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압류한 비트코인 6만1000개…중국의 폰지사기 피해금? [차이나는 중국]

김재현 전문위원 2024. 4. 14.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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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영국의 장원 저택 /사진=차이신 홈페이지
월 임대료가 1만7000파운드(약 2910만원)에 달하는 호화주택에 거주하면서 영국 런던의 유명 백화점 해로드에서 명품백과 구두를 사들였으며 런던의 대형 저택을 잇달아 매수하려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현지인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니다. 바로 런던의 한 중식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43세의 중국 여성 원지엔이다. 2017년 가을부터 원지엔은 이런 행각을 벌였으며 2018년 여름 3600만파운드(약 617억원)를 들여 영국의 장원(莊園·Manor House) 저택 두 채를 매수하려다 자금 출처를 의심한 런던경찰청(MPS)의 조사를 받게 됐다.

결국 런던경찰청은 비트코인 6만1000개를 압류했으며 현재 7만1000달러를 상회하는 비트코인 가격으로 계산하면 전체 금액은 약 310억위안(약 5조7400억원)에 달한다. 이 사건은 영국이 지금까지 적발한 최대규모의 '암호화폐를 이용한 돈세탁' 사건이다. 5년 동안의 조사를 거쳐 런던경찰청은 자금 출처를 밝혀냈고 원지엔은 돈세탁 혐의로 유죄 구형을 받았다.

그런데 원지엔은 명의만 빌려준 바지사장이었고 실제 소유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원지엔이 '라오반(사장님)'이라고 부르던 또다른 중국 여성 '화화(花花)'다. 그는 영국에서 법망을 피해 도망갔으며 지금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중국 경제주간지 차이신이 8일자 최신호에서 커버스토리로 보도한 '비트코인 6만1000개 압류 사건 속의 사건'의 서두다.

피해금액 8조원의 다단계 사기와 얽힌 비트코인 6만1000개
비트코인 가격 추이/그래픽=윤선정
차이신에 따르면 화화는 가명으로, 2017년 중국 텐진에서 발각된 초대형 다단계 금융사기(폰지사기) 사건인 '란티엔거루이(藍天格銳) 사건'의 주범 치엔즈민(錢志敏)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 규모는 중국 전역에서 13만명에 달하며 피해금액은 약 430억위안(약 8조원)이다.(폰지 사기란 1920년대 찰스 폰지로 인해 유명해진 사기 수법으로 사실상 아무런 이익 창출 없이 신규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이용해 기존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특히 영국 경찰이 조사를 벌이며 비트코인을 압수하기 전 비트코인 4500개(약 4320억원)가 증발했는데, 이 비트코인 중 일부가 올해 1월 중국인과 관련된 거래소에서 거래됐다. 도주 중인 치엔즈민의 현금화 여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란티엔거루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 공안에 검거된 피의자만 50명에 달하며, 이중 28명은 이미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피해금액 보상 절차도 시작됐지만 회수가능한 자금은 원금의 5%에도 못 미친다.

붙잡힌 원지엔이 화화를 알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영국 법원에 따르면 원지엔은 중국의 평범한 근로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중국에서 영국인 남편을 만나 2007년 배우자 비자로 영국 웨스트요크셔로 이민갔다. 원지엔은 영국인 남편과 아들을 한 명 낳았으나 결혼 3년 후 이혼했고 2017년 런던으로 이사해 중식 레스트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17년 9월 무렵 원지엔은 런던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위챗 단톡방에서 집사 구인정보를 보게 됐고 면접 후 장야디(화화)의 일상 도우미 및 통역으로 일하게 됐다.

자신을 보석상으로 소개한 화화는 원지엔에게 월급으로 4000파운드(약 685만원)를 제시했다. 화화는 원지엔에게 고급 아파트를 찾게 했으며 둘은 얼마 안 있어 월 임대료가 1만7000파운드(약 2910만원)에 달하는 아파트에 함께 입주한다. 원지엔의 주요 업무는 화화를 도와 송금 거래를 처리하고 비트코인을 현금화하는 것 외에도 화화와 함께 유럽 도처에서 명품을 쇼핑하는 것이었다. 화화는 비트코인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경찰청에 따르면 둘은 비트코인을 판 돈으로 초고가인 반클리프 아펠 시계를 여러 개 샀으며 수만 파운드짜리 보석을 사는 등 그야말로 돈을 흥청망청 썼다. 2017년 마지막 3개월 동안 원지엔은 런던의 유명백화점 해로드에서 9만파운드(약 1억5400만원)에 달하는 명품 옷과 보석 구두를 샀으며 50만파운드(약 8억5700만원)로 두바이에 있는 아파트도 두 채 매입했다.

특히 화화는 원지엔이 자신을 위해 런던의 고급 저택을 찾도록 했는데 매입자금은 모두 비트코인을 현금화해서 준비했다. 이들은 북런던에 있는 수영장과 개인 영화관, 헬스클럽이 딸린 장원 저택 두 채를 모두 3600만파운드(약 617억원)에 사려고 했으나 자금출처 증명과 비트코인 출처를 해명하지 못해서 매입에 실패했고 오히려 런던경찰청의 의심을 사게 됐다.

