 보고 범죄자 간주
진보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환원
‘마약 사범=환자’로 보고 치료 강조
그래픽=백형선

누구나 댓글을 쓸 수 있지만, 모두가 댓글을 달지는 않는다. 댓글을 달 정도로 열성을 보이는 건 극성팬 아니면, 안티팬이다. 다수가 중립인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양극단뿐이다. 거기다 익명과 비대면이 결합한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비난을 넘어, 보이지 않는 이에게 욕은 물론이고 저주를 퍼붓는다.

정부의 마약중독자 대처 또한 극단이다. 일반적으로 마약 문제에 대해서 보수 세력은 ‘마약 사범=범죄자’로 보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 달라”고 말했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 또한 2023년 4월 21일 국회 당정 협의에서 “마약 유통, 제조, 밀수, 상습적 흡입에 대해 놀랄 만큼 강력 처벌하고 많이 잡아내겠다. ‘악’ 소리 나게 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마약과 전쟁을 벌인다고 선포한 것이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및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직 대통령 모두 마약 전쟁을 선포했다. 보수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며, 개인이 저지른 잘못은 개인이 선택한 결과이므로 책임도 개인에게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범죄자로 간주하고 처벌하려고 한다.

진보는 개인의 잘못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환원하려 한다. 범죄자 개인을 처벌하는 동시에 제도나 시스템을 수정하려 한다. 더 나아가 범죄자의 인권마저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진보는 ‘마약 사범=환자’로 보고 치료를 강조한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법원이 마약류 중독자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 치료 보호를 실시하도록 ‘치료 보호 조건부 보호관찰’을 도입했다. 정부는 마약중독 치료 기관을 지정하여 치료비를 지원했으나 2017년 정부의 치료 예산은 1억2700만원이었고, 그중 5000만원을 홍보비로 사용하여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2018년 마약 사범이 1만2613명에서 2020년 1만8050명으로 약 50% 증가하는 동안, 2021년도 정부의 치료 예산은 고작 2억1000만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정부는 지원하기로 한 치료비조차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마약류 중독 환자를 가장 많이 치료하던 강남을지병원이 2019년 정부의 마약류 중독자 치료 병원 지정에서 빠졌다. 정부에서 받지 못한 치료비가 3억1532만원에 달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픽=백형선

마약과 치르는 전쟁에는 복잡한 정치적 역사가 있다. ‘마약 전쟁’의 원조이자 공화당 출신의 리처드 닉슨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과 시위가 한창인 1971년 6월 17일 마약을 “공공의 적 1호”라고 선언하고, 마약 전쟁(war on drugs)을 선포했다. 당시 반전 문화를 주도하는 대학생과 히피들이 마리화나를 비롯한 LSD와 엑스터시 등을 많이 하고 있었기에 보수 정권이 “마약과 전쟁”을 벌여 반전, 반정부 세력을 탄압하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었다.

1970년대 미국의 히피 문화는 한국의 대학생 문화로 유행하면서, 장발,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와 함께 대마초도 유행했다. 미국의 히피 문화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 ‘반전’과 ‘평화’를 추구했다면, 한국의 대학생 문화는 ‘저항’과 ‘자유’를 외쳤다.

미국에서 마약 전쟁이 시작된 4년 후, 한국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1975년은 매우 혼란스러운 해였다. 2월에는 유신헌법과 대통령 신임 여부를 동시에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4월에는 ‘인민혁명당 사건’이 일어났고, 5월에는 유신헌법을 반대하면 영장 없이 체포되는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되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문제였다. 오일 쇼크로 1973년 14.9%였던 경제성장률은 1974년 9.5%, 1975년 7.8%로 급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5년 12월 신중현, 이수미, 김세환, 조용필, 김추자, 이장희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른바 ‘대마초 파동’이었다. 스타들이 줄줄이 수갑을 찬 사진이 연일 신문과 방송으로 보도되었다. 모든 이슈가 대마초 파동으로 뒤덮였다. 이에 진보 진영은 보수 정권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마약 전쟁’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이런 과거 사건으로 진보 진영은 보수 정권의 ‘마약 전쟁’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이 500만원 이상의 마약 밀수 범죄만 수사할 수 있게 되면서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까지 발생했다. 힘을 합쳐 마약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여당과 야당에 이어 검찰과 경찰까지 다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마약 사범자는 2023년 합계 2만7611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마약중독자는 어느 한쪽이 주장하듯이 범죄자 또는 환자가 아니다. 범죄자인 동시에 환자다. 처벌과 치료가 같이 필요하다. 여당과 야당, 경찰과 검찰은 적어도 마약 문제에서는 또다시 싸울 게 아니라 협력해야 한다. 아니, 힘을 모아도 모자란다.

대마초 즐기기 위해 피워도 좋다?… 美 공화당 지지층 45%, 민주당은 73%가 찬성

마약 가운데 하나인 대마초에 대한 태도는 정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퓨리서치센터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59%가 마리화나의 오락적 사용에 찬성했는데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층은 45%가 찬성한 반면, 진보적 민주당 지지층은 73%가 찬성했다. 세대 간 차이도 분명한데, 18~29세는 72%가 찬성했지만 75세 이상은 30%만 찬성했다. 또한 1969년에는 겨우 12%만 찬성했지만, 2000년에는 31%, 2019년에는 66%로 시간이 흐르면서 찬성 비율이 높아졌다. 특히 미국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불법인 마리화나에 대해 각 주의 법률을 따르라고 해 사실상 마리화나 합법화의 길을 열었던 2013년에는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찬성 여론이 58%로 반대보다 높아졌다.

독일 또한 2024년 4월 1일 사회민주당(빨강), 자유 민주당(노랑), 녹색당(초록)이 연합한 ‘신호등’ 연립 정부가 의료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약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대마초가 합법화되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2004년 한 여배우의 변호인이 대마초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면서 헌법 소원을 낸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11월 25일 만장일치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참고로 헌법 소원을 낸 여배우는 1983년과 1986년 필로폰 투약, 1989년과 1994년 그리고 2004년 대마초 흡연으로 무려 마약류 전과만 5범이었다. 그녀 역시 대부분의 마약중독자가 그러하듯 대마초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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