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어공주 배후’ 지목 비욘세, 백인 음악으로 초히트[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4. 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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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18] 영화 ‘스타 이즈 본’

오늘은 영화로 경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미국 가수 비욘세가 새 컨트리 앨범 ‘카우보이 카터’로 빌보드 전체 앨범 차트와 컨트리 앨범 차트 1위를 휩쓸었습니다. 흑인 여성이 빌보드 컨트리 앨범 순위 정상에 등극한 건 1964년 이 차트가 시작된 이래 처음인데요.

‘스타 이즈 본’은 컨트리 음악 인기 가수(왼쪽)가 무명 가수를 스타로 만드는 내용을 담았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이것은 비욘세 효과일 수도 있지만 작년부터 미국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는 컨트리 음악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앞서 지난해 9월엔 빌보드 핫100 1~3위 전부를 컨트리뮤직이 차지하는 일도 있었는데요. 미국 전통 음악인 만큼 컨트리 뮤직의 인기는 계속해서 있었지만, 메인 차트인 빌보드 핫100을 컨트리 뮤직 가수가 번갈아 가며 점령한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컨트리 음악이 기성세대를 넘어 10대, 20대에게도 폭넓게 소비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레이디 가가의 가창력은 스크린을 뚫고 전해진다. 가가는 영화에서 배우들이 립싱크하는 게 너무 어색하다며, 촬영 현장에서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오늘 소개해드릴 ‘스타 이즈 본’(2018)은 컨트리 뮤직 인기 가수가 무명 가수를 트레이닝시켜 인기 가수로 만드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 영화 안팎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근래 들어 미국의 문화산업에서 컨트리 뮤직이 주목받게 된 배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네가 유명해지길 바랐지만, 이 정도로 유명해지길 바란 건 아니었어”
남주인공 잭슨(브래들리 쿠퍼)은 미국 컨트리 음악계의 톱스타입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이 남자는 그러나 인생에 이유 모를 환멸을 느끼고, 약과 술에 의존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그는 공연을 마치고 딱 한 잔 마시러 들어간 술집에서 사그라들어가던 마음속 불꽃이 다시 타오르는 경험을 합니다.
이 영화는 브래들리 쿠퍼(왼쪽)의 연출 및 각본 데뷔작이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바로 여주인공 앨리(레이디 가가)를 만나게 된 겁니다. 낮에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그녀는 밤에 여장남자가 공연하는 무대에서 노래하는데요. 원래 여자가 무대에 서면 안 되지만, 워낙에 목소리가 출중했기 때문에 기회를 얻은 것이죠. 노래를 들으며 벅찬 감정을 느끼던 잭슨에게 공연장의 한 남자가 “우냐”고 물어봅니다. 이 장면은 마치 해당 배우가 제4의 벽을 넘어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한데요. 앨리, 그러니깐 레이디 가가의 노래 실력은 이 영화의 감동에서 큰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잭슨은 앨리도 자신과 같이 컨트리 가수로 커나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이토록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앨리가 그동안 데뷔하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연예인이 되기엔 외적 매력이 부족했기 때문인데요. 잭슨은 콤플렉스 속에 가려진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공연 무대 위에 자꾸 세웁니다. 대형 무대에 어떻게 서냐며 수줍어하던 그녀가 구름 같은 인파 앞에서 노래하고, 댄서와 함께 무대에 서는 걸 남사스러워하던 그녀가 댄싱퀸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게 영화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무대에 선 지 얼마 안 돼 스타로 떠오른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이후 결혼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잭슨의 마음이 복잡해지면서인데요. 그는 사람들이 그녀 재능을 알아보길 바랐지만, 또 막상 너무 많이 알아보니깐 좀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녀 매력이 빛나길 바랐지만, 한편으론 너무 치명적으로 빛나진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을 품게 됩니다. 마치 나만 아는 맛집이 잘되길 응원했는데, 너무 유명해졌을 때 뭔가 서운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나만 아는 맛집’이 너무 잘 되면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애초 ‘나만 아는’ ‘맛집’이 성립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 인기를 끌어야 영업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잭슨은 앨리가 자기 색깔을 너무 잃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컨트리 뮤직을 하는 잭슨은 솔직한 자기감정을 단순한 멜로디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앨리가 팝 뮤직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편곡도 화려해지고, 무대 장치는 물론 안무도 복잡해지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잭슨이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할 때, 이와 대조적으로 앨리의 의상과 메이크업은 최신 유행 스타일을 따라갑니다.

