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나거나 둥글거나…각자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때가 온다[주철환의 음악동네]
산울림 2집에 실린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전주가 길기로 유명하다. 웬만한 가요 한 곡 분량(3분 23초)이 지나야 목소리가 들린다. 무지하거나 무도한 디제이는 과감하게 도입부를 자르고 가사 나오는 부근부터 틀기도 했으니 가히 창작자의 탄식을 자아낼만한 야만의 행태였다. 산울림 형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5집에서 무려 3분 55초 동안 들입다 연주만 쏟아내는 시도를 감행했는데 그 노래가 바로 ‘백자’다. 4분을 달려야 실체를 드러내는 백자는 ‘소박한 웃음’ ‘정겨운 얼굴’ ‘잔잔한 모습’ ‘깨끗한 마음’ 등 고상한 인격체로 묘사된다. 그 시절 산울림을 추앙하던 동심의 무리는 노랫말 속 ‘너 보노라면 나 생각해야 하는 흰빛 백자여’를 반복하여 덧칠하면서 ‘보면 볼수록 그대로 좋아라’ 합창으로 무한애정을 뿜어냈다.
사람이 아닌 대상에게 단체로 애정을 쏟는 모습이 4월의 뉴스 화면에 자주 등장했다. 희귀한 백자항아리라도 된 양 ‘보면 볼수록 그대로 좋아’ 눈물을 쏟는 사람까지 영상에 잡혔다. 이 사태를 소문으로만 접한다면 의아할 수도 있겠다. 저 동물은 왜 저토록 사랑받는가. 그가 주로 하는 건 먹고 자는 일이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거의 온종일 대나무 30킬로를 먹어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줄 서서 그를 ‘알현’한다. 심지어 어떤 기업에선 그에게 명예 사원증까지 발급했다. (기록상 그는 삼성그룹 역대 최연소직원이다) 족보를 더듬어보면 그의 먼 친척(?) 중에는 살던 집(우리)을 탈출했다가 생포되거나 사살되는 일도 있고 심지어는 산 채로 쓸개를 뺏기는 참사도 발생했는데 이 판다는 귀엽고 몽글몽글한 생김새 덕분에 ‘행복을 주는 보물(푸바오)’로 융숭한 대접을 받으니 이 또한 외모지상주의(?)의 연장 아닌가 싶기도 하다.
MBC 예능 ‘복면가왕’에서도 곰은 인기 캐릭터다. 그동안 ‘아기곰’ ‘북극곰’ ‘곰 세 마리’ 심지어 ‘곰 발바닥’까지 출연했다. 오늘은 ‘복면가왕’의 터줏대감 유영석의 자작곡 ‘네모의 꿈’(원곡 화이트)을 선곡했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그리고 온갖 네모난 것들이 행진한다. 문, 테이블, 신문, 책가방, 책, 버스, 건물, 학교, 교실, 칠판, 책상, 오디오, 컴퓨터, TV, 달력, 지갑, 지폐, 팸플릿, 학원, 마루, 액자, 명함, 스피커, 테이프, 책장, 사전, 서랍, 편지, 태극기, 잡지. 따라부르다 보면 숨이 차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 유영석은 네모에 의탁하여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둥글게 살라는 잘난 어른의 말에 따라야 하나.
백자가 말을 한다면 그때부터 찬미자와 불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푸바오가 사람처럼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일부 팬들은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 동물원의 철창은 네모다. 네모를 사이에 두고 사람과 동물은 각자의 시각을 견지한다. 사람들은 동물이 갇혀있다 안심하고 구애하지만 반대로 동물은 이렇게 판단할지도 모른다. “갇혀있기는 매 한 가지야. 차이가 있다면 나는 작은 철창에 너희들은 큰 철창에 갇힌 거지.”
살다 보면 이길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다.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송대관 ‘차표 한 장’)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평행선 위만 고집한다면 철창에 갇혀 사는 처지랑 뭐가 다른가. ‘나는 나밖에 몰랐지 너는 너밖에 몰랐지 그래서 우리는 만날 수 없는 거야’(문희옥 ‘평행선’) 일찍이 테스형(소크라테스)은 ‘너 자신을 알라’고 조언했다. 먼저 거울을 보고 이어서 주변을 보자. 자신을 모르면 못난 놈이 되고 자신밖에 모르면 못된 놈이 된다. ‘남 속이고 사는 게 그리 좋더냐 두 다린 뻗고 잘 자니’(진성 ‘못난 놈’) 더군다나 복면의 링에 오를 땐 각오해야 한다. 경쟁에 지는 순간 ‘복면가왕’의 진행자(김성주)는 가차 없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제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해주세요.”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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