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비색 고려청자…그 영롱함 지켜온 남녘 마을

황지원 기자 2024. 4.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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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마을] (6) 전남 강진 ‘청자촌’
국내 최초 천연 유약 사용해 청자 재현
‘관요’ 화목 가마서 전통 방식으로 구워
체험관서 물레 돌려 작품 직접 만들기도
판매장 운영·축제 개최…지역경제 보탬
전남 강진 청자촌에선 군청 소속 도예가들이 1년에 4번 고려시대 가마를 재현한 화목 가마에서 청자를 굽는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몇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 영롱하기는 수정처럼 맑고 단단하기는 돌과 맞먹네/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려왔나 보구려.”

고려 문인 이규보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지은 ‘청자송(靑瓷頌)’의 일부다. 고려청자의 은은한 푸른빛과 상감기법으로 만들어낸 무늬는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다.

전남 강진은 고려시대 청자의 중심지였다. 고려시대에는 특산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특수행정구역 ‘소(所)’가 있었는데 강진엔 고려청자를 생산하는 ‘대구소’와 ‘칠량소’가 존재했다. 조선시대부턴 고려청자의 맥이 끊기면서 강진이 청자를 만들던 곳이라는 사실은 문헌 속에나 남아있었다. 그러던 1913년 한 일본 순사가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 청자 조각을 발견하면서 고려청자에 관한 조사가 시작됐다. 1977년엔 고려시대 화목 가마의 형태와 구조를 복원해 만든 ‘강진요’를 제작하고 이듬해엔 국내에서 최초로 천연 유약을 사용해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사당리엔 고려청자박물관과 청자 공방이 있는 청자촌이 조성돼 관광객에게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현재 청자촌엔 30가구 정도 거주한다. 1990년대부터 다른 지역에 살던 도예가들도 청자촌으로 이주해 공방을 차렸다. 도예가인 남궁복 사당리 이장 역시 경기지역에 살다 25년 전 강진으로 왔다. 남궁 이장은 “당시 군청에서 강진에 정착하는 도예가들에게 여러 혜택을 줘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고려청자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강진에서 출토된 고려청자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청자촌 여행은 고려청자박물관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11.7㏊ 규모 부지에 고려청자박물관을 비롯해 디지털박물관·체험장·가마터 등이 있어 고려청자에 대해 배울 수 있다.

13세기에 제작된 ‘청자상감모란문정병’. 강진에서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진고려청자박물관

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1층 특별 전시실에 놓인 ‘청자상감모란문정병’이다. 13세기에 제작된 이 청자는 목이 긴 독특한 형태의 물병으로 병 전체에 검은색을 섞지 않고 흰색으로만 상감한 모란 문양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정병 역시 강진에서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많은 사람과 오랜 세월을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 목포에서 온 관광객 김정순씨(69)는 “강진이 고려청자로 유명하다는 건 듣기만 했었는데 직접 청자를 보니 오묘한 청색빛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청자를 보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했다면 청자 체험관으로 가보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물레를 돌려 그릇을 만들거나 이미 만들어진 컵·접시에 그림을 그려 나만의 청자를 완성할 수 있다. 체험 교육을 담당하는 조진숙 도예가는 “수학여행 철이면 전남지역 학생들이 한달에 3000명 이상 방문한다”며 “아이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박물관엔 고려청자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도예가들도 있다. 군청에 소속된 도예가 10명이 관요(관아가 운영하는 가마에서 만든 도자기)를 빚는다. 관요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1년에 4번 고려시대 가마를 복원한 화목 가마에서 전통 방식으로 구워내기 때문이다. 1300℃ 가마에서 1박2일을 꼬박 버텨야 천하제일의 비색을 갖게 된다. 불 조절이 어려운 화목 가마에서 나온 청자는 굽는 과정에서 흠이 쉽게 생겨 3분의 1 정도만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가스 가마에서 나온 청자보다 10배는 비싸게 팔린다. 귀한 건 쉽게 얻을 수 없다.

강진청자판매장에 전시된 청자.

이렇게 구운 관요는 박물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강진청자판매장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군이 운영하는 판매장에선 관요뿐 아니라 강진 전역에 있는 민간요 40여곳의 청자도 위탁 판매한다. 판매장 연매출은 6억원 정도. 강진 내 음식점 또는 숙박시설을 이용한 영수증을 보여주면 청자를 최대 30% 할인해주는 등 지역경제와 상생을 도모한다.

개인 공방을 돌아다니며 업체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도자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방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비취에 물들다’에선 음료와 간식을 직접 빚은 청자에 담아 내놓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귀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으니 음식 맛도 더 좋은 듯하다. 또 다른 공방 ‘무진요’의 위금량 대표는 “공방에 와서 도예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원하는 제품을 주문 제작하는 것도 청자촌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청자촌은 매년 ‘강진청자축제’를 열어 청자 체험, 공연, 먹거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2월23일∼3월3일 10일간 열린 축제엔 20만명이 방문해 청자 3억8655만원, 농특산물 4467만원의 판매고를 올리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축제장에서 사용한 금액의 20%는 강진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줘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강진군청 관계자는 “고려청자의 전통과 문화를 매개로 마을이 발전하는 곳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귀중한 전통을 잘 보존하고 보다 많은 방문객이 우리의 독특한 자산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 개발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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