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생활은 감옥…불필요한 담장 많아”

한겨레 2024. 4. 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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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배신 한나라당 공작인 듯”
“이인제 거만해져 대통령 돼선 안돼”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62화 후기: 인간 노무현 2

2002년 대통령선거 전날 밤인 12월18일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노무현 지지 철회를 선언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자택을 찾아갔다가 거절당한 뒤 물러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9월24일(수) 오전 10:45~12:15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울산·경남 언론회견에 배석했다. 이라크 파병에 관한 마지막 질문에 노 대통령이 아랍의 민심, 한반도 안보, 위험도 등 몇 가지 원칙을 설명하다가 느닷없이 “불투명할수록 우리의 협상력이 높아지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계산적으로 비치는 데다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하나도 좋을 게 없는 너무 솔직한 이야기다. 회견 도중 옆에 앉은 문희상 실장과 유인태 수석이 번갈아 가며 졸았다. 어느 날은 내 주위의 문희상, 유인태, 문재인, 김세옥 네 명이 다 졸고 있는 장면이 TV카메라에 찍혔는데 윤태영 대변인이 부탁해서 화면에서 뺀 적도 있다. 문재인 수석이 언젠가 나한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조는 일이 없습니까?” 나는 나라 걱정에 밤에도 잠이 잘 오지 않는데 하물며 낮에야.

2003년 9월24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부산·울산·경남지역 언론인과의 합동회견을 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바로 이어서 언론인과의 오찬(인왕실)을 시작하기 직전, 이병완 홍보수석에게 아까 대통령 발언 ‘불투명할수록’이 문제 될 것 같다고 하니 역시 같은 생각이라고 한다. 이병완 수석이 기자 대표격인 권아무개 MBC 보도국장에게 그 말은 좀 빼달라고 부탁했다. 권 국장이 큰 소리로 마지막 대목의 ‘불투명할수록’ 발언은 국익을 생각해서 빼자고 제의했다. 어떤 기자가 질문했다. “그건 누구 입장입니까?” 권, “청와대 입장입니다.” 그런데 조금 뒤 오찬을 시작하는데 보니 조선일보의 신정록 기자(이름은 ‘곧게 기록하는’ 이름인데, 실제는 그렇지 못해서…라고 겸손하게 말하던 기자)가 풀기자로 들어와 열심히 노트에 받아 적고 있어서 조금 걱정이 됐다. 아까 그 말을 들었는지? 들었으면 과연 협조해 줄지? 나중에 보니 협조해줬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9월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태풍피해 등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태풍때 연극 관람 논란…“연극인 도와주고 싶어”

오찬 도중 어느 기자가 태풍 오던 날 저녁 노 대통령의 연극 관람에 관해 사과할 생각이 없는지 질문했다. 노 대통령이 답했다. “원래 연극을 좋아하고, 아는 연극인이 많다. 연극은 다른 예술과 달리 돈도 못 벌고 고생하니 좀 도와줘야 한다는 평소 생각이 있다. 표는 예약해 둔 것이고, 문제가 된 날(2003년 9월12일)은 추석 연휴인데 낮에 태풍 대비 지시 등 할 일은 다 해놓았지만 저녁에 가느냐 마느냐 고민했다. 그날 연극이 초연인데 우리가 안 가서 앞자리 10개쯤 텅 비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갔는데 잘못됐다. 국민한테 죄송하게 생각한다. 외국은 부시가 이라크 전쟁 중에도 휴가 가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점에서 지도층에 대한 도덕적 요구가 너무 높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도덕 기준이 너무 높고 또 이중적 기준이 있어서 때로는 별 잘못 없이 몰매를 맞고 매장되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2003년 9월20일 노무현 대통령이 태풍 `매미\'의 피해가 집중된 강원도 정선지역을 방문해 피해 주민들을 위로하고 벼베기와 복구·구호 자원봉사활동 중인 주민과 공무원, 군 장병과 의료인들을 격려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10월6일(월) 인도네시아 발리. 저녁 7:30~9:30 수행원 만찬(Garden Cafe). 노 대통령이 말했다. “내일 회의(한중일 정상회의)는 준비할 것도 없다. 내가 1989년 청문회 스타라고 하는데 자세를 한껏 낮추자고 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는지 모른다. 1986년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보고서를 읽고 아내(권양숙 여사)는 구토할 뻔했다. 민정당 출신 이종찬을 서울시장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 종로구 유지들 모아서 망년회 때 만취해서 ‘부산 가겠다’ 폭탄선언하고 두달 뒤 결국 눈물 흘렸다. 부산 선거 여론조사는 내가 8% 앞섰는데 막상 총선(2000년 4월13일) 사흘전 남북정상회담 발표 여파로 실패했다. 영남 사람들은 얍삽한 것 싫어한다.

2003년 10월6일 ASEAN+3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숙소에서 공식수행원들과 만찬을 함께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다들 걱정했지만 앓던 이 빠진 기분

정몽준 배신은 미스터리다. 한나라당의 집요한 공작, 그리고 감정이 작용했을 것이다. 명동에서 신촌 가는 차 속에서 폰으로 정몽준이 항의하더라. “왜 나를 다음 후보로 선언하지 않느냐?” 두 번째 전화 오길래 화가 났다. 정몽준이 연단 위에 딴 사람 못 올라오게 했다. ‘치아뿌라!’ 밤중에 정몽준 집에 찾아가 헛걸음하고 돌아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잘 자고 있는데 새벽 4시에 김원기, 정대철 등이 몰려왔다. 모두 얼굴이 노래져서 걱정하더라. 나는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인데 내가 이상 감각인가? 내년 총선에 나는 자신 있다. 수석들도 모르는 비책이 있다.”

