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약속 지켰죠… 제가 드리는 존중이에요”

이유진 기자 2024. 4. 1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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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세월호 책’ 5권 작업한 편집자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가 말하는 참사 당사자·연대자들의 기록 작업 의미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가 만든 ‘세월호 책’은 총 5권이다. 2024년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책 3권을 동시에 냈다. 박 대표는 “부모님들과 기록단에 색이 바래지 않는 좋은 책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는 2015년 이후 ‘세월호 책’을 5권 만들었다. 창비에 다니던 시절인 2015년 ‘세월호 부모’의 목소리를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이듬해 형제자매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묶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각각 창비 펴냄)를 작업했다. 그리고 2024년 3월 말 이 책들의 10년 뒤 버전인 <520번의 금요일>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그리고 세월호의 시민 연대자를 상징하는 ‘304낭독회’의 선집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각각 온다프레스 펴냄)까지 3권을 동시에 선보였다. 2024년 4월1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박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옮긴다. -편집자

아이가 오기로 한 금요일, 520번 지났다

제 출판사는 강원도 고성 아야진에 있어요. 고향은 서울이고, 아버지도 서울 분이세요. 저와 배우자 둘 다 이곳과 연고가 전혀 없어요. 고성에는 여행 갔다가 이주하게 됐어요. 다행히 서울 사람 같지 않은 친근한 외모가 이웃과 어울리는 데 도움이 됐죠. 벌써 만 6년이네요. 온다프레스는 2017년 10월 창립하고 2018년 4월 첫 책을 냈어요. ‘온다’는 이탈리아어로 ‘파도’라는 뜻이에요.

세월호 책은 지금까지 5권을 만들었어요. 2014년 11월, 창비에서 근무하던 때인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한 분께 전화를 받았어요. ‘세월호 부모님’ 인터뷰를 하는데 책을 낼 수 없겠냐고요. 염종선 당시 부장(현 창비 대표이사)이 원고를 검토했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금요일엔 돌아오렴>(2015)은 10만 부 찍었어요. 출판사는 팔수록 손해였죠. 제작비를 제외하고 수익금은 모두 기부했으니까요.(기부금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등이 위임한 ‘인권재단 사람’이 운용해 추모사업 등에 쓰였다.)

박 대표는 “‘세월호’에는 매끈한 이론이 담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며 “공식적으로 승인된 기록을 갖지 못한 부모들이 황량하고 막막한 컨테이너 사무실 공간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그 뒤 배경내 작가 등 청소년 인권을 고민해온 작가들이 형제자매들과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눈여겨봤어요. 그 친구들 이야기를 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다시 봄이 올 거예요>(2016)를 냈어요. 그때는 인터뷰이가 거의 10대였기 때문에 말문 여는 것도 어려웠죠. 그때 이 책을 낸 뒤 어느 정도는 제가 편집자로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출간 기념 모임을 하고 작가들과 헤어지면서 ‘만약 10년 뒤에 각자 여건이 된다면 10주기 책을 만들어보자’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2022년 유해정 작가가 “약속 잊지 않으셨겠죠?”라고 전화를 걸어왔어요. 제가 아야진으로 이사 온 때였고, 큰 출판사에서 나와 독립했기에 이런 프로젝트를 맡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세월호 가족들 면면도 잘 알고, 글의 흐름이나 맥락도 잘 읽을 거라 생각해 결국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작업 들어가자마자 아차 싶었죠. 큰 회사에서 이 책만 만드는 것과, 생계유지를 위해서 다른 출판사 외주교정 일을 하면서 이 책 3권을 동시에 만드는 게 쉽지 않았어요.

작업을 준비하면서 <금요일엔…> <다시 봄이…>의 10년 뒤 이야기에 덧붙여서 ‘304낭독회’ 책도 함께 넣기로 했어요. 작가들이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10년간 해온 ‘304낭독회’의 작품 선집이에요. 작가들은 2014년 9월부터 희생자 304명을 뜻하는 304회의 낭독회를 치르자는 결심으로 매달 한 차례 행사를 열어왔고 다 채우려면 총 25년이 걸립니다. 지금까지 낭독된 작품 중 78편을 실었는데 작가들이 모두 재수록료를 가족협의회에 기부한다는 동의서를 써주셨어요. 어려운 일인데 감사했죠. 시민 연대자 역할처럼 이 책이 놓여 있었으면 했습니다.

의지는 차올랐는데 현실은 만만찮았어요. 초판을 각각 2천부씩을 찍었어요. 4월이면 거의 소진이 되긴 해요. 출간을 위한 펀딩에 438명이 참여해주셨고요. 책이 나오고 나서 기자간담회 때 가족협의회 김종기 운영위원장(수진 아빠)이 입을 열려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이 일이 나한테 뭐길래 저 음성을 듣고 눈물이 나지, 해석이 안 되더라고요. 나는 왜 ‘세월호 버튼’이 있는 것처럼 이러나, 여전히 궁금한 일이기도 했고요. 10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답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멋지게’ ‘솔직하게’ 만들어보자는 기준

