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 안고도 항해 못 멈춰, 세월호 똑 닮은 참사들

신다은 기자 2024. 4. 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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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10년의 세월—세월호‘들’이 있었다
2014년 참사 뒤 10년 동안 발생한 선박 침몰 사고 35건 살펴보니
낡은 배 위험하게 개조, 문제제기 묵살 등 사고 원인 판박이
2019년 9월8일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항 외곽 해상에서 전도돼 옆으로 기운 현대글로비스 소속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 연합뉴스
편집자주—낡디낡은 배를 사다가 이름만 바꿔달았다. 승객과 화물을 더 싣겠다며 배를 마구잡이로 뜯어고쳤다. 위는 무겁고 아래는 가벼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배가 완성됐다. 그 배에 출항 직전까지 화물을 꾸역꾸역 실어넣었다. 선장과 선원이 위험하다며 걱정했다. “윗선 결정에 관여 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안개가 자욱한데도 출항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았다.
이것은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세월호를 똑닮은 배들의 이야기다. 돈 버는 덴 거침이 없었으나 안전엔 지극히 무심했던 선박 운영 회사들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있었던 일이다.

*장편 기사는 분량을 쪼개어 선보입니다. 이 기사는 ‘귤 상자와 맞바꾼 목숨, 세월호 똑 닮은 참사들’  기사(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369.html)에서 이어집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을 ‘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한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의 복원성 불량은 이전에도 신호를 보냈다. 참사 발생 전인 2014년 1월과 2013년 11월에도 배가 기울거나 화물이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그래도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멈추지 않았다. 노후선박에 드는 기름값과 수리비 등이 예상보다 많아(1회당 약 6천만원) 어떻게든 승객과 화물을 태워야 적자를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칙은 2017년 3월31일 남대서양에서 항해하던 도중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서도 반복됐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약 2년 전인 2015년 5월 선사의 공무팀장이 대표이사에게 내부 문건을 통해 ‘평형수(탱크)의 상태가 전반적으로 많이 불량(내부 도장이 거의 없음)’이라는 보고를 했다. 그는 스텔라데이지호를 ‘중장기 폐선 우선 선박 4순위’로 분류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결함은 통상적 수준이 아니었다. 선사 대표이사 등의 선박안전법 위반 혐의 1심 판결문을 보면, 공무감독 ㅎ씨는 “해운업계에 근무하며 이 정도 변형은 처음 봤다”고 했고, 선박검사원 ㅁ씨는 “횡격벽 변형이 그 정도면 대항 항해(‘대양 항해’의 오기로 추정)는 쉽지 않겠다 판단했고 그런 현상을 처음 봐 깜짝 놀랐다”고 했다.

2017년 3월3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체 일부 모습. 심해수색 전문업체인 미국 오션 인피니티사가 촬영했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제공

스텔라데이지호 역시 선령이 15년 된 중고선 상태에서 도입됐다. 게다가 배의 바닥 쪽에 오폐수를 보관해 선체 부식이 빠르게 진행됐다. 선박 검사를 받을 땐 해당 공간을 비워두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오폐수 보관으로 불법 전용했다. 평형수 탱크 부식과 선체 변형 등이 2015~2016년 지속적으로 선사에 보고됐다. 선장과 선원들이 안전을 우려하는 의견을 냈고, 선박 전문가도 스텔라데이지호의 부식이 심각하다며 정밀한 두께 계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배는 항해를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스텔라데이지호는 14만t 배가 두 쪽으로 갈라지며 5분 만에 침몰했다. 2011년 평형수 탱크의 도장 불량이 처음 제기된 지 6년, 2015년 폐선 선박으로 분류된 지 약 2년 만에 발생한 참사였다. 배에 탔던 선원은 24명으로, 2명은 구조됐다. 미수습 선원 22명 가운데 한국인 선원은 8명이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도 결국 비용 부담이 핵심으로 꼽힌다. 낡은 배는 수리비가 폐선비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판결문을 보면, 선사가 땜질식으로 스텔라데이지호를 손본 데만도 40만달러(약 5억8천만원)가 들었다고 한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자매 선박인 스텔라코스모스호와 스텔라유니콘호도 부식이 너무 심해 보강 자재만 3천~4천여t 필요한 것으로 계산돼 결국 폐선됐다.

2024년 3월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7주기’ 기자회견이 열렸다. 실종된 허재용 이등항해사의 누나 허경주씨(왼쪽)와 어머니 이영문씨. 박승화 선임기자

선사에 선박 구조손상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없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이 선박 감항성에 미칠 수도 있는 구조손상을 효과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절차를 갖추지 않았을 수 있다. 공무감독이 손상을 검사했지만, 폴라리스쉬핑은 상세한 구조손상 평가에 착수하지 않았다. …화물량이나 기상 상태에 대한 어떠한 제한을 두지 않고 추가 항해를 완료하도록 허용했다.”(해심원 조사보고서)

구조손상 관리에 미흡했던 선사도 고객사 요구엔 발 빠르게 반응했다. 철광석 주문 업체들이 ‘화물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한꺼번에 내려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여러 항구에서 철광석을 불균형하게 내리는 작업을 하게 됐고, 선체에 무리를 줬다.

