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큰사슴이오름] 벚꽃과 유채꽃에 둘러싸인 '큰 사슴'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4. 4. 1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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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프라자 뒤편의 넓은 유채밭. 큰사슴이오름이 꽃방석 위에 앉은 듯하다.

서귀포시 표선면의 중산간 마을 가시리에는 조선을 대표하던 국영 목장인 '갑마장' 터가 있다. 드넓게 펼쳐진 초지대를 따라 억새가 가득하던 이곳은 제주의 바람과 수평 구도에 매료되었던 사진작가 김영갑이 생전에 즐겨 찾던 곳이다. 갑마장을 사이에 두고 두 오름이 마주하고 섰는데, 남동쪽의 따라비오름과 북서쪽의 큰사슴이오름이다.

큰사슴이오름을 내려서는 길. 족은사슴이오름과 정석비행장이 훤하고, 그 너머로 여러 오름을 품은 한라산이 펼쳐졌다.

녹산장의 중심에 선 오름

해발고도가 474.5m인 큰사슴이오름은 제주의 숱한 오름 가운데서 제법 덩치가 큰 편이다. 서쪽의 족은사슴이오름과는 하나인 듯 기슭을 맞대고 있다. 옛날에 사슴이 살아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하며, 오름 모양이 사슴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한자로는 각각 '大鹿山대록산', '小鹿山소록산'이라고 표기한다.

큰사슴이와 족은사슴이 남쪽의 녹산로는 이 두 오름을 일컫는 말인 鹿山녹산에서 왔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일대의 광활한 목장을 녹산장鹿山場이라 불렀는데, 이 또한 이 오름에서 연유하는 이름이다.

녹산장은 원래 남원읍 의귀리에 살던 김만일(1550~1632)이 말을 기르던 목장이었다. 그는 전쟁에 쓸 말 500필을 나라에 바쳤고, 이것이 연이 되어 후손 대대로 '監牧官감목관'이라는 벼슬을 세습직으로 하사받았다.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을 잇는 '쫄븐갑마장길'을 걷다가 '목관'의 무덤을 더러 만나는 게 이 때문이다.

벚꽃과 유채가 만발한 봄날의 녹산로. 제주를 대표하는 봄꽃 나들이 명소다.

녹산로는 제주 최고의 봄꽃 나들이 명소로 명성이 자자하다. 가시리사거리에서 조랑말체험공원과 정석항공관을 지나 제동목장입구교차로까지 이어지는 10km의 길이다.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면 벚꽃과 유채꽃이 함께 펴서 장관을 이룬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기울어진 깊이 55m의 굼부리(분화구를 뜻하는 제주 방언)를 가졌고, 그 서쪽에도 굼부리로 짐작되는 움푹 파인 커다란 구덩이가 있다. 걷기의 출발점이자 종점으로 이용되는 유채꽃프라자 쪽에서 큰사슴이오름을 보면 삼나무로 빼곡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키 작은 관목이나 활엽수, 억새가 많다. 또 주변에 이렇다 할 다른 오름이 없어서 능선을 오르내리는 내내 조망이 시원하다.

탐방은 가시리에서 세우고 운영하는 숙소 겸 카페인 유채꽃프라자를 기점으로 이뤄진다. 들머리이자 날머리는 세 곳이다. 유채꽃프라자 뒤쪽, 족은사슴이오름과의 사이 초지대로 들어서면 정상까지 연결된 계단이 보인다. 이 코스는 짧지만, 무척 가파르다.

새끼오름에서 본 큰사슴이오름과 한라산.

또 유채꽃프라자 뒤편의 초지대 사이에 숨은 듯 위치한 물웅덩이에서 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한갓진 이 길은 오름 동사면을 가로질러 풍력발전단지 관리동을 지나 동북쪽에서 오른 길과 합류한다.

걷기에 편하고 좋은 길은 오름의 동북쪽에서 이어진다. 유채꽃프라자에서 나와서 가시리 풍력발전단지 관리동 앞으로 난 콘크리트포장도를 따라 1.2km 간 곳에서 왼쪽으로 큰사슴이오름 탐방로가 갈린다.

유채꽃프라자 상공에서 본 큰사슴이오름. 뒤로 송당리의 오름들이 늘어섰다.

