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 여전… 달라진 게 없다 [세월호 10년, 새겨진 그날 ②]

구재원 기자 2024. 4.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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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확인·외국어 안내방송 없고... ‘화물 고박 규정’ 위반 운항 여객선도
해수부 “단속 강화, 안전 방안 모색”
지난 5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단원구 방아머리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출항한 한 여객선. 트럭 등 자동차 여러 대가 벨트에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여객선 선체 갑판에 실려 있다. 오민주기자

 

대한민국의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16일 그날에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경기일보 취재진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일주일 앞두고 인천과 안산의 선착장을 찾아 선박 운항 과정에서의 안전 수칙 준수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참사 이후 국내 연안여객선의 안전 규정이 대폭 강화됐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는, ‘안전불감증’이 되살아난 모습이었다.

지난 6일 오후 3시께 인천 옹진군 덕적도 선착장. 출항시간이 다가오자 안산시 단원구 방아머리항 여객선터미널로 가려는 승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승객들이 배에 올랐지만, 신분증 확인은 없었다. 승선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논란이 됐던 세월호 참사 이후 직원들은 표를 살 때, 개찰구를 지날 때, 배에 오를 때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신분증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여객선 직원은 탑승객들이 승선권만 내밀고 있었음에도 신분증을 꺼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신분증을 제출하지 않더라도 승선권만 확인한 뒤 배에 태웠다.

승객들의 안전불감증도 여전했다. 선내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비상 상황 발생 시 탈출할 수 있는 경로와 구명조끼 착용법 등을 알려주는 영상이 나왔지만 집중하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승선하자마자 잠을 자거나 밖으로 나가 경치를 구경하느라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음에도 중국어로 된 안내판은 찾아볼 수 없었고, 외국어로 된 안내방송도 전혀 없었다.

세월호 참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던 ‘화물 고박 규정’을 위반한 채 운항하는 여객선도 있었다.

지난 5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단원구 방아머리항 여객선터미널. 섬 나들이를 가려는 승객들이 모두 배에 올라탄 후 자동차 여러 대가 여객선 선체 갑판에 실렸다. 배가 항구를 떠나 운항을 시작했지만, 갑판에 실린 트럭은 고정돼 있지 않았다.

15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선박안전법상 화물 해상 운송 시 선박 검사기관이 인증한 화물적재고박 지침에 따라 벨트나 줄 등으로 컨테이너와 선체 갑판을 묶어 고정한 뒤 운항해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셈이다. 이 같은 법 위반은 배가 기울어지거나 흔들렸을 경우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운항관리자가 기본적인 준수사항을 지킬 수 있도록 단속을 강화하겠다”며 “관계 기관과 함께 비노출 점검단을 꾸려 운항 중인 여객선과 유람선을 각각 승선해 안전 위해 요소를 점검하고 안전관리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 당신의 일상은 안전한가요?

‘보여주기 대책’ 10년의 세월… ‘반복된 人災’ 후폭풍

일러스트. 유동수화백

세월호 참사 10년, 목 놓아 외친 ‘안전’에도 변한 건 없었다. 여전히 곳곳에서는 대형 재난 참사가 이어졌고, 이들 사고의 원인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人災)’로 나타났다.

1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다중 밀집 시설 대형 화재, 해양 사고, 사업장 대규모 인명·화학 사고 등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사회 재난 사고는 174건에 달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광주 학동 3구역 재개발 사업지 붕괴 사고,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까지 기본적인 안전 의식만 있었다면 피할 수 있는 참사가 이어지면서 ‘안전’을 사회 최우선 가치로 세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해상사고 선박서 ‘또’ 초과 승선…여전한 화물선 안전불감증

