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숙여 청소해 움츠린 몸, 하늘에 공 던지며 나를 돌보다

조현경 기자 2024. 4. 1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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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체육관 프로젝트 현장을 가다
‘노동’의 장소가 ‘운동’의 장소로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선 매주 금요일 낮 12시부터 약 40~50분 동안 전문 체육인과 청소노동자, 대학생이 다 함께 모여 운동하는 ‘호호체육관’이 열린다. 지난 12일 열린 배구 수업에서 오버핸드 패스 연습이 한창이다.

“팔꿈치 펴고! 이마 위쪽으로! 팔을 이렇게 움직여서 공을 받아보세요!”

목청을 높인 강사의 지시와 탕탕 튀어 오르는 공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운다. 배구 수업에 참여한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공을 잡았다가 네트를 향해 팔을 힘껏 휘두른다.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허리를 굽혀 땅을 보며 일하던 ‘언니들'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공을 빗맞힌 사람들은 뒤돌아서 머쓱한 웃음을 짓고, 동료들의 웃음소리가 더해진다. 간혹 공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면 뿌듯함이 표정에 배어 나온다. 때로는 웃음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우고, 때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공을 받아낸다.

여성 청소노동자, 쓸고 닦고 ‘운동’도 한다

2024년 새 학기를 맞이한 대학 캠퍼스. 매주 금요일 낮 12시엔 서강대학교 체육관, 매주 목요일 낮 1시엔 연세대학교 대운동장 농구코트에서 각각 청소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배구 교실, 농구 교실이 열린다. 소요시간은 40분 남짓. 여성 은퇴 선수들이 운동을 가르쳐주는 사회적기업 ‘위밋업 스포츠(We meet up Sports)’의 강사가 수업을 이끌고, 각 대학에서 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대학생들까지 함께 어우러진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기치로 문화연대 ‘대안체육회’가 2022년 11월에 시작한 ‘호호체육관’ 프로젝트 현장이다. 스포츠에서 소외된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등의 스포츠 권리를 되찾고, 사회적으로 인식시키자는 취지로 기획했다. 첫 대상자는 대학에서 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다. 박이현 문화연대 활동가는 “청소노동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을 쓰는 노동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 있지만, 정작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하는 존재다. 이들의 삶에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자기돌봄’의 시간을 운동(스포츠)으로 채울 수 없을까” 하며 시작한 것이 ‘호호체육관’이라고 설명했다.

연세대 대운동장 농구코트에서는 매주 목요일 낮 1시부터 약 40분 동안 전문 체육인과 청소노동자, 대학생이 다 함께 모여 운동하는 ‘호호체육관’이 열린다. 체육관은 2022~2023년 서강대에서만 운영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연세대에도 문을 열었다. 하반기에는 참여 대학을 더 늘리려 한다. 지난 11일 농구 수업을 마무리하며 참여자들이 함께 모여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문화연대 혼자만의 힘으로 해낼 수는 없었다. 프로젝트팀은 학교 시설 관리자, 청소용역 외주업체, 소속 대학생들과 협력해나갔다. 특히,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도왔다. 연세대에서는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나섰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학생들이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직접 퍼실리테이터(인솔자)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의 꾸준한 참여를 독려하기도 하고,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소통하는 역할을 알차게 수행했다.

“청소노동자가 무슨 스포츠?”라는 반응이 나온 건 다름 아닌 당사자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한 건 ‘요가’였다. 학교 내 체육관에서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에 진행한 요가수업이 1기(2022년 11월~12월)와 2기(2023년 3월~6월)가 수강 인원 25명을 가득 채우며 큰 호응을 얻었다. 처음엔 ‘아줌마’, ‘어머니’, ‘여사님’ 등으로 부르다가 조금씩 친해지면서 호칭도 ‘언니’로 정리했다. “올라가지 않던 어깨가 올라간다”, “일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몸이 덜 피곤한지 생각하면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하늘 보는 운동, 배구로 다지는 연대

요가에 대한 호응은 좋았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운동해도 서로 관계가 형성되긴 어려웠다. 프로젝트팀은 참여자들끼리 상호작용이 있는 ‘팀 스포츠’를 시도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참여자들의 연대, 사회적 관계를 맺고 더 가까워지자는 것 역시 프로젝트의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평소 땅만 보고 허리를 숙여 청소하니, 움츠린 몸을 잠시라도 펼 수 있도록 하늘을 보는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하늘을 보는 운동 ‘배구’였다. 배구는 상대방의 공을 받고, 전달하고, 때리는 ‘팀 협력’이 중요한 스포츠다.

지난해 3월 선뜻 ‘배구 선수’가 된 언니들의 시선은 바닥이 아닌 하늘을 향했다. ‘노동’의 장소가 ‘운동’의 장소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시작은 난장판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배구공이 손에 익지 않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고, 공과 몸 모두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오히려 그 덕에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이거 하고 나면은 땀도 쫙 나고, 배구가 너무 좋더라고, 해 보니까. 더 돈독해졌지. 아무래도 더 재밌고. 내가 안 가려고 하면 ‘언니 빨리 가, 가야 돼. 가서 하고 와야 돼’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박 활동가는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라고 해도, 한 건물을 담당하는 사람은 몇 명, 심지어 한 명일 때도 있어 서로 잘 모르고 어색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함께 운동하니 확실히 친해진다. 수업에 안 나오면 전화 걸어서 서로 재촉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대운동장 농구코트에서는 매주 목요일 낮 1시부터 약 40분 동안 전문 체육인과 청소노동자, 대학생이 다 함께 모여 운동하는 ‘호호체육관’이 열린다. ‘호호체육관’은 2022~2023년은 서강대에서만 운영했지만, 2024년 상반기에는 연세대에도 문을 열었다. 하반기에는 참여 대학을 더 늘리려 한다. 지난 11일, 본격적인 농구수업에 앞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있다.

