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엮인 케이블카, 쇠줄 묶인 복원약속 [하상윤의 멈칫]

하상윤 2024. 4. 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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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후 6년 방치된 가리왕산 
생태복원은 뒷전, 돈벌이 볼모로 전락
尹 관심 속 시설 존치에 무게 실려

"앞으로 지역주민이 원하는 곳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더 건설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강원도 민생토론회에서 케이블카 사업 확대 의지를 밝히면서 올 연말까지 한시 운영하는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영구 존치안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강원도 산림자원이 관광산업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면서 가리왕산 자연과 올림픽 유산을 더 많은 국민이 찾을 수 있도록 ‘산림형 정원’ 조성 추진을 약속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6년. 그간 더 강렬해진 기억도 있고, 뇌리에서 거의 사라진 기억도 있다. '가리왕산의 약속’은 아마도 후자에 속하는 듯하다. 일주일간 대회를 치른 뒤 즉시 복원하겠다던 약속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합리적 복원’, ‘산림형 정원’ 따위의 말장난과 마구 헤집어진 숲만 남았다. 지난 9일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약 4시간에 걸쳐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케이블카 정상부 정류장에서 상행선 방면 케이블카 객실을 9대당 한 번씩 인터벌 촬영했다. 빈 객실은 흑백 처리했다. 케이블카는 이동 시 수송케이블에 각 객실이 고정되기 때문에 탑승 인원과 관계없이 단 1명이 이용하더라도 전체 객실이 움직인다.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활강 경기가 열렸던 장소다. 현재 이곳에서 운영 중인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올림픽 당시 선수들이 탔던 스키 리프트를 개조한 것이다. 대회 직후 생태복원과 함께 시설물을 전부 철거하는 것이 본래 계획이었으나, 관광 자원화를 요구하는 정선군 주민단체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는 등 반발하면서 정부가 이에 대한 협상책으로 올 12월까지 정선군의 관광용 케이블카 운영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후 철거 여부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었는데,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설 존치(활용) 측에 더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가리왕산에서는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2022년 8월 이곳에서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국에서 운영 중인 40개가 넘는 케이블카 중 통영과 여수의 해상 케이블카를 제외한 대다수 시설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년간 연평균 이용객은 54만여 명을 기록하며 비교적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경남 사천 바다 케이블카도 개통 이듬해부터 줄곧 적자를 기록해 왔다. 사천 바다 케이블카는 지난 1월에 수익성 개선을 위해 이용료를 1만5,000원(일반 대인 기준)에서 1만8,000원으로 3,000원 인상한 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산을 보전하자'는 구호와는 달리 대회 당시 선수들이 사용했던 리프트와 같은 '진짜 유산'들은 훼손되거나 관광 시설로 개조되며 그 원형을 잃었다.
케이블카 아래 급경사지 위로 산사태 방지 방수포가 덮여 있다.

지난해 17만 명이 다녀간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현재 요금은 1만5,000원(일반 대인 기준)이다. 이용객 모두에게 5,000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돌려주고 있어, 실제 이용료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더 줄어든다. 정선군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정선군이 케이블카에 투자한 돈은 42억1,712만 원, 수익은 20억8,116만 원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약 22분간 가리왕산 하봉에 오르면 '반다비'와 '수호랑' 같은 올림픽 상징물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지난 2일과 8일 두 차례에 걸쳐 닷새 동안 본지가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취재하는 동안 간혹 단체객이 오는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상·하부 정류장은 비어 있었고, 이용객보다 운영요원 수가 더 많을 때도 잦았다. 평일임을 감안하더라도 ‘가리왕산케이블카가 사계절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고 밝힌 정선군의 신년 보도자료와 현실은 괴리가 있었다.

가리왕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은 해발 1,381m에 이르는 하봉에 위치한다. 정류장에 설치된 데크 주변으로 신갈 등의 나무들이 건조피해로 인해 고사하거나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적 타당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에 있다.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봉산(벌채를 금지한 산)으로 보호받으며 원시림을 유지해 왔다. 희귀식물이 대거 발견되는 등 생태적 중요도가 매우 높고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대거 포함하고 있어 애당초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정부가 특별법을 근거로 개발을 허가했다. 그렇게 축구장 66개 면적에 준하는 숲이 훼손됐다. 이때 중요하게 삼았던 전제 조건은 ‘대회 후 생태복원’이었다.

과거에 아름드리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리는 피켓이 산 중턱에 놓여 있다. 지금은 오래된 낙엽과 돌무덤만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법적 합의는 무시됐고, 산은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6년째 방치되고 있다. 시멘트로 막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계곡과 그 위에 다시 물막이 공사를 하는 굴착기 그리고 덤프트럭, 슬로프와 작업도 가장자리에서 건조 피해로 고사한 신갈과 물푸레나무, 벌거숭이로 변한 정상부(하봉)에 설치된 3층 건물과 엘리베이터. 20분짜리 관광용 케이블카를 타고 천천히 이러한 ‘말 바꿈의 결과’를 내려다보는 일은 ‘다크투어리즘’에 가깝다.

산중턱에 위치한 스키장 제설기가 이곳이 과거 슬로프 자리였음을 말해준다.

현장에 동행한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 소장은 “시기상 분명히 늦었더라도 당국과 지자체가 생태적 관점을 공유하고 복원을 위한 첫걸음을 떼는 게 중요하다”면서 “훼손된 지형을 그대로 다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꼭대기를 중심으로 식생과 토양환경 차원의 섬세한 접근이 있다면 건강한 숲으로 복원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엄 소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케이블카와 같은 단순 관광시설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라며 “산림복원센터를 만들어 그 과정을 시민들과 나누고 교육에 활용함으로써 다른 차원의 가치를 만드는 길도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가리왕산 하봉과 북평면 숙암리를 잇는 경사면에 맨땅이 휑하게 드러나 있다. 올림픽 알파인 경기장 기초공사 당시 슬로프와 작업도로를 만들면서 표면 토양을 모두 긁어내 불모지로 변했다. 고산지에서 5m 깊이의 토양이 자연 복원되는 데는 수백년 이상이 걸린다.
편집자주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정선=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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