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끼리 방 못 쓰는 트라우마, 70대가 매 맞는 소년처럼…

고경태 기자 2024. 4. 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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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인권운동 최전선―10]
이향림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 상담실장
1970년 선감학원 안에서 열린 행사 장면. 경기창작센터 제공

남자들끼리는 한 방을 못 쓴다.

그것은 트라우마다. 어떤 살풍경을 떠올려본다. 저 멀리서 서서히 가깝게 들려오는 마룻바닥 곡괭이 끌리는 소리. 자기 전 광목으로 된 원복을 빳빳하게 각 세워 정리해놓고 점호를 기다리던 10살 안팎 수십명 남자아이들의 얼굴은 공포에 물들어간다. 아이들은 차례대로 ‘곡괭이 빠따’를 맞고, 알몸으로 잠을 청한다. 담요는 충분치 않고 방은 좁다. 모로 누워 머리 다음에 발, 또 머리 다음에 발이다. 이른바 69자세가 빽빽하게 이어지는 구조다. 잠결에 등을 대고 누웠다간 잠 대열이 무너진다. 자다가도 일어나 두드려 맞는다. 밖으로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탈출은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다. 이 알몸 감옥의 밤에 성폭행은 일상이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조선총독부가 설립해 해방 직후인 1946년 2월 경기도에 넘겨준 부랑아동 수용시설이다. 국가의 관리 아래 경기도가 직접 운영한 이곳에서 심각한 아동 인권침해가 일어났다. 하루, 한 달, 1년이 아니라 1982년까지 40년간 일어났다. 사회 최약자층, 그중에서도 10대 안팎 아동 수천 명을 외딴섬 안산 선감도로 납치해와 감금하고 굶기고 때리고 강제노동을 시켰고, 죽으면 암매장했다. 834명의 아이가 탈출을 시도하다 바다에서 익사하거나 행방불명됐다. 이 악랄한 아동 착취는 은폐됐다. 시설 폐쇄 뒤에도 30년 가까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를 ‘한국 현대사의 불가사의’라고 표현했다.

‘2024 인권운동 최전선’의 10번째 주인공은 그 불가사의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마주하며 심리상담을 해온 이향림(61)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 상담실장이다. 4년여간 그들이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 안정과 평화를 찾고 성장하도록 돕는 상담의 모형과 시스템을 구축해온 인물이다. 그는 피해생존자들이 고독사와 물질적 궁핍에 대한 걱정 없이 따뜻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인권운동이라고 말했다.

이향림 선감학원사건 피해자 지원센터 상담실장. 고경태 기자

부천 약대동 빈민가에서 아동 인권 눈떠

이향림 실장은 대학 졸업 뒤 잠깐 변호사 사무실을 다니다 1988년 빈민운동에 투신해 13년을 지냈다. 처음엔 부천 원미구 약대동의 민중교회가 운영하는 탁아소(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봤는데, 탁아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공부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매일 야근으로 늦게 들어오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엄마들은 대부분 무학이거나 국졸(초졸)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받아쓰기 한 개 틀릴 때마다 매를 한 대씩 맞고 왔다. 탁아소는 자연스럽게 공부방도 겸하게 되었다. 무너진 판잣집을 개조한 공부방에서 주민들과 엉켜 살면서 취약한 환경에 놓인 아동 인권에 눈을 떴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아동 인권 침해의 상징인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치유를 위한 일을 한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뒤늦게 심리상담을 공부했다고 한다. 한 대학의 보건환경대학원 공연예술치료학과에서 무용·연극치료를 전공했고, 군포 산본동과 무주에서 힐링과 의사소통을 주제로 한 심리치료 센터를 15년간 운영하며 학대 아동과 성매매 여성을 지속해서 만났다. 2020년에 선감학원 입소자 치유프로젝트 ‘찾아가는 상담실’과 인연을 맺어 여기까지 왔다. 2023년 2월 문을 연 선감학원사건 피해자 지원센터 상담실장으로서 상담 업무 전체를 총괄한 것은 1년 남짓 되었다. 1년 동안 10여명의 객원상담사와 함께 250여명 피해생존자의 상황을 조사하고 상담했다.