노동자를 위한 문화충전소

언니들은 누구보다 학교에 일찍 출근해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한다.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학교의 공간을 당당히 점유해 이용해본 적도 없다. ‘호호체육관’은 일주일에 단 한 시간 남짓에 불과하지만, 자신들이 청소하던 공간을 당당히 점유해 설 수 있게 만들었다. 극적으로 노동환경이 변화하진 않겠지만, 티브이에서나 보던 운동을 자신도 했다는 경험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아픈 곳이 줄고 친한 동료는 늘어났다. 문화연대 활동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운동(스포츠)이 큰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눈으로 몸으로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두찬 문화연대 활동가는 “노동자들이 달라지는 몸을 인식하고, 운동의 즐거움을 느끼고, 이 즐거움을 동료들과 공유했다. ‘호호체육관’은 생활체육, 여성 스포츠, 노동자의 문화 운동과 여가에서도 소외되었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을 위해 청소(노동)할 힘을 얻는 노동자를 위한 문화충전소였다”고 덧붙였다.

기본권으로서 ‘운동할 권리’

우리 사회는 스포츠를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은 ‘국가는 모든 국민을 위한 스포츠의 실현을 추구하여야 하며, 특히 여성·장애인·청소년 등이 자신에게 맞는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스포츠가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필수적인 활동이란 인식도 높아지고, 운동하는 여성이 더는 낯설지 않아졌음에도 ‘기본권’으로서의 ‘스포츠권’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여전히 ‘여성’과 ‘팀 스포츠’, ‘중장년 여성·여성 노동자·이주민·장애인’과 ‘스포츠’라는 단어의 조합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2023년 기준, 국민의 62.4%가 생활체육에 참여하고 있지만, 스포츠 인권이나 스포츠 정책은 전문 스포츠인에 한정된 영역으로 여겨진다. 2019년 체육계 ‘미투’ 운동, 2020년 최숙현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선수가 집단 가혹 행위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온 정부 대책과 논의 역시 이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호호체육관’을 주도한 문화연대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엘리트 스포츠 육성 중심의 시스템과 유명 선수들의 극복과 승리의 서사에 가려져 있던 보통 사람들의 스포츠권에 주목했다. ‘스포츠 정책이 인권·공정·평등·다양성과 같은 가치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알려 나갈 수 있는 길을 계속 찾는 중이다.

함 위원은 “대학에서 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자’와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복합 차별이 존재하는 가장 약한 고리”라 지적하며 “호호체육관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보통의 사람들이 스포츠를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더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길을 넓힐 수 있는 방안들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에서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더 잘 보고 인지하도록 하고,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을 ‘호호체육관’을 통해 제시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선 매주 금요일 낮 12시부터 약 40~50분 동안 전문 체육인과 청소노동자, 대학생이 다 함께 모여 운동하는 ‘호호체육관’이 열린다. 지난 12일 열린 배구 수업에서 언더핸드 패스 연습이 한창이다.

“운동(exercise)으로 운동(movement)하자”

노동으로 신체를 지각하는 것과 운동을 통해 신체를 자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함 위원은 “청소노동 역시 돌봄노동의 일종”이라며, “돌봄노동자들이 ‘자기돌봄’을 할 수 있도록 ‘운동’을 통해 신체를 자각하고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동자들끼리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팀 스포츠’의 역할을 강조하며, “스포츠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우리의 그라운드를 넓게 쓰는 방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생활체육 참여율을 5년 뒤 7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함 위원은 “이 참여율에서 소외된 사람이 적어지려면 운동할 수 있는 시간·시설·교육의 삼박자 확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자기 돌봄으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려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늘려야 한다. 특히 “학교 내 노동자들도 학교 시설을 사용할 권리를 줘야 할 것”이라며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공간을 사용할 권리를 두고 사회적 의제가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포츠계에 산적한 인권문제 해결, 노동자의 권리 되찾기 등 ‘호호체육관’의 ‘운동(Exercise)으로 운동(Movement)하기’는 지속할 전망이다.

연세대 대운동장 농구코트에서는 매주 목요일 낮 1시부터 약 40분 동안 전문 체육인과 청소노동자, 대학생이 다 함께 모여 운동하는 ‘호호체육관’이 열린다. ‘호호체육관’은 2022~2023년은 서강대에서만 운영했지만, 2024년 상반기에는 연세대에도 문을 열었다. 하반기에는 참여 대학을 더 늘리려 한다. 지난 11일 열린 농구수업에서 골대를 향해 슛을 던지는 연습이 한창이다.
대학가로 번져가는 호호체육관

호호체육관은 2022년 가을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이 후원하고 사단법인 시민이 주관한 ‘프로젝트 마일스톤’ 지원사업을 통해 시작됐다. 하지만 2023년 하반기에 별도로 할당된 예산이 없었다. 재정적·사회적 기반이 다져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잠시 쉬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9월 문화연대는 사회운동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소셜펀치’를 통해 호호체육관의 자립을 준비하는 크라우드펀딩을 모금해 강사비, 퍼실리테이터 인건비 등 최소한의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 올해 들어선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지원으로 예산을 확보했다. 2022~2023년은 서강대에서만 운영했지만, 올 상반기엔 서강대와 연세대로 ‘호호체육관’을 확장했다. 하반기에는 참여 대학을 더 늘리려 한다. 문화연대는 대학지부 간 연대를 다질 수 있는 공동행사를 개최하고,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스포츠 활동 환경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는 등 ‘호호체육관’ 운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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