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의 리얼밸리 <5>] 10년 늦었지만 더 빠른 日 스타트업의 태동기

김태용 EO 대표 2024. 4. 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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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최근 일본에서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하고 10여 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제2의 도전을 하고 있는 키요 코바야시라는 창업자와 ‘한일 창업자 모임’을 만들었다. 한일 양국 창업자들의 친목과 교류를 늘리는 게 목적이었다.

키요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큰 집을 빌려 일본 젊은이들이 미국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방을 내주며 사업 트레이닝을 시켜왔다. 그래서 미국 내 일본인 창업자들 사이에서 소위 ‘대부(godfather)’로 통한다. 나 또한 실리콘밸리 팰로앨토에서 창업자들과 먹고 자고 하며 미국 시장에 도전한 입장이기 때문에 키요 스토리에 공감했다. 커다란 일본 시장과 한국 시장 사이에 중간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한일 양국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교류회 모임을 만들었다.

첫 모임에는 70여 명의 한국과 일본의 창업자, 투자자가 참석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사 시미즈라는 이커머스 채팅 솔루션을 만든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의 발표였다. 그는 이미 일본에 500여 명의 임직원을 둔 상태였지만, 세계를 제패하겠노라 혼자 미국에 건너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더 큰 ‘마사(손 마사요시·손정의)’가 돼 일본 창업자들의 글로벌 진출과 부흥을 이끌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 다른 일본인 창업자들도 미국 내 한국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인 샌드버드, 몰로코, 눔 같은 창업자들에 대한 존경을 보이며 스스로 모범이 돼 많은 젊은이를 일깨우겠다고 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일본보다 훨씬 먼저 성공했고 유니콘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 10여 년간 청중 앞에서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크게 성공하겠다” “선대 창업자들보다 더 큰 사람이 되겠노라” 선언하는 한국 창업자를 본 적이 없어 신선했다.

김태용 EO 대표 현 퓨처플레이 벤처파트너

30대 중반의 한 창업자는 “내가 태어났을 때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며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합계 출산율이 1명 남짓대로 떨어지고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던 일본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 알려줬다. 결국 파격적인 출산 및 육아 지원 정책과 함께 다시 젊은 사람이 목소리 낼 수 있을 정도로 인구구조가 바뀐 뒤에야 사회가 바뀌기 시작했다며 합계 출산율 0.6대의 한국을 걱정해 줬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에 도쿄에 들러 스타트업 지원 기관들을 방문했다. 신기하게도 30% 남짓이 외국인이었다(한국 스타트업 지원 기관에서는 외국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일본 정부의 파격적인 비자 지원정책 덕분에 손쉽게 취업과 창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일본은 노트북으로 뭐든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일본에서 일을 할 수 있게끔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내주며 적극적인 문호 개방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스타트업이 경제 악화로 혹한기를 겪고 있지만, 일본에는 막대한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00조엔(약 1경8000조원)을 스타트업 생태계에 투자해 매년 1000명의 창업자를 미국에 보내 혁신을 배워오게끔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먼저 만들었고 한국인이 영어도 잘하지만, 일본은 시작부터 글로벌 생태계를 만들고 영어를 못해도 영어로 하는 콘퍼런스를 꽤 많이 열고 있다. ‘갈라파고스’라고 불려도 마음만 먹으면 변화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닌 일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탄하는 요즘이다.

일본의 과거에서 배울 점은 ‘인구구조 앞에 장사 없다’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극단적이고 장기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등이다. 일본 현재에서 배울 점은 ‘늦은 만큼 더 개방하고 젊은이들이 세계 최고로부터 배우고 돌아와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간 중심의 글로벌 콘퍼런스 등을 표방하며 시작했지만, 결국 정부 관료들이 손을 떼지 못해 ‘진짜 글로벌 콘퍼런스’가 되지 못했던 수많은 국내 스타트업 행사와 데모데이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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