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삼체’ 보다 더 드라마 같은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독살당한 中 억만장자

베이징=이윤정 특파원 2024. 4. 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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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판권 소유주 中 게임 부자 린치
영화화 과정서 동료와 갈등, 독살당해
범인, 수백종 독극물 사들여 동물 실험

넷플릭스 공상과학(SF) 드라마 ‘삼체’가 인기를 끌면서 이를 영화화하다 독살된 중국 억만장자 이야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최근에서야 범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등 중국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15일 중국 현지 언론과 뉴욕타임스 등을 종합하면, 중국 온라인게임 개발업체 유쭈(遊族·YOOZOO)게임즈 창업자인 린치(林奇)는 지난 2020년 12월 25일,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81년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에서 태어난 그는 난징 우전대를 졸업한 뒤 1년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다 24세에 창업했다. 33세에 유쭈게임즈 상장에 성공했고, 35세에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의 부자 명단에 올랐다. 사망 당시 그의 순자산은 90억위안(약 1조7150억원)에 달했다.

중국 온라인게임 개발업체 유쭈게임즈 창업자인 린치./바이두 캡처

린치가 이토록 젊은 나이에 사망한 배경에는 ‘삼체’가 있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소설 삼체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휴가지에서 읽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고, SF 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받기도 했다. 린치는 2014년 유쭈게임즈 상장 직후부터 삼체에 매료됐다. 그는 “삼체는 방대한 우주 기반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이를 가상 세계로 구축한다면 게임 이용자들에게 더 확실하고 깊이 있는 몰입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체를 SF 대작인 ‘스타워즈’처럼 만들기 위해 그는 거액의 돈을 쏟아부었다. 2014년 유쭈문화미디어를 설립해 투자 분야를 SF 영화와 TV로 옮겼다. 삼체 판권까지 구입한 린치는 영화 1편당 2억위안을 투입해 총 6편의 시리즈로 만든다는 계획을 내놨다. 미국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각색한 데이비드 베니오프, 대니얼 브랫 와이스와 협력해 넷플릭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도 결정했다. 2015년 촬영에 돌입했지만 회사 내부 문제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때 린치가 쉬야오(许垚)를 구원투수로 데려오면서 그의 운명이 꼬이기 시작한다. 린치와 동갑내기인 쉬야오는 미국 미시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7년부터 유쭈게임즈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로 합류한다. 린치는 삼체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2018년 ‘삼체우주’라는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고, 2019년 쉬야오를 이곳 CEO로 발령 냈다. 넷플릭스에 삼체 해외 판권을 넘겨준 것도 쉬야오다. 하지만 쉬야오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2020년부터 린치가 쉬야오에 대한 인내심을 잃었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쉬야오는 CEO직에서 내려오고 연봉도 삭감됐다.

지난달 22일 상하이제1중급인민법원 재판에 참석한 쉬야오./상하이제1중급인민법원

쉬야오는 린치에게 복수하기 위해 해외에서 수백종의 독극물을 사들였다. 구입 과정에서 사용한 휴대전화만 16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렇게 구입한 독극물을 상하이 외곽 실험실에서 개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했다고 한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쉬야오는 미국 인기 TV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브레이킹 배드는 암에 걸린 한 고등학교 교사가 가족의 앞날을 위해 졸업한 제자에게 마약 제조 및 판매 방법을 가르치고 스스로 마약왕이 되는 내용이다.

법원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12월 사이 쉬야오는 커피와 위스키, 생수 등에 독극물을 넣어 사무실에 가져왔다. 린치를 꾸준히 독극물에 노출시키던 그는 12월 16일 린치에게 유산균이라며 독극물 알약을 건넸고, 결국 린치는 쓰러지고 만다. 이틀 뒤 체포된 쉬야오가 무슨 독극물을 사용했는지 끝까지 함구하면서 병원 대응이 늦어졌고, 결국 25일 린치는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회사 직원 4명도 독극물에 중독됐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진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봉황TV는 “살해 방법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만큼 기괴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상하이 제1중급인민법원은 린치가 사망한 지 약 3년 후인 지난달 22일 쉬야오에게 고의 살인죄와 위험물질 유출죄가 인정된다며 징역 6년 후 사형을 선고했다. 유쭈게임즈의 주가는 쉬야오가 삼체우주 CEO에 올랐던 2019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고, 린치의 어린 세 자녀가 물려받은 주식은 동결돼 있는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린치는 유쭈게임즈 지분 23.99%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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