이향림 실장이 맡은 일은 상담 업무만이 아니다. 피해자지원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회장 김영배)의 간사로서 기획 일도 도맡아 한다. 특별법 제정은 그의 가장 큰 관심사항이다. 이향림 실장을 8일 서울 구파발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나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의 트라우마와 남은 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향림 선감학원사건 피해자 지원센터 상담실장(오른쪽)이 10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 경기도청 옛 청사 상담실에서 선감학원 피해자 상담을 하고 있다. 선감학원사건 피해자 지원센터 제공

재난 트라우마와 또 다른 복합 트라우마

― 이분들의 트라우마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신체화 증상이 수반돼요. 그 시절에 내가 맞았던 이야기를 하면 실제로 그 부분의 아픔이 신경계에 나타나는 겁니다. 복합트라우마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인 재난 트라우마와 달라요. 오랫동안 집단적이고 체계적으로 가해진 폭력이거든요. 대표적인 게 과호흡입니다. 공황장애 초기증상인데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얼어붙으면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거예요. 가령 어린 시절에 본 시체의 얼굴이나 만졌던 감각이 클로즈업돼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하는 거예요. 그러면 몸이 퇴행해서 70대 할아버지가 선감학원에서 매 맞던 10대 소년으로 돌아갑니다. 눈동자가 흐려지고 아기 목소리가 나와요.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이나 자율신경계 안정화 호흡을 통해 자신을 돌보게 하고 과거의 꼬맹이에서 현재로 돌아오도록 함께 하는 거죠.”

― 상담 때 피해생존자들은 어떤 반응들을 보이나요?

“자신이 겪은 증상이 트라우마였다는 걸 잘 몰랐다고들 하세요. 그전에는 재수가 없거나 자신이 부족해서 이런 모양으로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 이게 병의 한 종류구나 인식하는 거죠. 병이라면 치료법이 있겠다 하면서 자신을 좀 객관화해서 보게 돼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애착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거예요. 누군가와 안전한 관계를 맺은 경험이 적습니다. 대인기피 증상이 있고, 결혼을 못 했거나 했더라도 이혼율이 높아요. 또한 군대문화로 운영되는 남성중심의 큰 조직이나 직장에서는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해에는 ‘평화 챙김’, ‘선감 사랑방’, ‘힐링캠프’ 등에서 엄마가 생일날 차려주는 집밥을 해드렸어요. ‘밥상머리 상담’이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애착을 형성하기 위한 푸드 테라피인데 하반기에는 명절날 잔칫집처럼 음식을 차리고 정리하는 협업이 저절로 일어났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사건’ 제2차 진실규명 결정이 나던 지난달 26일, 전체위 방청석에서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원들에게 이야기하는 이향림 선감학원사건 피해자 지원센터 상담실장. 고경태 기자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사건’ 제2차 진실규명 결정이 나던 지난달 26일,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원들이 방청석에서 전체위원회 공개회의를 보고 있다. 고경태 기자

― 지난해 트라우마 상담은 ‘1단계 안정화’였다고 들었어요. 그다음은 뭔가요?

“안정화 단계 훈련을 하면 과거 기억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잃어버린 기억들이 퍼즐처럼 나오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 내담자에 맞춘 최면 치료, EMDR이라고 부르는 안구운동, 트라우마 요가 등 전문 치료기법이 있어요. 트라우마는 결국 외상이거든요. 예전에는 화가 나거나 울면서 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할 수 있어야 해요. 트라우마의 기억을 내 삶의 자원으로 전환해야 해요.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이나 가족대화법 등 대인관계나 리더십 등의 심리교육은 부정적인 기억에 압도당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올해 트라우마 상담의 목표는 바로 이러한 ‘2단계 기억 재통합’입니다.”

봉사 꿈꾸게 하는 외상 후 성장

― 그다음은요?

“3단계는 ‘외상 후 성장’이에요. 의식이 성장하신 분들은 봉사를 하는 사회적 연결을 꿈꾸게 돼요. 60대 연령인 분들은 형님들의 팔순잔치를 돕는다거나, 그들이 홀로 외롭게 돌아가시지 않도록 하는 장례위원 일을 의미 있어 하시죠. 자녀가 없는 분이 많으신데 시설 아동들을 위해 활동을 하시겠다는 분도 계세요. 자존감이 올라가면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어하십니다. 20여명의 협의회 회원이 안산시 선감동 선감역사 박물관이나 지원센터 행사에서 2~3일씩 활동하시고 동료 상담사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이분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하는 시민 인권교육에 강사로 참여해서 청소년들에게 인권 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 할배’ 역할을 할 수도 있어요. 기존 인권 활동가와는 결이 많이 다르겠죠. 생존자 한 분 한 분이 걸어 다니는 ‘사람 책’이거든요. 선감 역사박물관에서 해설사를 직접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꿈과 자신감이 생기신 겁니다.”