세월호 참사 당시 침몰 원인으로 무리한 불법 개조와 증축, 고박 불량, 정원 추가 등 안전관리 소홀이 지목됐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안전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 대책’을 발표, 안전관리 지도·감독체계를 전면 개편했고 안전 규정 위반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동시에 처벌 규정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최근까지 화물선에 정원을 초과해 승객을 태우는 무단 승선이 관행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화물을 부실하게 고정하고 운항하는 등의 해양 안전 위협 불법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17일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화물선과 LNG운반선이 충돌하는 사고를 들 수 있다. 사고 당시 해경은 77명을 구조했다. 그런데 이 중 화물선에서 구조한 인원은 58명. 정원보다 11명이 더 타고 있었다. 국내 화물선의 경우 구명정과 구명뗏목 등 응급상황시 탈출이 가능한 수단을 고려해 최대 승선 인원을 정하는 만큼 만약 해경의 구조 활동이 늦어졌다면 대형 인명사고가 날 수 있던 상황이었다.

또 지난 2월23일에는 제주지방해양경찰청과 제주해양수사관리단이 합동으로 불시 점검한 결과, 화물 고박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채 제주로 입항한 화물선이 적발되기도 했다. 화물을 고정하지 않고 운항할 경우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복원력을 잃어 대형 사고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 ‘사고-대책-사고-대책’…불편한 쳇바퀴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안전 대책이 쏟아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형 사고가 나면 정부는 이에 따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겉도는 대책’에 그치며 비슷한 사고의 반복을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세월호 구조 실패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재난통신 네트워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조5천억원을 들여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고도 정작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2022년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다.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과 소방, 지자체 등 333개 국가기관의 무선통신망을 하나로 통합해 실시간으로 재난 상황을 통보할 수 있도록 구축한 시스템으로 무전기 버튼 하나로 경찰부터 소방, 지자체까지 직원들이 음성·영상통화부터 문자, 동영상 및 사진 전송 기능을 활용해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당시 서울소방이 이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무용지물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8년여가 지난 뒤 발생한 사고였지만, 그 사이 제대로된 훈련 등이 없어 이 같은 문제점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탓이다.

판박이형 대형 참사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장성 요양병원에서 불이나 3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정부는 소방시설 설치 및 유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했다. 의료기관 등은 피난이 어려운 중환자, 침상 고령 환자가 많아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높은 만큼 요양병원에 스프링클러와 자동화재속보설비 설치를 의무화한 것.

그러나 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나면서 19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당 병원은 중소병원이라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의료시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스프링클러·자동화재속보설비 의무 설치 대상에 중소 규모 의료시설을 포함하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했다. 그러나 2019년 시행령 개정 후 소급 적용 유예기간 3년이 지난 이후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실제 시행 시기를 2026년 12월로 미루면서 여전히 중소병원은 화재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인터뷰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 “국민 안전권 보장 위한… 투자·인식 개선 필요”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

국민의 안전권에 관한 기고와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는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의 안전지수는 ‘빨간불’이라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지금도 수십에서 수백 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하루에도 몇 건씩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우 급속한 산업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으로 시민과 근로자의 위험을 무시하고 기업 이익을 추구해 노동자 안전뿐 아니라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고 후속대책 마련 이후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의 목적이 단순히 ‘주주 이익 증대’에 머무르기 보다 이해관계자 전반의 이익을 고려한다는 관점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안전과 관련된 투자를 단순 비용으로 생각하기 보다 장기적으로 사회 안전을 위한 기업의 책임을 다하는 불가결한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국민의 안전권 보장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안전 문제의 핵심은 근로자와 시민이 근로 현장과 사회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세부적으로 미리 파악하고 참사가 생기기 전에 이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누구나 삶을 유지하는 공간, 일하는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스스로 위험을 개선할 수 있는 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또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위험을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빠른 경제 성장, 효율성 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왔다면 앞으로는 안전에 가치를 둘 필요가 있다”며 “위험이 없음, 위협으로부터의 자유로움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사회 제도를 설계할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구재원 기자 kjw9919@kyeonggi.com
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한수진 기자 hansujin0112@kyeonggi.com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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