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알았슈"·"냅둬유"… 다시 확인된 충청권 특유 정치문법

김재근 선임기자 2024. 4. 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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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충청권 정치 지형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20년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대전의 지역구 7석을 모두 차지했다. 대전일보 DB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의 실정 탓으로 22대 총선에서 충청권 28석 중 7석을 얻는데 그쳤다. 대전일보 DB

22대 총선이 끝났다. 전국적으로 야권이 192석으로 압승을 거뒀고, 여당은 108석으로 겨우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충청권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총 28석 중에서 더불어민주당이 21석, 국민의힘이 6석, 새로운미래가 1석을 차지했다.

이번 선거도 충청에서 승리한 쪽이 전국적으로도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 충청권이 승패를 가르는 스윙보터, 바로미터 역할을 한 것이다.

야당과 진보 진영에서는 "역시 충청도"라며 좋아하고, 여당과 보수 측에서는 "충청도가 이럴 수 있나"며 섭섭함을 내비친다. 충청인들의 선택에 의문을 표하고 비난하는 부류가 있지만 충청에는 충청도 나름의 분명한 정치와 선거 문법이 있다.

충청도 유권자에게 우리 편을 찍어달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알았슈" 혹은 "냅둬유"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지한다는 것도 아니고 안 찍는다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대답처럼 들린다. 그러나 충청도 사람끼리는 그 의미를 쉽게 알아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일 못하는 윤 정부에 내린 분명한 경고

충청도에서 "알았슈"는 찬성이나 지지가 아니다. "네 이야기는 잘 알아들었다. 지지하지는 않지만 생각은 해보겠다"는 정도의 뜻이다. "냅둬유"는 완곡하지만 거절한다는 뜻이다. "네 이야기가 불쾌하다. 상관하지 말아라. 내가 알아서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타지역 사람들은 "알았슈"와 "냅둬유" 너머 뭔가 분명한 게 있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한다. 분명한 그 무엇은 무엇일까? 오랜 세월 선거와 투표, 정치권의 행태를 겪어보며 쌓아온 충청인 특유의 '기준'과 '자존심'이다. 진영논리에 함몰된 영호남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첫째, 충청인들은 일을 잘하면 찍고 잘못하면 안찍는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충청권은 윤석열 정부에 단호하게 "노(NO)"를 표시했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 때는 민주당 이재명보다 국민의힘 윤석열에게 표를 더 줬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도 충청권은 4개 시도 광역단체장과 대부분의 기초단체장, 지방의원을 국민의힘이 차지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집권 이후 경제와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서 실정을 거듭했다. 특히 물가와 고금리, 경기침체 등 민생을 챙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침 충청인들은 윤석열 정부의 충청권 홀대에 크게 실망해온 터였다. 대전 시민의 염원하는 지역은행 설립도 지지부진하고, 신설되는 우주항공청은 대전이 아닌 경남 사천시로 간다. 연구개발 예산 삭감도 과학기술도시 대전 시민의 가슴에 상처를 냈다. 윤 대통령이 대선 때 국무회의를 서울과 세종에서 격주로 번갈아 개최한다고 했지만 세종에서 열린 것은 106회 중 단 2회에 그쳤다.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도 별다른 이유 없이 2031년으로 미뤄졌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 여당이 충청권 CTX 건설, 대전 도심 철도 지하화, 국회 세종시로 완전 이전 등을 내세웠지만 먹혀들 리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대선이나 2018년 지방선거에서 밀어주고, 2020년 총선 때도 코로나19을 잘 극복했다는 이유로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 당시 민주당은 충청권 28석 중에서 20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말기 LH 부동산 투기 사태가 발생하자 냉정하게 손절했다.

문재인이나 윤석열 정부 때 치러진 선거에서 보듯 국정을 잘 수행하면 찍어주지만 나랏일을 잘못하고 지역현안을 외면하면 단호하게 심판하는 게 충청인이다.

22대 총선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충청권과 수도권은 거의 비슷한 득표율을 보였다.