김동연 경기지사(오른쪽 둘째)가 2022년 10월20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진실규명 기자회견을 마친 뒤 피해자 천종수씨의 손을 맞잡고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선감학원의 국가폭력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조선총독부가 1942년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보낼 소년병 양성을 위해 만든 수용시설이잖아요. 그 이후에는 경기도가 운영했고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3월26일 두 번째로 낸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문을 보면, 선감학원이 명목상 부랑아 수용보호 및 직업보도를 위해 설립됐지만 실제론 선감도 도유지 등 도유재산 관리를 위해 운영된 것으로 썼어요. 이건 아동 보호시설이 아니라 도유지 관리를 위해 아동을 이용한 시설이에요. 자기들 재산 관리하기 위해 가장 힘없는 빈민층 아이들을 외딴섬 시설에 데려다가 감금하고 폭력을 쓴 거예요. 1~2년 단기적으로 한 게 아니라 40년 동안이나 했으니 얼마나 개념이 없어요. 이게 지속될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은폐기술이 뛰어났던 거죠. 참으로 죄질이 악랄해요. 이건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로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에요. 그 시스템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해요. 도대체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개념이 있었다면 이게 1982년까지 40여년간 지속해서 유지됐을까요?”

― 민간 위탁운영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운영했어요. 경기도 5급 공무원들이 돌아가며 원장을 역임했죠.

“맞아요. 이건 변명을 할 수가 없어요. ‘빼박’인 거죠. 위탁기관에 책임 전가를 할 수도 없잖아요. (경기도에 사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형제복지원보다 위로금 500만원과 생활안정지원금 생활지원금 20만원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먼저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거고요.”

2023년 3월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경기도 안산이 지역구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선감학원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입법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버지 보는 앞에서 끌려간 삼형제

― 특히 기억에 남는 피해생존자가 있나요?

“경기도는 8살 이상의 아동을 끌고 왔다고 하지만 만 5살에 온 분도 있어요. 그분이 김혁원씨였는데, 이 분은 삼형제가 다 끌려왔어요. 제가 아는 한, 삼형제가 끌려온 집이 다섯 집이에요. 가족이 버젓이 다 있는데도요. 가정이 풍비박산 나죠. 그냥 아무나 다 납치해온 거예요. 다리 밑에서 산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삼형제를 다 데려가기도 했고요. 이후 아버지가 찾아왔는데 맏형은 이후 다시 잡혀갔대요. 탈출 후 잡히는 게 두려워 멀리 부산으로 도망갔다가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선감학원으로 재이송돼 오신 분도 계세요. 2차 수용 때는 1년 있었는데 원아대장에는 한 달 있었던 것으로 잘못 기록돼 있어요. 여기에 대해 경기도는 구제책이 없다고 해요. 원아대장을 자기들이 잘못 기록해 놓고, 행정적인 실책의 책임을 피해자한테 전가하는 거죠.”

― 폭력 피해가 대물림되나요?

“매 맞고 자란 사람들은 때리는 데 익숙해요. 가정폭력으로 이혼당하신 분들도 있으세요. 선감학원에서 맞은 강도가 10이라고 하면, 본인이 3 정도로 쓰는 폭력은 폭력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집단 상담할 때 아이들한테 미안했다는 자각이 들면 죄책감에 펑펑 우세요. 의사소통과 리더십에 대한 교육을 받으신 분들은 좀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가족관계가 회복되기도 합니다. 2023년 10월6일 열린 제8회 선감학원 추모문화제는 처음으로 가족을 초대해서 아버지의 삶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위로하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 폭력이라는 게 습관이 돼서 잘 안 바뀌잖아요.

“바뀌어요. 폭력이 자연스럽게 자제가 되는 나이이기도 하시고, 언어폭력도 훈련을 통해 조절력이 생깁니다. 이분들은 평생 순화된 언어를 들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족들한테도 틱틱거리고 욕을 많이 했거든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지식인들에 비하면 진지하게 실천을 하십니다. 성공적 사례를 많이 봤어요. 저는 ‘미안한 마음만 가지면 안 된다, 혼자만 결심하지 말고 의례가 필요하다’고 말을 해요. 결혼식을 하는 것처럼 사과식을 하라고 권유합니다. 지나가는 말처럼 ‘미안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담아 ‘아빠가 때려서 미안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랬다. 아빠가 선감학원 출신이고 어린 시절 이러저러한 일을 겪었다. 네가 이해해줄 때까지 아빠가 기다리겠다’ 하는 식으로요”

진실화해위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들이 2023년 10월25일 오전 경기 안산시 선감동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한 유해발굴(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돈 받고 원생을 머슴으로 팔기도

― 가족과 함께 상담한 적 있나요?

