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수박’ 정치인이야?”…한국서 로제 와인이 안 팔리는 이유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4. 4. 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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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와인클럽 46 - 와인의 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해찬·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지난 10일 오후 여의도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점퍼를 입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10일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보고 있다.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빨간색 점퍼를 입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선거결과를 지도로 보니 대한민국이 파랑(좌)과 빨강(우)으로 ‘쫙’ 갈라졌습니다. 선거기간 후보들은 자신이 속한 당을 상징하는 점퍼를 입고 유권자들을 만났습니다. 민주당은 파란색, 국민의힘은 빨간색이 당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민주당 친명(친 이재명) 지지자들은 당내 반대파를 향해 ‘수박’ 정치인이라고 부릅니다. 겉은 민주당의 색인 파란색을 띠고 있지만 속은 국민의힘의 색인 빨간색이라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에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미국서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오레오’라고 불렸는데요. 겉은 검은데 안은 하얀 오레오 쿠키처럼 흑인인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는 뜻에서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그렇게 비아냥거렸습니다. 한인을 포함한 미국 내 아시아계 2세, 3세들을 ‘바나나’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겉은 동양 사람이지만 백인처럼 행동하는 아시아계를 향해 겉껍질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를 닮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인종차별적인 비하 발언입니다.

전국 지역구별 국회의원 선거 결과 (4월11일 오전 1시 기준)
와인도 포도껍질의 색과 양조법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이 있습니다. 보통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만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이외에도 핑크빛 로제 와인도 있고, 호박색이 나는 오렌지 와인도 있습니다. 포르투갈에서는 ‘그린 와인’도 생산합니다.

유럽, 미국시장과 달리 한국에선 유독 ‘로제 와인’이 힘을 못 쓰고 있는데요.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보니 우리는 선명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와인이 왜 특정 ‘색’을 내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와인의 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포도껍질 사용에 따라 레드와 화이트 와인 나뉘어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블랑 드 블랑’. 청포도 품종인 샤르도네 100%로 만든 샴페인이다. 반대로 적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나 피노 뮈니에로 만든 샴페인을 ‘블랑 드 누아’라고 부르는데 적포도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샴페인)을 만들었다.
보통 적포도로 레드 와인을 만들고 청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와인이 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큰 관심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샴페인만 생각해봐도 포도의 색과 와인의 색이 딱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샴페인은 적포도로도 만들지만 화이트 와인과 같은 색을 냅니다.

보통 샴페인은 적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와 청포도 품종인 샤르도네 등 3가지 포도 품종을 섞어 만듭니다. 피노 누아나 피노 뮈니에 등 적포도 100%로 만든 샴페인을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 청포도인 샤르도네 100%로 만든 샴페인을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이라고 부릅니다. 신기한 것은 적포도 100%로 만든 샴페인도 붉은색을 내지는 않지요. 물론 레드 스파클링 와인이 이탈리아, 호주 등지에서 생산되기는 합니다.

와인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포도 껍질의 색과 침용 방식입니다. 레드 와인은 포도즙을 껍질과 함께 발효시키는데 이때 포도껍질에서 ‘빨간’ 색소가 추출됩니다. 반면 화이트 와인은 포도를 압착해 즙을 빼내고 껍질과 씨는 버립니다. 이렇게 투명한 포도즙만 발효, 숙성시키는 게 화이트 와인입니다. 적포도 품종도 껍질을 제거한 뒤 양조하면 화이트 와인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샴페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유독 한국시장서 힘 못 쓰는 핑크빛 로제 와인
핑크빛을 내는 다양한 로제 와인들.
한국 와인시장에서 특이한 존재가 ‘로제 와인’입니다. 세계적으로, 특히 유럽과 미국시장에서 로제 와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로제 와인이 아직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로제 와인은 간단하게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섞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러한 제조 방법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금지돼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모든 지역에서 금지돼 있으며 유일한 예외가 샹파뉴입니다. 샹파뉴지역에선 ‘로제 샴페인’을 만들 때 스틸 레드와인과 샴페인을 섞어서 만듭니다.

