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다른 이재명 사법리스크…새 유형의 박해에 맞서는 전략 필요 [왜냐면]
송백석 | 영국 뉴캐슬대 정치학 박사·칼빈대 교수
김대중과 이재명은 모두 민주진영의 대권후보로서 첫 번째 도전에서 패배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도전에서도 유사함이 나타난다. 사법리스크, 즉 ‘사법 처벌로 인한 대통령의 피선거권 제한’으로 인한 대선 출마의 불확실성이다. 김대중은 드라마틱한 정치의 전개속에서 사면복권으로 그것을 극복했고 이재명의 경우는 현재진행형이다.
김대중은 첫 번째 대권 도전 이후 사법리스크가 사라져 자유롭게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기까지 16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을 상대로 처음 대권에 도전했던 김대중은 1972년 유신헌법의 공표를 지켜봤고, 1973년 납치사건을 겪었으며, 1977년 명동 구국선언 주모죄로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왔을 때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사면복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81년 내란음모죄로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1987년 6·29선언이 나오고 김대중은 다시 사면복권을 받게 된다. 사법리스크에서 탈출한 김대중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생긴 1987년 두 번째 대권 도전도 실패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1987년 이후 대통령의 꿈을 막는 사법리스크가 없었으며, 결국 1997년 대통령 당선이라는 승리의 정치 신화를 쓸 수 있었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는 현재진행형이다. 김대중이 1987년 사면복권된 것은 그의 나이 63살 때였다. 이미 육십 언저리에 들어선 이재명이 피선거권을 제한받는다면 비운의 정치인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김대중도 나이 73살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을 위안 삼아 시야를 넓게 멀리 보면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으로서 가장 좋은 것은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 대선 출마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통찰이 필요할지 모른다. 변화한 정치사회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의 바탕 위에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박해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그것에 상응하는 새로운 유형의 응전을 구사해야 한다.
한국의 현 정치사회는 무엇보다도 삼권분립의 민주적 구조가 제도적으로 안정화 되어 있다. 삼권 동일체의 박정희·전두환의 시대에는 검찰 행정 권력의 정치적 기소가 사법부의 판결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노골적인 정치적 기소에 대한 반작용이 무력화되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에 대한 기소는 뚜렷한 정치적 박해의 성격을 가질 수 있었다. 김대중의 사법리스크는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긴급조치 9호 위반, 내란음모,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죄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에 반해 이재명의 혐의 사안은 외관상 정치적인 것과 무관하다. 이재명은 대장동·위례신도시 특혜 의혹 사건과 백현동 아파트 개발 특혜 의혹 사건에서 배임뇌물 혐의로 기소됐다. 허위사실 공표 사건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 중이다. 기소 권력의 정치적 의도는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법리스크가 윤석열 대통령의 독재 정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재명의 외침은 당연히 김대중의 그것만큼 울림이 있을 수 없다.
이 새로운 유형의 박해는 정적의 정치 생명을 앗아가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 정적을 자잘한 잡범과 경제사범으로 단죄하지만 무시무시한 정치 사건으로 정치생명을 끝내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이 유형의 박해는 정치적 의도가 채색되어 대중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의 사법리스크가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권력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대중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윤석열 대통령의 권력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개연성이 높은 추정일 뿐이다. 설사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세력이 이재명에 대한 정치적 기소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해도 그 과정 자체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민주적으로 독립된 사법부는 이재명이 넘어야 하는 또 하나 높은 산이다. 사건이 넘어온 그 순간부터 이재명의 정치 생명줄은 사법부가 관할한다. 좋아진 정치 환경이 유리한 재판으로 이어진다는 가설이 증명되는 것은 불확실하다. ‘오로지 양심과 법리에 따라 증거만을주시한다’는 법관의 눈에는 자비가 없다. 이재명에게 ‘증거 재판주의’는 억울한 사실의 인정을 막아내지만 동시에 다양한 비법률적 고려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새로운 유형의 박해에 맞서는 새로운 유형의 응전 전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재명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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