“가족 상담은 올해부터 할 예정입니다. 선감학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비밀로 한 경우가 많았어요. 근데 경기도로부터 지원금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픈된 집이 많아요. 그런 집에선 ‘우리 아빠 또는 남편이 되게 폭력적이거나 표현을 안 해 답답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알게 되었죠. 가족 안에서의 대우가 달라졌어요. 국가에서 그 피해를 인정해준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가족 내에서도 명예회복이 된 거죠. 사모님들이 잘해주세요. 평생 존재하지 않았던 애착도 형성되고 있어요. 가족들도 심리적·경제적 피해자입니다. 함께 가족관계가 치유되고 배우자와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

― 선감학원 원생들이 탈출해서 민가에 숨으면 오히려 협박을 당해 그 집에서 머슴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런 경우도 있고, 선감학원에서 머슴으로 소개해주고 돈을 받았다는 정황도 있어요. ‘학원에서 공무원들이 직업을 소개해줬다’고 원아대장에 기록돼 있는데, 그게 바로 그런 경우죠. 탈출하는 원생을 선감학원에 고발하면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았대요. ‘선감학원 갈래, 우리 집에서 머슴 살래?’라는 협박으로 하는 수 없이 머슴살이를 한 분도 많이 계십니다.”

― 지금 선감학원 옛터 복원 사업이 진행된다고 들었어요.

“네. 옛날 선감학원 자리(현 경기창작센터 옆)에 11개 건물터가 남아있습니다. 건물을 그대로 복원해서 인권평화박물관을 세우는 거예요. 현재 용역업체가 선정돼 어떤 규모로 지을지 조사를 하고 있어요. 이 사업이 잘 진행되어 아동인권평화공원과 박물관이 세워지고 이 옆에 피해생존자들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센터와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실버 케어타운을 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사건’ 제2차 진실규명 결정이 나던 지난달 26일,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원들이 진실화해위 밖 서울 중구 퇴계로 거리에서 손팻말을 들고 모여 있다. 고경태 기자

피해 생존자들의 노후 설계가 곧 인권운동

― 보통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를 겪은 공간에 다시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잖아요.

“근데 이분들은 그렇지 않아요. 아픈 기억의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우리가 심은 나무다’라거나 뽕밭 개간한 이야기 등을 하며 선감도 땅에 대한 애착을 느끼고 노후는 친구들과 함께 여기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할 때면 놀라워요. 가족 해체를 겪은 분들에게는 선감학원 동료들이 유일한 공동체라 고향처럼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마치 며느리들이 친정집에 가서 속에 있는 이야기 다 하듯 선감 사랑방 모임에서 선감학원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어 속시원하고 서로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애틋한 공동체가 확장되고 있어요.”

― 이분들의 노후를 설계하는 게 결국 인권운동이네요.

“평생을 고난 속에서 살아오신 분들이 여생이나마 편안하게 사시는 게 핵심입니다. 고독사할 걱정 없이, 돈 걱정 없이 밥 세끼 먹고, 여행도 다니고, 심심하다는 것도 느끼면서 일상에 대한 따뜻한 체험들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치매나 섬망 증상으로 인해 노숙자처럼 돌아다니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이분들 노숙자 쉼터에 못 들어가요. 대부분 성폭행 피해 경험이 있거든요. 남자랑 2인 1방을 못 써요. 독방을 써야 합니다. 노인복지센터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분도 계시는데, 불가능합니다. 결혼하신 분들도, 부부끼리 각방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악몽을 꾸면은 소리만 지르는 게 아니거든요. 성폭행당하셨던 분들은 죽을 힘을 다해서 발버둥을 치기 때문에 함께 자는 사람이 위험해요. 일종의 신체화 증상이죠. 외롭고 힘들게 살았지만 세상 떠날 때는 꽃상여 타고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게 급해요. 이 부분은 당장 정부에 호소해도 안 해줄 거기 때문에 시민들한테 호소해서 자원봉사 시스템으로 가려고 합니다. 세월호 유족들 위해 일해주셨던 목사님하고 스님, 그다음에 자원봉사 2명 이렇게 해서 상조 장례위원단을 소소하게 만들긴 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 돌아가시면 전국민적으로 개인의 스토리를 기억해 알리면서 보내드리잖아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도 그런 게 필요합니다.”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사건’ 제2차 진실규명 결정이 나던 지난달 26일, 이향림 선감학원사건 피해자 지원센터 상담실장이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원들에게 인쇄물을 나누어주고 있다. 고경태 기자

