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적자에도 10~20년 버텼더니… ‘듄’과 ‘삼체’ 책에도 봄날이 왔네

황지윤 기자 2024. 4.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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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대표와 편집자가 ‘듄친자’
‘듄’ 1년에 100권도 안 팔릴 정도로 인기 없었지만 20여 년 판권 유지
영화 개봉하며 20만부 이상 팔려
왼쪽부터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 신장판 전집 세트(1~6권)'와 류츠신의 '삼체 1~3권 세트' /황금가지·자음과모음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은어)가 승리한다.” 요즘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농담을 한다. ‘악성 재고’였던 소설 ‘듄’(황금가지)과 ‘삼체’(자음과모음) 시리즈가 영화·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서점가에서 뒤늦게 흥행하고 있어서다. 단기 수익을 포기하고 10여 년 넘게 판권을 유지한 출판사 내부의 ‘덕후(마니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방대한 SF 시리즈 소설이 서점가 ‘TOP 3′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2월 말 영화 ‘듄: 파트2′가 개봉한 주에 원작 소설 ‘듄 신장판 전집 세트(1~6권)’는 예스24 소설·시·희곡 분야 베스트셀러 3위, 종합 순위 33위에 올랐다. 한 달 전만 해도 종합 순위 1000위 밖이었다. 2021년 1편이 개봉했을 때도 소설·시·희곡 분야 3위, 종합 순위 12위까지 올랐는데, 3년 만에 또 봄을 맞은 것이다.

위는 영화 '듄: 파트 2'의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티모테 샬라메). 아래는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넷플릭스

곧바로 ‘삼체’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지난달 21일 넷플릭스 드라마 공개와 함께 ‘삼체 1~3권 세트’는 소설·시·희곡 분야 베스트셀러 4위로 올라섰다. 3월 마지막 주, 4월 첫째 주에는 2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신규 팬 유입, 원작에 대한 궁금증, 출판사 프로모션 등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만 보면 결말을 알 수 없는 점이 책 구매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영화 ‘듄’은 3편 제작이 확정됐고, ‘삼체’도 시즌 2 제작이 논의되는 단계다. 다음 편을 기다리지 못하고 원작 소설을 사보는 팬들이 상당하다는 게 서점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뒤늦은 ‘잭팟’에는 인내가 있었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민음사의 장르 문학 전문 자회사인 황금가지가 2001년 판권 계약과 함께 1~18권을 차례로 냈다.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은 “’듄친자(듄에 미친 자)’였던 당시 편집 담당 선배가 용기를 내서 ‘이런 명작은 가져와야 한다’고 경영진에 제안했는데 마침 박근섭 대표도 ‘듄친자’였다”며 웃었다. 박 대표의 20년 전 네이버 아이디는 ‘무앗딥11′. 중심 인물 폴 아트레이데스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1~3권 이후부터는 초판 2000부 찍은 것도 팔리지 않았다. 김 주간은 “1년에 100권이 안 나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제작부에서 ‘이걸 계속 팔아야 하느냐’고 묻고, 5년마다 손실을 떠안고서 ‘눈물의 재계약’이 반복됐다. 하지만 박 대표를 포함한 사내 ‘듄친자’들이 뚝심을 지켰다. 2021년 1월 개정판을 내고 영화가 개봉하면서 그해 20만부가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20년 ‘존버’의 결실이었다.

2001년 출간을 시작한 '듄' 초판(1~18권) 표지. 판매 실적이 저조해 재계약때마다 출판사를 시험에 들게 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황금가지

류츠신의 ‘삼체’는 2013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정은영 자음과모음 대표는 “당시 중국 출판사 관계자로부터 ‘세계에 내놓을 만한 SF 소설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판권을 샀다”며 “애초 수익성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간 투자 대비 실적이 너무 저조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2015년 SF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받았는데도 판매가 늘지 않았다. 정 대표는 “국내 SF 독자가 많지 않다는 걸 처절하게 느낀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판권 재계약과 3권 출간을 결심했다. 그러다 이번 넷플릭스 드라마 공개를 계기로 판세가 뒤집혔다. 지난 12일에도 1만부 재쇄를 찍으며 개정판 기준 13쇄를 찍었다. 박진혜 자음과모음 편집자는 “최근 정보라·김초엽 등 장르 소설 스타 작가가 탄생하면서 국내에서도 SF 소설을 즐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왼쪽은 2020년 출간된 '삼체' 1부 개정판. 오른쪽은 2013년 출간된 '삼체' 1부 초판. 자음과모음 관계자는 "초판 표지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아 개정판을 내면서 표지도 심혈을 기울여 바꿨다"고 했다.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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