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도 칼럼] 봄날은 간다

정상도 기자 2024. 4.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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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5년 ‘여소야대’, ‘대파’로 각인될 22대 총선
발등의 불 ‘균형발전’ 뒷전…“일하라, 제대로” 바로 민심

‘국민의 회초리 겸허히 받겠습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패한 국민의힘이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 내건 현수막 글귀다.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어 대통령 탄핵 및 개헌 저지선(200석)을 겨우 지켰다. 여당이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소수당인 첫 사례다. 국회의원 선거라지만, 윤석열 정권의 심판이었다.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등판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패장이 됐다. 선거가 야구와 다르듯, 반전은 없었다.

총선 표심은 일하는 국회를 원한다. 지난 10일 부산 부산진구 개성고등학교 개표소에서 개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국민의힘은 미래 세대를 껴안지 못했고, 중도층을 잃었고, 수도권에서 졌다. 특히 동서로 갈라진 정치 지형도를 두고 ‘삼국시대가 다시 왔다’는 힐난을 자초했다. 남북 대치 상황 속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에 기댄 지역당 수준으로 쪼그라든 모양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민이 회초리를 들었으니 철저한 반성과 혁신은 발등의 불이다. 전국 254개 지역구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 국민은 1317만9769명이다.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정당 앞날은 뻔하다.

내달 10일 취임 2주년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 책임이 크다. 정권 심판론의 표적이 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윤 대통령은 선거 기간 30% 중반 지지율에 머물렀다. ‘경제 민생 물가’와 ‘독단적 일방적 국정 운영’ 그리고 ‘김건희 여사 문제’가 배경이다. 이는 무능 불통 오만으로 치환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출범식 때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 국민이 꺼내든 경고장은 준엄하다. 대파가 그 예다. AP통신이 막말, 의사 파업과 함께 이번 선거 3대 키워드로 꼽았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란 윤 대통령 발언은 고물가에 어려움을 겪는 민심에 불을 질렀다.

대파하면 명지 대파다. 흰 줄기가 길고 단단하며, 대파 특유의 매운맛이 강한 덕분이다. 강서구 명지동 일대는 소금 산지였다. 그런데 1959년 태풍 ‘사라’가 염전을 폐허로 만들었다. 명지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시작한 대파 재배에 주목했다. 낙동강에서 흘러온 퇴적 토양이 대파 키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1960년대 이후 대파밭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명지 대파는 정부 품질인증 농산물로 처음 지정되며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윤 대통령이 명지에서 사전투표를 하면서 대파는 4·10 총선 상징으로 남았다. 지난 5일 부산항신항 7부두 개장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명지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일정을 바꿔 같은 장소에서 투표했다. 그는 “마음 속에 대파를 품고 투표했다”고 밝혔다. ‘응징 투표’이자 ‘대파 투표’다. 조국혁신당은 비례 의석 12석을 얻으며 제3당이 됐다. 조 대표 주장처럼 ‘대파 혁명’이 이뤄진 셈이다.

국민의힘이나 윤 대통령이나 민심을 달래고 국정 쇄신안을 내놓아야 할 책무가 막중하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일관된 민심의 경고를 외면한 결과다. 말로만 ‘국민이 늘 옳다’면서도 국민이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 행보를 거듭하며 빚어진 일이다. 범야권에선 벌써 한동훈 특검, 김건희 특검을 거론한다. 협치가 없으면 식물정부가 되기 십상이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과이불개 시위과의·‘논어’ 위령공편)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심판론을 주도하며 175석을 획득, 2028년까지 입법 권력을 쥐었다. 윤 정부 비판 재료로 대파를 물고 늘어진 이재명 대표는 3년 뒤 대권 도전의 든든한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을 향한 지지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비토가 더해졌음을 누구나 안다. 원내 1당으로서 정책·입법 주도권 행사의 책임 또한 엄중하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비이재명계 인사에게 불이익을 주며 불거진 ‘비명횡사’는 이 대표가 진 빚이다.

이번 선거가 대파로만 각인되는 건 참으로 아쉽다. 시대의 화두인 저출산이나 기후위기 대응 논의가 부족했다는 점을 여야가 인식하고 제대로 방안을 찾아야 마땅하다. 그나마 여야가 기후위기 대응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다행이다. 무엇보다 균형발전 대책이 미흡한 점이 뼈아프다. 수도권 집중이 불가피한 ‘서울메가시티’가 ‘득표용 불쏘시개’로 소비된 건 대표적인 나쁜 사례다. 도시 발전의 모멘텀이 절실한 부산에 생각이 미치면 속이 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1일 “거대 양당의 독식이 심화되고 위성정당 출현으로 비례대표제의 의미가 퇴색됐다”며 정치 개혁을 촉구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는 22대 국회 최우선 과제로 민생, 저출산과 경제재생, 균형발전, 복지, 기후위기 등을 꼽았다. 정쟁이 아니라 정책 경쟁을 하라는 의미다. 22대 국회의원 300명에게 생애 최고의 시간일 지금, 봄날은 금방 간다. 임기 4년이 마찬가지다. 제대로 일하는 국회가 바로 국민이 바라는 바다.

정상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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