특별법, 선감학원과 세월호의 차이

― 특별법 제정은 가능할까요?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는 15년 전 만들어진 자조 모임이에요. 김영배 회장님이 정말 차근차근 많은 일을 했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해요. 현재 비영리단체인데 사단법인을 만들려고 합니다. 사단법인 등록은 경기도가 아닌 행정안전부를 통해서 할 겁니다. 경기도는 경기도에 사는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한테만 차등지원한다는 비판이 많았잖아요. 사단법인은 경기도를 넘어서는 전국 조직으로 거듭나야 해요. 이 모든 것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입니다. 가령 피해생존자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만든다고 했을 때 현행 장기요양 관련 법률에 따르면 한 방을 여러 명이 써야 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분들은 1인 1실을 주어야 합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이런 지원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만들 수 있어요. 우리 지원센터 예산을 보더라도 특별법이 제정된 세월호와 확연히 차이가 나요. 세월호는 문재인 대통령 때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트라우마 센터 예산이 연 40억원입니다. 저희는 연 2억5천만원밖에 안 돼요. 직원이 3명인데 인건비와 사업예산을 다 합친 금액입니다. 예산이 조금만 더 증액되어도 가족치유프로그램과 문화행사 등을 다양하게 할 수 있을 텐데요.”

50년 만의 수학여행, 아이처럼 좋아한 생존자들

지난해 4월 군산으로 간 ‘50년 만의 수학여행’에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이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향림 상담실장.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지원센터 제공

이향림 실장은 마지막으로 1년 전인 2023년 4월 20여명의 피해생존자가 군산과 공주로 다녀온 ‘50년 만의 수학여행’에 관해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군산은 1960~70년대 근대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이다. 고립된 선감도에 갇혀 학대당하던 어린 시절, 이들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바깥세상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모자를 삐딱하게 쓴 채 교복을 입어보고, 달고나와 쫀드기도 먹어보면서 한껏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상담보다 여행이 좋다면서 상담할 예산으로 여행 가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마치 영화 ‘써니’에 나오는 여고생들처럼 시골 소년이 도시 풍경을 처음 보고 까부는 톤으로 목소리도 밝아졌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공주 우금치 박물관에서 특별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평소에는 ‘어려운 이야기 하지 말라’며 튕겨나가던 분들이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설명을 굉장히 진지하게 들으면서 감정이입을 했어요. 우스갯소리처럼 ‘일치단결하자’는 말씀도 하셨는데, 본인들도 조선총독부가 처음 만든 시설의 피해자라는 걸 인식하는 듯했어요.”

진실화해위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들이 2023년 10월25일 오전 경기 안산시 선감동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한 유해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곧 상담실장 그만두고 특별법 제정 활동에 집중

그는 4월 말에 상담실장 자리를 그만둔다.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간사로서 두 가지 일을 겸해왔는데 경기도에서 월급을 받아온 상담실장 일만 내려놓는 셈이다. 좀 더 자유롭게 협의회 간사 일에만 집중하면서 특별법 제정을 이뤄내고 싶다는 소망에서다. 그 첫걸음은 협의회의 사단법인화 작업이다. “선감학원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심리치료의 기본 모델은 구축되었고, 8명의 동료상담사가 활동할 것이고 전문기관과 MOU 체결도 되었으니 객원상담사로서 상담활동에 참여할 예정이에요.”

현재 진실화해위에서 두 차례에 걸쳐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진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는 230명(1차 167명, 2차 63명)이다. 원아대장이 확보된 숫자는 5759명이다. 진실화해위 진실규명은 종결됐어도, 경기도는 피해자 신청을 계속 받고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수원의 경기도청에서 선감학원 심의위원회를 열어 피해자 여부를 확정한다. 문제는 경기도민에 한한다는 것이다. 이향림 실장은 “그래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민을 넘어 전국의 모든 선감학원 생존자들이 피해 인정을 받고 노후에 어른답게 살면서, 잘 늙고,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해드렸으면 합니다. 그것이 선감학원 인권운동입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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