로제 와인은 포도껍질을 포도즙과 함께 발효시키다가 어느 정도 색이 우러나오면 껍질을 제거하고 제조합니다. 붉은 장밋빛 색을 띠지만 맛은 화이트 와인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연어빛이란 표현도 있지만 저는 로제의 성격에 맞게 로멘틱한 장밋빛 또는 핑크빛이 더 어울리는 표현 같습니다.

여러 가지 혼동된 용어로 사용되는 오렌지 와인
제라르 베르트랑의 오렌지 와인 ‘오렌지 골드’.
국내서 가장 혼란스러운 용어가 ‘오렌지 와인’일 것입니다. 오렌지 와인은 오렌지로 만드는 와인이 아닙니다. 한국의 경우 ‘와인’의 범주에 사과, 복숭아, 복분자, 감, 자두 등 다양한 과일을 사용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포도’로 만든 술만을 와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왜 오렌지 와인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적포도 품종을 화이트 와인 만들 듯이 양조한 것이 로제 와인이라면 반대로 청포도 품종을 레드와인 만드는 것처럼 양조한 것이 오렌지 와인입니다.

포도로 와인을 만들 때 화이트 와인은 껍질을 제거하고 양조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오렌지 와인은 상당 기간 껍질과 씨앗을 포도즙과 함께 발효시킵니다. 이를 통해 포도껍질 속 타닌과 폴리페놀이 와인 속에 녹아들어가 좀 더 복합적인 와인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또한 오렌지 빛깔의 고운 색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와인의 발상지라 불리는 조지아에선 오렌지 와인이 유명한데요. 조지아에선 진흙으로 만든 ‘크베브리(Qvevri)’란 항아리에서 청포도로 오렌지 와인을 생산합니다. 와인이 진흙 항아리에서 숨 쉬며 숙성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호박(앰버·Amber) 색을 띠게 됐을 거란 추측도 해보지만 조지아에선 전통적으로 껍질과 씨를 제거하지 않고 와인을 발효, 숙성시켰습니다. 그래서 호박색 와인이 생산됐는데요. 오렌지 와인이란 멋진 이름은 2004년 영국의 와인 수입업자가 만든 이름이라고 합니다.

포르투갈서 생산되는 그린 와인
포르투갈 비뉴 베르드 지역에 위치한 아벨레다 와이너리의 ‘그린 와인.’
마지막으로 ‘그린 와인’(Green Wine)도 있습니다. 포르투갈 북부의 ‘비뉴 베르드’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그린 와인이라고 부릅니다. 비뉴(Vinho)는 포르투갈어로 와인, 베르드(Verde)는 녹색이란 뜻입니다. 그렇다고 와인색이 녹색은 아닙니다. 화이트 와인인데 비뉴 베르드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한국의 소주병처럼 녹색 병으로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과숙되지 않은 어린 포도로 만들었다, 또는 와인을 숙성시키지 않고 신선하게 바로 마신다는 의미에서 ‘그린 와인’으로 불립니다.

간단히 와인의 색을 정리해봅니다.

레드와인은 적포도 품종으로 껍질과 함께 양조, 화이트 와인은 청포도 품종으로 껍질을 벗겨내고 포도즙만으로 양조합니다. 로제 와인은 적포도 품종을 화이트 와인 만들듯이 껍질을 잠깐만 담갔다 빼는 방식으로 양조합니다. 반대로 오렌지 와인은 청포도 품종을 레드 와인 만들듯이 껍질과 함께 양조합니다. ‘그린 와인’은 지역 명칭으로 와인의 색깔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한국서도 ‘로제 와인’이 좀 더 시장을 넓혀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보고 느낀 점입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아시아와인트로피 , 한국와인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쉽고 빠르게 와인과 관련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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