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도량형 통일과 국민의 알권리

김경렬 2024. 4. 1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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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금융부동산부 금융증권팀장

도량형은 길이, 부피, 무게 등을 재는 법이다. 도(度)는 길이, 량(量)은 부피, 형(衡)은 무게를 뜻한다. 진(秦)나라 36대 군주 진시황제(秦始皇帝)는 기원전 221년 천하 패권을 거머쥐자 도량형부터 통일했다. 지역별로 다른 단위를 하나로 기준 잡아 문화를 합친 것이다. 통합은 빨랐다. 기준을 어길 시 엄벌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세종대왕이 도량형을 통일했다. 세종은 조선 전기 음악가인 박연에게 도량형 기준을 세워보라 명했다. 박연은 12음계 기준이 되는 피리인 '황종관'을 제작했고, 여기에 착안해 '황종척'(黃鐘尺, 34.7cm)을 만들었다.

단위 통합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다. 도량형 기준을 세운 뒤, 호구는 쉽게 파악됐고 세수 문제는 해결됐다. 국가 행정이 쉬워지면서 각종 불법·비리와 '눈먼 돈(주인없는 돈)'에 대한 추적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세종대왕은 지금도 '성군'(聖君)으로 불리고 있다. 측량과 문자 등 기준을 만들고 백성들이 이를 널리 활용하면서 삶이 윤택해졌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국고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면서 나라를 손바닥 안에서 주물렀다. 나라를 다스리기도 편했다. 오죽했으면 할 일이 없이 불로초나 구하러 다녔다는 '야사(민간에서 개인이 저술한 역사)'의 주인공이 됐을까.

현대에 와서는 전세계가 화폐 단위를 통합했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 미국의 달러화는 기축통화가 됐다. 독일은 전쟁 배상금을 달러로 지불해야 했다. 이후 달러가 많은 나라, 외환보유액이 많은 국가는 '부자 나라'로 불린다. 미국은 달러에 힘입어 꽤 오랜 기간 경제적 우위를 점했다. 사람들은 달러와 자국 통화의 환율 변동을 통해 경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누구나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일부 지역간 손을 잡고 단위를 합치는 현상도 일어났다. 유럽 상당수 국가가 유로화 사용에 동참했다. 유로화 통용 지역 내에서는 화폐교환 수수료도 없다. 교류는 활발해졌고 민간 소비생활은 활력이 붙었다. 해외에서 유럽을 찾는 여행객들 역시 국경을 넘나드는 부담이 줄었다. 내외수 경기가 활발한 곳이라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는 선순환 효과도 봤다.

이처럼 도량형이나 화폐 단위를 합치는 것은 누구든지 쉽게 수치를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 새로운 정보를 얻어낼 수 있고, 불합리한 정보를 적발하는 위험감지 기능도 있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헌법 제21조, 정보 접근·수집·처리의 자유)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다양한 금융상품의 공시 기준을 통합하고 있다. 알기쉽게 정보를 공유해 금융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을 돕자는 취지다. 금융감독원의 통합연금포털의 퇴직연금 수수료 비교공시는 각 사별 수수료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수수료와 제공서비스를 살펴본 소비자들은 당장 어떤 상품에 가입해야할지 계산이 선다.

대환대출 비교플랫폼도 인기다. 플랫폼에서는 대출 상품을 비교할 수 있다. 금리가 싸고, 필요한 혜택을 찾아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대출상품 비교·추천 플랫폼은 혁신금융서비스의 범용성을 인정받아 전문가로부터 소비자의 편익 부문 1위 기술로 인정받기도 했다. 당국이 총대를 메고 금융사들을 독려한 덕분이다.

하지만 민감한 정보는 다르다. 이런 정보는 내부적으로 기준을 따로 둘 때가 많다. 공개된 정보의 기준이 타사와 다른 경우도 상당수다. 회사별로 기준이 다를 경우 투자자들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 상대방의 말만 듣고 투자했다가 갑작스런 파산에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다. 각 회사들에게 공시 기준이 다른 이유를 물으면 매번 "내부 책정 등급이 따로 있고 기준은 공개할 수 없다"고 답한다.

어떤 정보는 접근조차 어렵다. 접근하더라도 안전보장 등을 이유로 비밀에 부칠 때가 부지기수다. 정식 절차를 통해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더라도 비공개 처리될 때가 많다.

기준이 모호한 정보는 화를 자초한다. 시장의 불신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위기가 커질 때면 도량형 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객관성과 투명성이 담보된 정보가 절실하다. iam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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