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자 가능”…파주 참극 부른 ‘텔레그램 구인광고’

정윤경 기자 2024. 4. 1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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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내 구인·구직 공고가 강력 범죄의 온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경기 파주시 한 호텔에서 숨진 20대 4명 중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도 텔레그램 구인 공고를 통해 여성을 유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0일 파주 호텔 내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 A씨와 추락사한 남성 B씨는 일면식 없던 사이로 텔레그램 공개 채널의 구인·구직 글을 통해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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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접속해 봤더니…유명 구직 사이트 사칭한 허위 공고 수두룩
실체 없는 ‘유령 회사’ 게재해 구직자 현혹하기도
전문가 “텔레그램 내 온라인 공고, 범죄 미끼 될 수 있어”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구인정보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램 내 구인·구직 공고가 강력 범죄의 온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경기 파주시 한 호텔에서 숨진 20대 4명 중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도 텔레그램 구인 공고를 통해 여성을 유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무직이었던 남성은 구인자에 대한 감시망이 없는 텔레그램의 허점을 악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0일 파주 호텔 내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 A씨와 추락사한 남성 B씨는 일면식 없던 사이로 텔레그램 공개 채널의 구인·구직 글을 통해 만나게 됐다. B씨가 올린 구인 글을 보고 A씨가 "일을 하겠다"고 연락하자, B씨는 "4월8일 오후 10시까지 (사건이 발생한) 호텔로 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B씨는 아르바이트 면접 등을 보기 위해 A씨를 호텔로 유인한 것이 아니었다. B씨는 이곳에서 또 다른 남성과 A씨를 포함한 여성 2명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비대면으로 라포 형성한 뒤 성범죄 저지르기도"

경찰에 따르면, B씨가 A씨를 유인한 구인 글에는 성매매 등 범죄와 연관된 내용은 없었다. 경찰은 해당 공고가 일반적인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글이라고 설명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은 별다른 직업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직업도 전무한 이들이 아르바이트 공고문을 올리고 구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통 채널이 '텔레그램'이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은 알바천국, 인크루트 등과 달리 구인광고를 게재할 때 구인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다. 모든 대화를 익명으로 나눌 수 있고 비밀 대화방을 통해 대화 흔적을 지울 수도 있다.

텔레그램에 접속해 아르바이트를 구해보니 사업체를 밝히지 않은 구인 공고가 허다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업체명을 게재한 곳도 있었다. 이들은 '신불자(신용불량자)도 가능' '열심히 하면 월 1000(만원) 이상' '일당 30만원 이상 보장'이라며 구직자를 유인했다. 또 구직자가 안심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국내 유명 구인·구직 사이트를 사칭하기도 했다.

텔레그램 내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가 게재돼 있다. ⓒ텔레그램 캡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이트에 올라온 구인 글이 범죄자가 던진 미끼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찰 출신인 이세일 법무법인 세일 변호사는 시사저널과 통화에서 "텔레그램 등에 구인 글을 올린 남성이 상대 여성과 비대면으로 라포(rapport·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를 형성한 뒤, 오프라인으로 만나자고 유도해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비일비재하다"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텔레그램 내 대화방이 폭파되도록 만들어 추적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허위 구인 광고로부터 청년 등을 보호하기 위해 직업정보제공사업자가 구인 광고를 게재할 때 사업자등록증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직업안정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그러나 텔레그램,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을 통한 구인·구직까지 심의하는 건 어려워 규제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HR(인적자원)업계 관계자는 "공식 사이트가 아닌 텔레그램 등 외부 채널을 통해 구인·구직 공고를 올리는 일은 없다"면서 "기업회원을 받을 때 기업정보와 기업인증, 인사담당자 정보 기입 절차를 거쳐 가입을 승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텔레그램 내 함정 수사 필요성도 대두됐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행 의도가 없는 사람에게 의도를 불러일으켜 수사하는 건 불법이지만 명확히 의도를 갖고 텔레그램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함정 수사가 가능하다"면서 "온라인상 허위 공고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 수사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면 (함정 수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도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내 허위 공고를 필터링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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