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수어 갖춘 호수공원은 대청호가 유일"

안수진 기자(goodvibes52@mk.co.kr) 2024. 4. 1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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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장애 호수공원' 주역 이규승 대전 동구보건소 전문관
대청호 오백리길 걷기코스에
자막·수어·음성 해설 담아
장애우 접근성 획기적 개선
국내 첫 '수어영상 안내서'도
"장애인·비장애인 구별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 중요
노하우 다른 기관에도 전달"

장애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물리적·제도적 장애물을 허무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의 문턱'을 없애기 위해 자막과 수어·음성 해설 등을 활용해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지역사회에서 '무장애 환경' 조성을 이끄는 이규승 대전 동구보건소 건강생활지원과 전문경력관(57)을 최근 매일경제가 만났다.

그는 지난 1월 대청호를 둘러싼 걷기 코스와 그에 담긴 이야기를 '무장애 책자'로 펴냈다. 2017년 시작된 '대청호 건강스토리' 사업은 지역 주민의 걷기 실천율을 높이기 위한 한 공무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이 경력관은 "일방향적 교육이 아닌 시민이 참여하는 건강 환경을 조성하고 싶었다"며 "지역을 사랑하는 주민과 문화활동가까지 총 64명의 주민 원정대와 3년간 함께하며 7개 코스, 13개 지점의 '대청호 건강스토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약 24㎞에 이르는 대청호 오백리길 걷기 코스 곳곳에 생태·문화·역사 이야기를 담았다.

주민을 위한 건강 환경을 마련했지만 이 경력관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10여 년 전 보건소 건강증진센터를 찾았던 청각장애인이 떠올랐다. 글을 볼 수 있음에도 간단한 설문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의아했다"며 "선천적 청각·언어장애인이 태어나며 배우는 모국어는 한글이 아닌 '수어'라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언젠가는 꼭 그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 경력관은 대청호 건강스토리를 수어 영상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참고할 만한 매뉴얼이 없어 시립 청각장애인 복지관과 협업해 내용 전문을 수어 시나리오로 번안하고, 청각장애인통역사(농통역사)를 섭외해 촬영 환경과 감수 단계까지 직접 구성했다. 이 경력관은 이러한 노하우를 담아 지난해 국내 첫 '수어 영상 가이드' 안내서를 발간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기관에 안내서가 배포된 이후 국립경주박물관, 관세청 등 수어 영상 제작을 희망하는 여러 기관에서 문의가 왔다.

올해 1월 대청호 건강스토리를 책자 형태로 펴내며 떠올린 아이디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장애 안내서'였다. 표지 제목을 점자로 표기하고 각 지면 상단에 QR코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양각으로 새겼다. 그는 "처음엔 책의 모든 내용을 점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각장애인 대다수도 점자가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 경력관은 책자를 만들며 가장 중요한 가치를 '공유'에 뒀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찾겠다는 것이 목표였고, 두 번째는 이 과정에서 배운 노하우를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 목표였다"고 덧붙였다.

2003년부터 대전 동구보건소에서 건강운동관리사로 근무 중인 이 경력관은 박사 과정 중 학비를 벌기 위해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에도 끊임없는 연구 활동으로 12편의 생리학 관련 논문을 펴냈다. 그가 공무원으로 일하며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예산도 인력 부족도 아닌 '인식'이었다. 이 경력관은 "'보건소 직원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경직된 공직사회에서 담당 영역을 따지다 보면 일을 진행하기가 어렵다"며 "공직자가 틀을 깨고 조금 더 협업하는 자세를 지니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내년 책자에는 대청호 건강스토리의 내용을 영어·일본어·중국어로 번역해 첨부할 계획이다. 이 경력관은 "전 세계에 호수공원은 정말 많고 장애인이 걷기 좋은 거리도 꽤 많다. 하지만 정보 접근성까지 갖춘 '배리어 프리' 호수공원은 대청호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며 "세계 1호 무장애 호수공원을 위한 작은 디딤돌을 계속 놓고 싶다"고 덧붙였다.

[안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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