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농사 40년…힘들지만 돈 되는 농사 환경까지 지켜 자부심”

박하늘 기자 2024. 4.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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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의 딸기농가 김연진씨(60)는 농촌에선 아직 '청년'이지만 비닐하우스 농사 경력만 40년이 넘는 베테랑 시설원예 농사꾼이다.

고교 시절 부모님과 형을 도우며 시작한 시설딸기 농사를 1983년부터 자신이 도맡으면서 '비닐하우스 인생'을 살아왔다.

겨울마다 눈 쓸기 전쟁을 치르고, 봄이면 모를 내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철거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10년 가까이 딸기농사를 이어간 건 '돈'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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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60년, K-농업을 말하다] 비닐하우스 농사 40년 김연진씨[전북 익산]
딸기·멜론 등 13개 작물 생산
친환경농업…학교 급식 납품
전북 익산의 딸기농가 김연진씨는 살충제 대신 천적을 활용해 해충을 방제하고 있다.

전북 익산의 딸기농가 김연진씨(60)는 농촌에선 아직 ‘청년’이지만 비닐하우스 농사 경력만 40년이 넘는 베테랑 시설원예 농사꾼이다. 고교 시절 부모님과 형을 도우며 시작한 시설딸기 농사를 1983년부터 자신이 도맡으면서 ‘비닐하우스 인생’을 살아왔다.

김씨는 당시 논에 하우스 6동을 지어 딸기를 재배했다. 그 시절 비닐하우스는 지금과 큰 틀에선 비슷하지만 세부 자재는 완전히 달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철재 구조물이 아닌 잘게 쪼갠 대나무를 이어 뼈대를 만들었다. 비닐도 약하디약했다. 김씨는 “눈이 조금만 쌓여도 하우스가 주저앉는 통에 밤마다 당번을 정해 꽁꽁 언 손을 녹이며 눈 쓸러 나와야 했다”고 회상했다.

겨울마다 눈 쓸기 전쟁을 치르고, 봄이면 모를 내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철거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10년 가까이 딸기농사를 이어간 건 ‘돈’이 됐기 때문이다.

“딸기 비닐하우스 한동에서 나는 수익이 150만∼160만원이나 됐습니다. 논 3.3㎡(1평)가 1만원도 안하던 시절에 말예요.”

1990년대 들어 딸기 인기가 한풀 꺾이자 김씨는 시설수박 재배로 눈을 돌렸다. 9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5월에 농사가 끝나는 딸기와는 달리 수박은 1월에 시작해 5∼6월에 마쳤다. 짧은 재배 기간에 한결 재미가 든 것은 당연지사. 김씨는 친환경농법에도 눈을 떴다.

“애초부터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컸습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에서 최소한의 약제만 사용하는 ‘저농약’ 농법을 시작한 이유죠. 초반 2년간은 농사가 잘 안됐지만 이후부턴 지력이 회복됐는지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더군요.”

김씨가 생산한 저농약 인증 수박은 크기가 작았다. 보통 한통당 무게가 7㎏은 넘어야 상품으로 취급받지만 김씨 수박은 5∼6㎏에 그쳤다. 하지만 당도가 16브릭스(Brix)나 나오면서 공판장에서 최고가를 받는 수박으로 통했다.

수박을 재배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대 이후부터 토마토농사로 전환했고 이후 ‘다품종 소량 생산’ 체계를 도입해 딸기·멜론·무·양파·대파·고추 등 13개에 이르는 작물을 한동당 926㎡(280평)인 비닐하우스 32동에서 길러냈다.

그에게 비닐하우스란 무엇일까.

김씨는 “지난해 기상이변으로 비닐하우스 절반이 물에 잠기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돈 되는 비닐하우스 덕분에 세 자녀를 키우고 손자까지 보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친환경농업을 실천해 내가 생산한 농산물이 학교급식에도 들어가고 농촌 환경도 지킬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 건 다 요 비닐하우스 덕분”이라면서 비닐하우스를 살포시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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