쫄븐갑마장길과 겹치는 탐방로

이 코스는 갑마장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쫄븐갑마장길'과도 겹친다. 포장도로 구간이 살짝 길고 지루하지만, 이후의 오름 탐방로가 근사해서 수고가 충분히 보상받는 느낌이다. 억새와 관목이 뒤섞여 나타나는 완만한 오솔길이 구불구불 정겹게 펼쳐진다.

이 구간에서는 제주 동부의 오름 조망이 빼어나다. 중간쯤에 유채꽃프라자 뒤편의 물웅덩이에서 오른 길이 합류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서는 반드시 뒤돌아볼 일이다. 송당리의 내로라하는 오름은 물론, 제주 동부의 어지간한 오름이 다 보이는 조망 명당이어서다.

삼거리 한쪽에 오래된 무덤 한 기가 이 멋들어진 풍광을 마주하고 있다. 누구의 무덤인지, 정말 좋은 자리에 묻힌 듯하다. 무덤을 지나며 길은 계단으로 바뀌고, 곧 정상부의 숲속으로 파고든다.

몇 개의 벤치가 있는 큰사슴이오름 정상. 멋들어진 제주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거침없는 조망이 펼쳐지는 정상

정상 직전,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길이 갈라진다. 굼부리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주 탐방로와는 달리 정비가 안 된 흙길이다. 기울어진 굼부리로 인해 꽤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야 하지만, 이 둘레길은 제주 오름의 호젓한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활엽수와 관목 사이로 이어지는 길이 사납지 않고, 진행 방향이 훤히 보일 정도로 쾌적해 걷는 맛이 좋다. 능선의 가장 낮은 곳에서는 희미한 길을 따라 굼부리(분화구) 안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

동북쪽 탐방로. 저 무덤 있는 곳이 물웅덩이에서 오른 길과 만나는 삼거리다.

굼부리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바로 정상이다. 광활한 갑마장을 향해 벤치 몇 개가 놓인 정상에는 거침없는 제주 풍광이 펼쳐진다.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갑마장 들판과 그 건너의 따라비오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제주 동부의 오름들도 잘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정석비행장 활주로 너머로 한라산이 훤하다.

정상에서 길은 가파른 계단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선다. 바로 아래엔 온통 삼나무로 뒤덮인 족은사슴이오름이 숯검댕이 눈썹처럼 길게 누웠고, 멀리 물영아리와 여문영아리, 물찻오름, 붉은오름 등이 늘어선 뒤로 너른 품을 펼친 한라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길은 곧 족은사슴이오름과의 사이 평지를 만난다. 이 평지와 날머리인 유채꽃프라자 일대는 최근 제주에서 유명세를 타는 억새 군락지로, 가을이면 환상적인 은빛 물결에 휩싸인다.

교통

내비게이션에 '유채꽃프라자' 입력. 유채꽃프라자 뒤가 큰사슴이오름이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가시리사거리의 '가시리' 정류장(222번, 732-1번, 732-2번 정차)에서 유채꽃프라자까지는 5.6km 거리다. 문의 표선 콜택시 064-787-3787.

주변 볼거리(지역번호 064)

정석항공관 .

정석항공관

1993년 열린 대전 엑스포 때 대한항공의 미래항공관 전시장을 엑스포가 끝난 후 이곳으로 옮겼다. 1998년, 정석비행장 옆의 지금 자리로 옮긴 항공박물관이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역사와 평소 접하기 힘든 항공기에 대한 다양한 체험도 가능하다. 녹산로 중간, 큰사슴이오름 자락의 길가에 있다. 문의 784-5322.

조랑말체험공원.

조랑말체험공원

제주의 600년 목축문화를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는 곳. 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말과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승마체험, 목장산책, 먹이주기체험)이 마련되어 있다. 어린이와 성인 모두 가능하며 사전 예약은 필수. 문의 787-0960.

가스름식당 두루치기.

맛집(지역번호 064)

가시리엔 제주 흑돼지고기와 순댓국 맛집으로 알려진 네 곳의 식당이 성업 중이다. 어느 곳을 들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나목도식당(787-1202), 명문사거리식당(787-1121), 가시식당(787-1035), 가스름식당(787-1163). 두루치기 1만 원, 생고기 1만2,000원, 목살·삼겹살 1만5,000원.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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