잭슨은 앨리가 자기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음악 외의 것을 강조한다고 폭언을 던지기도 하는데요. 컨트리 음악의 수호자였던 잭슨은 자기 노래가 점점 팝 뮤직에 자리를 내주는 것을 쓸쓸하게 느끼는 듯합니다. 과연 부부로서, 또 음악 동료로서 두 사람이 행복한 동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OTT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잭슨은 앨리가 자기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음악 외의 것을 강조한다고 폭언을 던지기도 한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빌보드 휩쓴 컨트리 뮤직
영화에서는 컨트리음악이 팝음악에 밀리는 상황을 그리지만, 최근 미국 음악계에선 컨트리뮤직이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단 작년에 빌보드 핫100 1~3위를 컨트리 가수가 차지하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됐는데요. 개별 노래의 소비량을 따지는 핫100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과 가수를 가리는 지표로 평가받죠. 컨트리 가수 모건 월렌은 ‘라스트 나잇’이란 노래로 핫100에서 누적 16주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컨트리 음악 소비가 20% 늘었는데, 성장의 40%는 모건 월렌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모건 월렌은 ‘라스트 나잇’으로 핫100 누적 16주 1위를 차지했다. [AP=연합뉴스]
모건 월렌 뒤에는 인기를 끈 컨트리 가수인 올리버 앤서니는 미국 공장 노동자 출신입니다. ‘리치 멘 노스 오브 리치먼드’라는 노래로 핫100 2주 1위를 기록했는데요. 노래하는 모습만 담은 동영상이 공개 4주만에 유튜브에서 5000만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현재까지 누적 조회수는 1억3000만회에 달하고요. 앤서니는 이 노래가 뜨기 전에 집이 아닌 자동차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하는데요. 빌보드는 이전에 어떤 차트에도 오르지 못한 가수가 처음으로 차트에 올린 노래가 1위를 찍은 건 처음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회수가 1억3000만회에 달하는 올리버 앤서니의 ‘리치 멘 노스 오브 리치먼드’ 동영상 중 한 장면. 화려한 효과 없이 노래 부르는 장면만 담겼다. [사진=유튜브 캡처]
이 노래의 인기는 직설적 가사에서 나왔다는 분석입니다. 일단 제목 ‘리치 멘 노스 오브 리치먼드’는 리치먼드 북쪽에 사는 부자들이란 의미인데요. 리치먼드의 북쪽은 워싱턴 DC를 뜻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세력을 비판하는 노래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가사에는 ‘나는 종일 일하면서 영혼을 팔고 있어. 초과근무를 해도 형편없는 급여를 받아. 당신의 돈은 끝없이 세금으로 나가. 뚱뚱한 사람들이 착취하는 복지’라고 쓰였습니다.

컨트리송의 잇단 히트는 PC(정치적올바름)주의를 향한 반발이라는 해석도 나왔는데요. PC주의는 민족, 언어, 종교 등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이지만, 너무 기계적으로 곳곳에 적용되며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펭귄 산하 아동문학 출판사가 아동 문학 거장 로알드 달의 책을 새로 출간하면서 표현을 PC하게 바꾸기도 했는데요. ‘남자들’을 ‘사람들’로, ‘뚱뚱한’은 ‘거대한’으로 고치면서, 수많은 독자가 반발했습니다. 이와 같은 과격한 PC주의에 지친 사람들이 반작용으로 ‘백인’ ‘남성’ ‘보수’의 색채를 띠는 컨트리송을 찾았다는 것이죠.

브래들리 쿠퍼도 레이디 가가 요구에 따라 노래를 라이브로 소화했다. 가수가 아닌 그로서는 더욱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컨트리 뮤직 가수들은 PC주의자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모건 월렌은 흑인을 비하하는 말을 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요. 제이슨 알딘은 뮤직비디오가 인종차별적이라는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실수로, 또는 실수로 오해받은 행위 때문에 그 사람의 모든 활동을 막으려는 ‘캔슬 컬처’가 폭력적이라는 반발이 있었고요. 이 때문에 외려 이들의 노래가 더 인기를 끌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흑인 ‘인어공주’ 배후 지적받던 비욘세, 주류 백인 음악 컨트리송으로 돌아오다
비욘세가 최근 컨트리송으로 인기를 끄는 현상에서 일종의 정반합의 과정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간 PC주의자들은 인종 균형을 기계적으로 맞춘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요. 대표적인 게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에서 흑인 배우 베일리가 캐스팅된 일이었습니다. 왜 원작에 백인으로 설정된 캐릭터까지 굳이 흑인으로 바꾸면서 PC주의를 추구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왔죠. 이 과정에서 베일리의 소속사 대표인 비욘세가 함께 비판받기도 했는데요. 그런 비욘세가 주류 백인 문화 콘텐츠로 꼽히는 컨트리송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대중문화에 또 다른 융합이 생기는 모양새입니다.
비욘세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아이하트라디오 어워즈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련의 흐름은 ‘스타 이즈 본’의 메시지와도 연결되는 듯합니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죠. 한때 톱스타였던 잭은 새로 떠오르는 재능인 앨리를 보며 감탄하고, 또 한편으론 씁쓸해합니다. 하지만 잭의 자리를 대체한 앨리도 어느 날 또다시 떠오르는 재능에 밀려나게 되겠죠.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냈던 할리우드 주류 콘텐츠가 PC주의를 통해 한차례 무게추를 옮기고, 또 PC주의가 너무 강해지자 다시 반발이 생기면서 어느 정도 조화로운 합의점을 찾아갑니다. 아주 당연하지만 자주 잊게 되는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주변 사람과도, 세상과도 조금 더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스타 이즈 본’ 포스터.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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