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 보증 못 하는 의혹의 보증서들 판친다

조명계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2024. 4.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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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된 감정서에 현혹되지 않는 안목 길러야
미술품 감정단체도 자발적 윤리강령 선언해야

(시사저널=조명계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미술품을 거래하는 사람 대다수는 '위작'임을 알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연히 시비에 걸려들기 싫어서다. 한번은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중국 고미술품을 구입한 사람이 있었는데, 위작이라는 소식을 듣고 자신을 한탄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다.

필자는 미술품과 관련된 강연 요청을 받을 때 투자에 관해선 절대 하지 않는다. 이유는 미술품은 투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구입할 때 '주의사항'만을 말할 뿐이다. 미술품을 구입할 때 작품을 어디에 다시 되팔 수 있으며,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를 간과한다.

사람의 신분을 확인할 때 호적등본을 뗀다.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전의 '소유·전시·연구 기록'을 봐야 한다. 소유·전시·연구 기록이 부족할 때는 '감정서'가 보조 역할을 한다. 만약 '소더비' 경매에 #360번으로 출품됐던 작품이면, 이미 검증을 거쳤으므로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매 출품 작품이 아니라면 감정서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피카소의 《꿈》 ⓒ조명계 제공
피카소의 《우는 여인》 ⓒ조명계 제공
미국감정가협회 윤리강령 이미지 ⓒ조명계 제공

내게 들어온 명작, 과연 행운일까?

예전에 지인으로부터 피카소 작품 하나를 살펴봐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52년 작인 《머리를 (감은 후) 짜는 여인》(Woman Squeezing Her Hair)이다. 그런데 이 의심스러운 작품은 원작인 《Nude Wringing Her Hair》와 거의 똑같았다. 제목만 바꿔 붙였다.

피카소의 《Woman Squeezing Her Hair》라는 작품 제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피카소의 딸 '마야 피카소'가 작성한 친필 서신이 첨부돼 있다. 친필 서신의 사실 여부는 피카소재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Nude Wringing Her Hair》의 복제 작품은 미국 최대 오픈마켓인 'Ebay'(이베이) 등에서 팔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지인으로부터 바스키아(16점), 앤디 워홀(8점), 피카소(8점) 등 유명 화가의 작품 분석 의뢰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모두 한 고객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었다. 가치의 합계는 적어도 1조원을 웃돌 것이다. 그러나 위작이었다. 필자는 이미지와 첨부된 사진 자료들, 그리고 보증서 등을 꼼꼼히 살펴본 후 지인에게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한 달 후 또 다른 바스키아 작품 한 점에 대한 의뢰가 들어왔다. 바스키아 재단이 발행한 증명서가 있었는데, 허술한 구석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인쇄된 글씨체, 서류 양식, 서명 등이 기존과 사뭇 달랐다. 작품 뒷면에는 뉴욕의 유명 갤러리인 '앙드레 에머리히' 스탬프가 찍혀있었다. 그곳에서 작품을 구입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에머리히 갤러리는 작품을 '아메리칸 아트 아카이브'에 일괄 기증하고 2007년 폐쇄됐다. 수십 년 전에 없어진 갤러리 이름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허위 증서를 붙여 매각을 시도한 것이다. 

이번에는 12억원에 매입한 피카소 작품이다. 급해서 8억원에 판다는데, 이를 구입해도 되는지 필자에게 물었다. 작품에 첨부된 보증서에 명시된 이름은 《Femme et Le Saltimbanque》이다. 이 작품의 공식 명칭은 《Saltimbanque et Jeune Fille》(곡예사와 어린 소녀)이고, 제작 연대는 1905년이다. 기록을 보면 '렘페르츠(Lempertz)' 경매에서 2004년 2억8000만원에 팔린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어떻게 서울에 들어와 있을까싶다.

서울에서 발견된 16점의 바스키아 위작들을 합성한 이미지 ⓒ조명계 제공

감정서에 현혹되지 말아야

첨부된 감정서를 꼼꼼히 보니 보증서 위에 최소한 감정인 이름과 주소가 있어야 하는데, 둘 다 빠져있다. 대신 멋진 금테가 둘러져 있다. 해당 작품의 보증서를 발급한 '글로벌 파인 아트'라는 곳은 복제품을 대량 제작해 유통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구글에는 이곳에서 발급한 보증서가 여러 개 올라와 있다. 아마도 30~50달러 정도에 이베이에서 구입한 후 출처 불명의 금테 두른 보증서를 붙여 팔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발급한 감정서는 진짜 감정서지만, 종이만 진짜일 뿐인 의문의 감정서다.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베끼는 행위. 더 나아가 서명까지 넣어도 잘못은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을 유통시키려 할 때는 범죄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이 확실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감정서'를 첨부하는 것이다. 감정서는 누가 어떻게 발행하든지 상관없다. 위조된 감정서로 부정한 거래가 행해졌고,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면 수사 당국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검찰과 경찰은 미술품에 대한 식견이 부족해 접근 자체를 하지 않는다. 업계 또한 '위작'이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괜히 엮이기 싫어 그대로 방치한다. 그러니 구매자만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 스스로 과대 포장하는 언행과 '위작'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국내에선 수많은 감정원에서 발급한 보증서가 많이 돌아다닌다. 이들 보증서는 진짜 보증서지만, 해당 작품을 진품으로 보증하지 못한다. 이들 보증서는 법률 위반은 아니다. 다만 미술애호가의 눈을 흐리게 할 뿐이다. 감정서의 신빙성 문제는 실정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 해당 기관의 신뢰성도 문제다. 감정서를 제대로 감정해야만 하는 대목이다.

대책은 없을까. 미술품 감정은 실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때문에 미술품 감정 단체들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자발적인 윤리강령을 선언해야 한다. 윤리강령 선언은 양심과 비양심의 문제이면서도 법이 제어하지 못하는 부분을 충족시킨다. 윤리강령마저 없는 기관은 신뢰도가 매우 낮은 기관이다. 이들 기관에서 발급한 증서는 존재 의미조차 없다.

그러나 국내 감정단체들은 윤리강령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모양새다. 신뢰를 바탕으로 감정단체들의 기구가 단단히 조직되고, 자체 윤리강령을 통해 직무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면 비윤리적인 단체들의 수상한 감정서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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