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가해자인데 피해자로 착각하는 사람들 [전쟁과 문학]

이정현 평론가 2024. 4. 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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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16편
홋타 요시에 「광장의 고독」
한국전쟁 중 혼란에 빠진 주인공
美와 전쟁하다 병참기지로 전락
전쟁에 동조 어려워 떠나려다
망명 포기하고 소설 집필에 나서
침략국 과거 잊지 말자는 메시지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국 일본

제2의 냉전은 다시 시작했는가. 러시아는 중국ㆍ북한의 손을 잡고 있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침공 위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ㆍ미ㆍ일 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이 과거사 문제에서 한발짝 물러나도 일본은 긍정적인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일본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일본 정치인들은 여전히 전범을 기념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다.[사진=뉴시스]

지금 동북아에는 신냉전이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중국, 북한과 동맹을 강화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원칙 아래 대만의 독립을 부정하는 중국은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는다면 즉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동원되고, 한반도 역시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 문제도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을 유지하면서 직접적인 군사 동맹을 맺길 원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대폭 양보해도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의 사과' 등 별다른 화답을 하지 않고 있다. 과연 두 국가는 과거의 상처를 함께 응시하며 화해에 이를 수 있을까. 외교 무대에서 각 국가는 사소한 표현까지 조절하며 '국익'을 저울질한다. 이것이 정치와 외교의 특징이다.

그러나 문학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신냉전 질서가 굳어지는 현실을 마주하며 '기가키'라는 한 일본인을 떠올린다. 그는 일본 작가 홋타 요시에(1918~1998년)의 소설 「광장의 고독(논형ㆍ2023)」의 주인공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출간한 「광장의 고독」은 국제정치의 역학 관계로 선택의 기회를 상실한 일본 청년의 방황을 그린 작품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로 전락했고, 8월에는 '경찰예비대(후에 보안대ㆍ자위대로 재편)'를 창설했다. 냉전의 막이 오르자 미국은 적국이었던 일본을 기꺼이 우방으로 선택했다.

소설의 주인공 '기가키'는 한 신문사의 임시 직원이다. 영어에 능통한 기가키는 번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950년 여름, 기가키는 긴급통신을 접수한다. "적(enemy)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진하고 있다"는 통신문을 번역하면서 기가키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1952년 일본 요코하마에 입항한 미군 순양함을 환영하는 일본 게이샤들.[사진=미국 해군 제공]

일본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지 않았는가. 5년 전 일본은 오키나와가 점령되고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항복을 거부했었다. '1억 옥쇄'를 외치면서 본국 결전을 불사할 정도였다. 그런데 불과 5년 후 일본 언론은 미국의 적을 일본의 '적'이라고 표기한 기사를 송출하고 있다. 기가키는 혼란에 빠진다.

기가키는 미국인 기자 헌트와 대화하면서 줄곧 "일본은 누구의 편도 아님"을 얘기하지만, 헌트는 오히려 그런 기가키를 이상하게 여긴다. 헌트는 한국에서 부상당한 미군 병사를 후송하는 구급차를 가리키며 이미 일본과 미국은 같은 편이라고 말한다. 기가키는 굶주린 일본인들의 얼굴이 '전쟁 중 홍콩에서, 상하이에서, 사이공에서, 싱가포르에서 일본인의 차와 구두를 닦던 소년들의 표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동료 하라구치는 정계와 재계 인사들에게 해외정보를 넘기는 일을 하다가 재창설된 경찰보안대에 들어간다. 동료 도이는 미국에서 성장한 교포 2세지만, 태평양전쟁 때 일본으로 돌아와 포로들을 영어로 심문하는 일을 한 것이 들통나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

공산당 활동을 하는 동료 미쿠니와 다치카와는 기가키에게 입당을 권유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몰락한 귀족 '틸피츠' 남작은 계급ㆍ국가ㆍ사회를 부정하고, 오직 돈과 향락만을 추구한다. 그는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 돈이 넘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렇듯 기가키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불확실한 앞날을 내다보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기가키는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싶었지만, 전쟁에 동조하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이상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전쟁에 얽힐 수밖에 없었다. 기가키는 동거녀 교코와 아르헨티나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그가 원한 것은 '크렘린 광장'이나 '워싱턴 광장'이 아닌 또 다른 '광장'이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기가키는 결국 망명을 포기하고 틸피츠 남작이 준 돈을 불태운다. 이 장면은 경제특수로 들뜬 일본의 현실에 동조할 수 없는 홋타 요시에의 비판의식을 대변한다. 일본에 남은 기가키는 '광장의 고독'이라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죄'를 짓지 않는 노동은 소설 창작밖에 없었다.

소설 속 인물 기가키는 바로 홋타 요시에의 페르소나다. 태평양전쟁 중 게이오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국제문화진흥회'에 취직한 홋타 요시에는 중국 작가 루쉰의 글을 접하고 중국에 관심을 가졌다.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 이후 홋타 요시에는 국제문화진흥회의 도움으로 상하이로 건너갔다. 국민당계 신문사에서 일하던 홋타 요시에는 상하이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점령자에서 갑자기 피점령자로 전락한 그는 몇년간 중국에 억류됐다가 풀려났다. 이 시기의 경험은 「광장의 고독」의 토대가 됐다.

홋타 요시에는 가해자임에도 피해자라고 착각하는 일본인의 역사의식을 비판하면서 일본은 아시아를 침략한 과거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오에 겐자부로, 가토 슈이치 등 전후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한국과 일본의 교집합은 '광장'과 '밀실'에 갇혀버린 개인의 고통이다. 기가키의 방황은 한국 전후문학을 상징하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 너무도 닮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윤을 계산하는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문학의 언어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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