□ 수도권 동조화 뚜렷, 영호남 주장 안 먹혀

둘째, 수도권 동조화 현상이 매우 뚜렷해졌다. 이번 선거에서 충청권은 지역구 28석 중 민주당이 21석, 국민의힘이 6석을 차지했다. 수도권 역시 122석 중 민주당 102석, 국민의힘 19석으로 야당이 압승했다.

특히 비례대표 투표 결과는 충청권과 수도권이 놀랄 만큼 일치한다. 전국적으로 비례대표 득표 순위는 1위 국민의미래 36.67%, 2위 더불어민주연합 26.69%, 3위 조국혁신당 24.25%였고, 수도권의 서울 경기 인천도 전국적인 통계와 순위 및 득표율이 비슷하다. 충청권 대전 충남 충북이 수도권과 거의 일치하고 세종만 조국혁신당이 1위에 올랐다.

19대 대선도 결과가 비슷했다. 특히 대전은 문재인과 홍준표의 득표율이 42.93% 대 20.30%로 서울(42.34% 대 20.78%), 인천(41.20% 대 20.91%), 경기(42.08% 대 20.75%)와 빼닮았다. 2020년 21대와 올해 22대 총선을 비롯 2018년과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충청권은 수도권과 비슷한 흐름을 보여왔다.

충청권과 수도권의 정치 성향이 비슷한 것은 지리와 인구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충청권은 국토의 중심부에 있지만 영남이나 호남보다는 수도권과 교류가 훨씬 많다. 수도권과 산업 경제 교육 문화 등이 매우 밀접하다. 수도권으로부터 차관급 청 단위 기관이 대전에, 장관급 부 단위 정부 부처가 세종으로 내려왔다. 당연히 정치에 관한 정보나 의견도 수도권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충청권의 인구 구성도 수도권처럼 특정 지역 출신이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다. 대전만 하더라도 충청을 비롯 영호남, 심지어 6.25 때 정착한 북한 출신까지 두루 섞여 있다. 충남 북부권의 천안 아산 당진, 청주의 오송과 오창산업 단지도 전국에서 인구가 유입됐다.

셋째, 보수와 진보적 정치성향이 엇비슷하게 병존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해방 이후 내내 충청권은 보수적 흐름이 지배해왔다. 충청권 출신으로 윤보선 유진산 조병옥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심대평 이해찬 이완구 등의 정치인이 있지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김종필이다. JP는 박정희 집권기는 물론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시절에도 충청권 정치를 좌우했다.

□ 보수와 진보 병존, 극단 주장엔 중립 고수

보수 일변도의 충청권에 진보의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다. 새정치국민회의 DJ는 1997년 자유민주연합의 JP와 손을 잡고 15대 대선에서 승리, 대통령이 된다. DJ-JP연합정권 탄생으로 충청권에 진보의 씨앗이 뿌려진 셈이다. 2002년에는 노무현 대선 후보가 충청권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내걸었고, 당선 뒤에 이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그 뒤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자 충청권이 크게 반발하면서, 이를 계기로 진보세력이 널리 자리 잡게 된다.

산업화와 도시화도 진보층의 증가에 일익을 담당했다. 보수색채가 강했던 대전 청주 천안 아산 세종 당진 등은 젊은 인구가 늘어나면서 보수와 진보세가 널리 확산됐다.

마지막으로 충청인들은 균형과 중립 의지가 매우 강한 편이다.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에서 극단적인 주장을 하면 충청인들은 대개 "그러다가 나라 망해유!"라고 대답한다. 극단적이고 편향적인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의 주장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대립과 갈등보다는 중도나 중립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거 여론조사도 잘 맞지 않는다.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막판까지 신중하게 따져보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영호남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다. 영남이나 호남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 충청권을 제대로 배려한 적이 없다. 단적인 예로 내각을 구성할 때마다 당연한 것처럼 영남과 호남 출신의 비율만 따졌지 충청권은 아예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다.

24년 3월 현재 충청권 인구는 555만 명으로 대한민국 전체의 10.8% 정도이다. 충청인들은 인구나 유권자 수에 비해 홀대받는다고 여기고 있다. 역대정부가 여러 사업을 벌였지만 지리적으로 수도권에 인접한 덕분이지 특별히 충청권을 배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충청인들의 정치적 나침반은 정확하게 여기쯤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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