2018년 10월 31일 런던경찰청은 원지엔과 화화가 같이 사는 고급 아파트를 전격 기습해, 스마트폰·노트북 등 48개 단말기를 발견했으며 수천 개의 컴퓨터 파일 안에서 비트코인이 저장된 콜드월렛(오프라인 지갑)을 찾아냈다. 이후 수년 간의 조사를 거쳐 런던경찰청은 콜드월렛에서 비트코인 6만1000개를 발견했으며 중국에서 발생한 다단계 사기사건과 관련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영국 법정에서 원지엔은 비트코인이 다단계 사기와 관련이 있는 줄 몰랐으며 "화화에게 완전히 속았다"면서, 자신은 "화화를 대신해서 명품을 샀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영국 검찰에 따르면 원지엔은 화화와 스웨덴을 방문하기 전에 '중국과 스웨덴의 범죄인 인도조약'을 검색하는 등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원지엔은 자금세탁방지법 위반으로 기소됐으며 오는 5월 10일 영국 법정에서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다.

코인을 이용한 대담한 사기극
란티엔거루이의 다단계 사기/그래픽=조수아
도대체 화화는 어떤 다단계 사기극을 벌인 걸까? 란티엔거루이 전자과기유한회사는 2014년 3월 중국 텐진에서 설립된 회사로 다단계 마케팅을 통해 '무위험, 고수익' 투자상품을 판매했다. 특히 노년층을 위한 건강관리용 웨어러블 기기를 미끼로 내세워, 수많은 노인들이 다단계 사기의 함정에 빠졌다.

란티엔거루이가 내세운 투자상품은 최저 100%에서 최대 300%의 수익을 보장했다. 한 상품은 6만위안(약 1110만원)을 30개월 동안 투자하면 첫 6개월 동안 매일 100위안을 배당 받았으며 마지막 6개월은 매일 500위안을 받았다. 총 수익금은 원금의 3배가 넘는 19만위안(약 3510만원)이다.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상품이다. 기존 투자자가 소개한 고객이 상품에 투자하면 란티엔거루이는 투자자에게 소개비도 제공했다.

뿐만 아니다. 2017년부터 란티엔거루이는 투자고객에게 자신들이 만든 듀어터코인(Deal coin·DTC)도 준다고 광고했다. 듀어터코인은 비트코인을 그대로 모방한 암호화폐다. 란티엔거루이는 듀어터코인을 비트코인과 동일한 SHA256 암호 알고리즘을 기초로 만든 암호화폐라고 선전하면서 4년마다 반감기가 도래하며 최대 총량은 63억개라고 밝혔다.

'SHA256 암호 알고리즘'과 '4년마다 오는 반감기'는 비트코인을 그대로 베꼈다. 란티엔거루이는 듀어터차이나라는 암호화폐 거래소도 만들었다. 검거된 란티엔거루이 관계자에 따르면 듀어터코인은 중국 선전에 있는 회사에게 의뢰해서 만든 코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란티엔거루이의 채굴공장/사진=차이신

란티엔거루이는 중국 각 지역에 '듀어터 슈퍼컴퓨팅 센터'가 있으며 중국 5대 지역 본부의 7개 채굴공장에서 채굴 컴퓨터 1만8000대가 듀어터코인을 채굴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많은 투자자들은 채굴공장을 직접 참관한 후 의심을 지웠는데, 업체는 이 채굴공장에 폐기 처리된 컴퓨터를 놓아 눈속임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란티엔거루이는 유입되는 투자금이 정체되자 비트코인을 위한 보험사를 세계 최초로 설립했다고 발표하는 등 대담한 사기극을 이어갔다. 3년동안이나 지속된 란티엔거루이의 다단계 사기극은 2017년 여름 중국에서 암호화폐공개(ICO) 광풍이 불고 중국 당국이 ICO를 불법 금융활동으로 규정하자 막을 내렸다.

그해 9월 4일 중국 인민은행 등 7개 부처는 모든 ICO를 중지시켰으며 곧이어 중국내 암호화폐거래 및 채굴행위도 모조리 금지했다. 2017년 7월말 란티엔거루이는 재무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이유로 배당금 지급을 일시 중지한다는 공고를 발표했다. 이때 치엔즈민은 이민을 위해 새로운 신분증을 만들고 도망갈 준비를 끝냈다.

런던경찰청에 따르면 화화(치엔즈민)는 장야디라는 이름의 세인트키츠네비스(Saint Kitts and Nevis) 여권을 소지한 채 2017년 9월 런던에 도착했다. 이 나라는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치엔즈민은 중국에서 다단계 사기를 할 때도 다른 사람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공개된 사진이 한 장도 없을 정도로 치밀한 면모를 보였다.

중국 정부는 비트코인 6만1000개를 환수할 수 있을까?
치엔즈민이 얼마나 많은 돈을 중국에서 해외로 빼돌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2017년 초 비트코인이 약 1000달러였던 걸 고려하면 최소 5억위안(약 925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가격이 7만1000달러를 넘어서면서 치엔즈민이 매수한 비트코인 6만1000개의 가치는 약 310억위안(약 5조7400억원)으로 불었다.

중국 현지에서는 7년 동안 가격이 60배 넘게 오른 비트코인 6만1000개를 영국으로부터 회수해서 피해자에게 보상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환수 여부는 불확실하다.

현재 비트코인 6만1000개는 영국 경찰에 의해 압류된 상태이며 오는 9월 개최될 범죄소득 청문회에서 압류된 비트코인의 처리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영국 법률에 따르면 범죄자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 절반은 영국 내무부로 귀속되며 나머지 절반은 영국 경찰에게 귀속된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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