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월드’ 김강우, 짖는 개일까?, 무는 개일까?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4. 4. 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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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지금 나한테는 당신이 더 중요해. 지옥 가서 벌 다 받을게. 그러니 이제 당신은 당신 인생 잘 살아!”

12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 13회에서 강수호(김강우 분)가 뱉은 비겁한 변명이다.

이날 방영분에서 강수호는 아들 건우(이준 분) 죽음의 원흉 김준(박혁권 분)에게 유일한 증거인 태블릿을 넘겨준 후, 추궁하는 은수현(김남주 분)에게 이 같이 말했다.

수현으로선 기도 안차는 변명이다. 친자매같은 한유리(임세미 분)와 강수호의 불륜 사실을 안 이후 수현은 제 속의 수호를 토해내고자 몸부림쳐왔다. 건우 생전 수호까지를 포함한 세 식구의 원더풀 월드는 꽉 쥔 유리조각 같은 기억이 되어, 수현의 온 몸을 쥐어 짜 핏물같은 눈물을 흘리게 했었다.

그리고 그 고통의 끝에서 수현은 수호에게 말했었다. “당신, 건우 아빠만 해!” 그런데 강수호는 수현이 당부한 유일한 역할 건우 아빠조차 포기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새삼스럽지 않다. 드라마 도입부부터 강수호는 어느 쪽인가 하면 ‘짖는 개’ 쪽이었다. 선율의 멱살을 거머쥐며 “넌 내 아들을 죽인 놈의 아들일 뿐이고, 내 아내가 안 했으면 그날 내가 했어. 알아?”라고 장담은 했지만 글쎄, ‘무는 개’ 은수현이 아녔다면 권지웅(오만석 분)이 과연 죽었을까? 강수호 손에? 회의적이다.

유리와의 패륜적 불륜도 마찬가지다. 교도소 면회 가서 수현으로부터 이혼하자는 말을 들었었다. 술 마실만한 날이었다. 위로가 필요한 날도 맞다. 근데 왜 하필 유리였을까?

뒤늦게 찾아온 유리에게 수호는 말했었다. “여기가 나한테 어떤 덴지 알아요? 여기서 수현이한테 고백했었어요. 평생 함께 하자고. 죽을 때까지 지켜주겠다고. 근데 난 하나뿐인 내 새끼도 지키지 못했고 내 아내도 지키지 못한 못난 놈예요. 헤어지쟤요. 날 왜 이렇게 모질게 몰아내는지 너무 잘 아니까 그래서 죽을 듯이 아파요.”

맥락상 유리는 모르는 술집. 결국 유리가 수호를 찾은 게 아니라 수호가 유리를 불러낸 정황이다. 자기 연민을 위로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대상이 유리였으며 유리는 수호의 자기 연민에 동화돼 제 방식으로 수호를 위로했다.

유리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 노출 됐을 때 이번엔 역시 ‘수현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제 깐의 당위로 윤혜금(차수연 분)을 끌어들인다. 이 행보에 복역기간 7년의 아내 수현이라면 한 때의 바람을 이해해 줄 것이란 계산은 없었을까? 그것이 유리임만 들키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계산은 과연 없었을까?

윤혜금을 이용한 김준의 실체 폭로 시도도 권선율(차은우 분)로 인해 무산됐다. 오히려 ABS 뉴스초대석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하며 타도 대상 김준의 인기만 올라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불륜 대상이 유리란 사실마저 들통났다. 수호로선 수현을 떠나 보낼 수 밖에 없다.

뒤늦게 수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모친 정명희(길해연 분) 여사가 “안되면 이혼 해. 너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거 난 못본다. 단 이혼 사유가 불륜여선 안돼!” 했을 때 수호는 아무런 답을, 반발을 못했었다.

그런 수호는 “강국장은 꼭 내게 올낍니더.” 장담했던 김준을 찾아갔다. “저도 의원님 편에 서보겠습니다. 받아 주시겠습니까?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마당에 제 미련 갖을만한 게 권력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집에 와선 회한에 잠겨 운다. “아빠가 미안해 건우야! 미안해 수현아!”

그런 주제지만 보도국 후배들과의 회식 자리에선 “진실과 보도 사이에서 흔들릴 일 많을 텐데 그때마다 우리 사명감 갖고 끝까지 싸워나가자. 자, 꺾이지 않는 양심을 위하여!”라 선창도 한다. 수호가 롤모델이란 술 취한 후배의 넋두리엔 “존경은 무슨.. 나 같은 놈, 이렇게 엉망인데..” 독백도 덧붙인다.

여기까지 보면 예의 ‘나약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지식인 앞에 특히 ‘나약한’이란 수식이 흔히 붙는 이유는 그들의 지성이 거짓을 발명하는 데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스런 진실보단 안락한 거짓을 선호한다. 행동의 후과가 두렵고 현실과의 타협이 수월할 경우 지성은 기민하게 이유를 만들어 내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의의 순간은 온다. 늘 온다. 단지 나약한 지식인들이 정의가 당도하기 전에 먼저 떠날 뿐이다.

그런 강수호이지만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뉴스초대석에 윤혜금을 불러 내 김준의 실체를 까발린다는 계획이 무산된 후 강수호와 한상과의 대화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볼 만 하다. “윤해금 믿을 수 있다며?” “김준이 막았을 거야.” “그럼 너라도 터뜨렸어야지.” “형 나한테 계획이 있어!”

결국 그 계획은 오고은(원미경 분)의 입원 소식에 공개가 불발됐지만 직후 한상이 강수호에게 밀가루를 투척하며 욕을 하는 장면이 김준에게 전달된다. 여기에 아들 건우 죽음의 실체가 담긴 태블릿 원본까지 김준에게 상납했다. 의심 많은 김준이지만 강수호에 대한 경계심을 충분히 흐트려 놓을 만하다.

앞서 권선율 역시 김준의 혐의를 의심했지만 엄마 김은민(강명주 분) 생전엔 김준의 감시를 우려해 하수인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건우의 태블릿을 골프채로 박살 낸 김준이 “강수호 덕에 와이프 살았네!”라며 조롱했을 때, 과연 강수호는 안도했을까? 아니면 이를 갈아 부쳤을까? 90분으로 편성된 ‘원더풀 월드’ 최종회가 마냥 궁금해진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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