10월14일(화) 저녁 6~9시 관저 만찬(사회장관 8명+문희상, 권오규, 박주현, 나). 노 대통령이 옛날이야기를 했다. 1980~81년 부산에서 변호사 할 때 주로 돈 되는 세금 사건 담당하다가 나중에는 돈 안 되는 노동 쪽으로 갔다. 그래서 사무실에 거의 안 있고, 울산, 대구, 진해 등 각지를 돌아다녔다. 동업자인 문재인 변호사한테서 하루 출장비 3만원 받아쓰고. 한번 가서는 하루에 3건 하기도 하고. 그 뒤 민주화운동 해야겠고 그 전에 돈은 좀 벌어놓으려고 장수천 (생수)사업을 시작했는데 적자의 연속이었다. 김호준을 찾아가 사업을 넘겨주려 하니 자기도 큰 사업을 벌여놓아 여력이 없다고 하면서 돈은 대 주겠다 해서 안희정을 보내서 돈 받아 오게 했다. 그 뒤로도 계속 사업이 부진, 결국 사업 정리하고 돈 돌려줘야 하는데 돈이 없어 못 돌려줬고 안희정은 죄가 없다. 김호준, 안희정 두 사람 다 노무현하고는 상관없는 것으로 진술했다.

최도술은 선거 때 부산에서 자금 담당이었다. 친구, 선배(자기가 아는 사람이 다 내가 아는 사람이고…)들한테서 2백~3백만원 정도 받아내고 고생했다. 아마 본인이 빚도 지고 했을 거다. 이영로라고 은행 다니던 선배가 손길승 회장하고 잘 아는데 최가 먼저 제의했는지 모르지만 이영로를 통해 돈 받아서 아마 빚 갚는 데 쓴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기명, 안희정, 양길승, 최도술… 선진국 같으면 이 정도면 대통령 사임해야 할 것이다(또 사임할 듯한 뉘앙스). 이인제는 13대 국회 이후 거만해져서 저 사람은 절대로 대통령 돼선 안 되겠다 싶어서 막아섰는데 내가 대통령 돼버렸다.”

2003년 10월13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부동산 문제, 노사관계, 지방분권,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그동안의 성과를 설명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이인제 거만해 대통령 안돼…내가 대통령 돼버려”

한명숙 장관이 “대통령이 연설할 때 외국인 상대일 때는 원고 그대로 읽는 게 좋겠고, 국내용은 키워드 중심으로 자유롭게 연설”할 것을 권유했다. 이창동 장관은 “어제 대통령 국회연설 마지막에 송두율 부분이 너무 길었다”고 지적했다. 모두들 내용은 좋았으나 중간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강금실 장관은 “그 연설 덕분에 검찰의 태도가 변했다. 처음에는 구속하려고 해서 장관과 논쟁하고 있었는데 어제 연설 이후 아마 구속은 아닌 듯하다. 사람은 동정심이 안 가고, 검찰에서도 끝까지 거짓말하고, 증거가 나오면 말 바꾸고 해서 검찰이 손보려고 벼른다”고 비판하자 노 대통령이 말했다. “누구나 거짓말은 권리다. 자기 보호하려고 거짓말하는 것 못 나무란다.”

12월1일(월) 저녁 6시 관저 만찬(김병준, 정찬용, 나) 국정과제 추진 방식을 논의한 뒤 식사하면서 잡담을 했다. 노 대통령은 방금 머리를 감았고 티셔츠 차림에 맨발로 등장했다. 조금 전 본관 뒷산 25분 등산 코스를 다녀왔다고 했다. “매일 등산해야겠다. 불필요한 담장이 너무 많다. 물어보니 제1, 제2 저지선이라 하니 우습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경호원들이 너무 많이 따라온다.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다.”

이어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생활은 감옥 같다. 영화관 같은데도 가고 싶은데 경호상 도저히 불가능하다. 며칠 전 청와대 사슴을 동물원에 보내줬다. 삽살개, 진돗개도 있었는데 하도 짖어대 청안당(淸安堂)에 갈 수 없었다. 아무리 얼굴을 익히려 해도 옛 주인과 달라서 그런지 자꾸 짖어 결국 바깥으로 내보냈다. 아무리 그렇지만 사람과 같이 살아야지 싶어서 진돗개는 애견가에게, 삽살개는 대구 삽살개 박사(경북대 유전공학과 하지홍 교수)에게 보냈다.”

“부처 간 이견 조정을 총리실에 맡겨뒀는데 문제는 부처에서 별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총리실에 힘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총리가 직접 나서면 좀 조정되는데 솔직히 총리하고는 코드에 문제가 있으나 대통령이 이래라저래라 지시할 수도 없고 비서실장이나 정책실장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쪽에서 잘 알아서 처리한다.” 노 대통령과 고건 총리는 코드는 좀 달랐으나 상호 존중하는 관계였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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