폴라리스쉬핑 김완중 대표이사는 2024년 2월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금고 3년형을 선고받았다. 선박 결함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죄(선박안전법 위반)로는 2심에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아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폴라리스쉬핑 해사본부장 김아무개씨와 공무감독 변아무개씨는 각각 업무상과실치사로 금고 2년형과 1년형(공무감독은 집행유예)을, 선박안전법으로 징역 8개월과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폴라리스쉬핑은 벌금 15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둔 2019년 4월13일 공개된 세월호 내부 기관실 수밀문 모습. 침몰 당시 그대로 열려 있다. 연합뉴스

수밀문 열어놓고 평형수도 덜 채워

배의 복원성에 화물 적재량만큼이나 중요한 게 평형수 관리다. 세월호는 선박 개조로 무게중심이 높아져 화물은 적게, 평형수는 많이 실어야 했다. 실제론 그 반대였다. 화물은 과적하고 평형수는 덜 채웠다.

2019년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 항만 인근에서 침몰한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운반선 ‘골든레이호’ 역시 평형수 관리에 실패한 사례다. 배에 실린 화물량 대비 평형수가 지나치게 적은 상태에서 방향을 꺾었다가 배가 그대로 쓰러졌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사고 조사 결과, 1등항해사가 복원값을 잘못 계산해 실제 무게중심(1.76m)보다 50㎝ 이상 높은 값(2.45m)으로 산출했다.

선박 복원값을 정확히 계산하는 이유는 화물의 적정 적재량과 평형수의 적정량을 알기 위해서다. 하지만 골든레이호의 1등항해사는 체계적인 복원값 계산 교육을 받지 못했다. 골든레이호 선박관리 회사인 현대글로비스의 자회사 ‘지마린서비스’는 1등항해사에게 컴퓨터와 안내책자만 줄 뿐이었다. 전임자에게 알음알음 배운 컴퓨터 사용법으로 그는 커다란 배의 복원값 계산 업무를 홀로 도맡았다. 선장도, 선박관리회사도 1등항해사가 수기로 계산한 복원값을 교차 검증하지 않았다. 결국 1등항해사 승선 5개월 만에 배는 복원값 오류로 침몰했다.

2019년 10월8일 미국 조지아주 해상에서 전도된 차량운반 ‘골든레이호\'. 미 해안경비대 트위터 갈무리

세월호의 급속한 침몰에 영향을 준 수밀문 폐쇄 불량도 골든레이호 침몰 사고에서 되풀이됐다. 배 안의 출입문은 바닷물 유입을 막는 수밀문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선원들은 입출항 때 늘 수밀문 폐쇄 여부를 확인한다. 그런데 2017년 인양된 세월호 내부 수밀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선원들이 통행 편의를 위해 관행적으로 문을 열어뒀던 것이다.

골든레이호도 수밀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침몰이 가속화했다. 사고 약 2시간 전까지 수밀문 2개가 열려 있었다. 배가 침수되자 열린 문부터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다. 미 연방교통안전위는 “선교에 있는 수밀문 개폐 표시반에 빨간불이 켜져 있었을 텐데 누구도 출항 전 확인하지 않았다. 모든 수밀문의 개폐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선원이 반드시 준수하도록 회사가 보장해야 한다”고 보고서에 썼다.

배 현장 모르는 사무부서가 홀로 결정

참사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낡은 선박을 중고선으로 들여오면서도 활용과 개조에 거침없었다. 개조의 방향성도 이윤 증대만을 고려할 뿐 배의 복원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화물량, 선적 방법 등 선박 복원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를 선사의 생산 부서가 홀로 결정했다. 그 부서 직원들은 배의 안정성에 대해선 알 의무도 역량도 없었다. 모두가 배를 이용해 이윤을 창출할 줄만 알고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은 몰랐다. 선원들은 평상시 위기에 대응할 훈련 기회도 시간도 갖지 못했다.

전직 외항사 선원 김민호(29)씨는 <한겨레21>과 한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를 3년 타며 느낀 게 있다면 배라는 게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 잘 고려되지 않는 것 같아요. 선주는 이득이 되니까 ‘그래도 가면 안 되냐, 좀더 빠르게 하면 안 되겠냐 ’ 하고요. 사무실 직원들은 컴퓨터 모니터로만 보니까 거기서 내린 결정이 바다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고요. 선원들도 배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부족해요. 사실은 그런 것부터 알고 배우려는 노력이 먼저여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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