2022년부터 원고 작업을 했고 나중에 원고를 모두 받아보니 분량이 엄청났어요. 박대성 디자이너와 상의했는데 다 실었다간 출판사 문 닫겠구나 생각될 만큼 견적이 나오지 않았어요. 종잇값도 많이 올랐고…. 무선제본(하드커버인 양장제본보다 저렴, 가장 흔히 쓰인다)을 하려다가 부모님들 손에 쥐어지는 건데, 그분들이 10년 살아온 결과물인데, 받아볼 때 ‘잘했다, 멋지다’ 생각했으면 해서 양장제본으로 했어요. 본문 종이는 가벼운 걸로 하고 표지는 얇은 합지를 썼어요. 가름끈은 없는데, 책을 어수선하게 만들지 말자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안 넣었어요. 부모님들과 기록단에 색이 바래지 않는 좋은 책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드리는 존중이에요. 예쁘고 단단하지만 가볍게 만든 이유고요. 종잇값이 그렇게 오를지는 몰랐어요.

<520번의 금요일>이 가장 중요하죠. 가족협의회 10주기 공식 기록집이니까. 이 안에는 ‘갈등’ 편이 있어요. ‘0416단원고가족협의회’로 부모 단체가 갈라진 이야기, 대리기사 폭행 사건도 솔직히 싣자고 했는데 반대가 만만찮았죠. 저나 작가기록단이나 솔직하게 못 내는 거라면 안 된다고 고집했어요. 부모들이 사회적으로 각성했고, 연대 시민들과도 눈높이를 맞추고, 이젠 ‘세월호 운동’이라 명명할 수 있을 정도로 선두에 서서 우릴 이끌어가는 분들인데, 내부에서 얼마나 갈등과 어려움이 심했는지 그 진통을 꼭 넣고 싶었어요. 오래 고민하다가 가족들이 싣자고 결심하면서 물꼬가 터진 거죠. 솔직한 기록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기준도 채웠고요.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 혐오의 파고가 펼쳐졌죠. 작가기록단과 304낭독회 필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에요. 함께 ‘일베’ 같은 혐오 세력에 반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520번의…> <봄을 마주하고…> <금요일엔…> 모두 각각 남성 필자가 1명뿐이에요. 이를 단순히 ‘여성 감수성’이라는 식으로 간과하면 절대 안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박보나(성호 누나)씨는 2014년 4월에 농성장에서 부모님들이 (혐오 세력 공격에) 실신하고 정신없을 때 온라인 혐오발언을 모니터링 했어요. 박보나, 남서현(지현 언니)씨는 물론 내면에 무척 큰 고통이 있겠지만 단단하게 버팀목으로 성장한 사람들이에요.

시민 자신이 피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세월호 운동’에 어떻게 결합하게 됐는지, 따라서 피해자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져야 했는데 그런 점 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해서 아쉽긴 해요. 부모님이 ‘내 얘기 잘렸네’ 하고 서운해하시는 얘기도 들었고요. 복잡한 함의가 빠진 게 많이 서운해요. 싸움을 하고 혐오에 대적하는 방식이 점잖치 않은 때도 있었어요. ‘속 시원히 깨부숴야지’ 하면서 싸움의 방식이 다른 분들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싣지 못해 아쉽습니다. 하지만 가족협의회에 너무나 많은 공격이 있어서, 빌미를 주지 말자, 단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겠나 싶었어요.

‘세월호’에는 매끈한 이론이 담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책 안에서도 동거차도 관련 부분에서 아이 이야기가 나와요. 세월호 참사 한 달 뒤 태어난 아이예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대화하고 싶을 때 할아버지가 아끼던 수석(돌)이랑 얘기하면 된다고 엄마가 가르쳐줬대요. 어느 날 엄마가 세월호 부모들을 만나러 간다니까 아이가 편지를 써줬다고 해요. ‘돌한테 물어봤더니 언니 오빠들은 잘 지낸다더라’라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잖아요. 이 부분을 책에 싣네 마네 난상 토론을 했죠. 결국 실었는데 진짜 세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마술에 기대서라도 얘기할 수 있는, 이 책의 유일한 창구이기도 하거든요.

2024년 3월11일 서울 중구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0주기 공식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 등을 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포즈를 취했다. 백소아 <한겨레> 기자 thanks@hani.co.kr

당사자성 살아 있는 ‘세월호 운동’

10년의 기록이 어떤 전환점이라고 설명되지 않았으면 해요. 당장 내일 아침이 되면 안산 가족협의회 컨테이너 사무실에서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그저 신산한 하루가 시작되니까요. 그런 황량하고 막막한 느낌의 공간에 매일 출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참…. 저는 기록의 의미는 그런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날것 그대로 기록하려 노력했어요. 여러 위원회와 정부에 쌓인 공식 기록이 있지만, 그 기록을 갖지 못한 부모들의 애절하고 절절한 마음, 그걸 잘 담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10년을 맞아 세월호 관련해서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마음이 조금 이상해요. 이제 10년이 더 지난 뒤에는 박보나씨와 남서현씨 같은 분들이 젊은 감각의 출판사와 20주기 책을 직접 기획하고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상하게 울컥하네요. 죄송합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러 서울 시내를 조금 걷다가 고성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정리=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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