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소유자 감정평가사 추천제도, 개선 필요한 이유[박효정의 똑똑한 감정평가]

2024. 4. 1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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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감정평가]



강제수용은 당해보면 아주 무서운 제도다. 팔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내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강제로 가져가버린다. 이에 대한 보상금 역시 개별 토지소유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감정평가로 결정되니 토지 소유주 입장에서는 두려움과 무력감, 심지어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이처럼 공익사업이 이뤄지려면 사유재산권에 대한 사용, 수익, 처분의 자유권이 제한되는 문제에서 조금이나마 토지를 수용당하는 피수용자의 의견과 이익이 충분히 반영된 보상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협의보상평가 단계에서 피수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감정평가사를 선정할 기회를 보장하는 ‘토지소유자 감정평가사 추천제도’다.

제도의 취지는 피수용자의 권익보장이다. 또 토지소유자가 추천한 감정평가사의 평가수수료도 사업시행자가 지불해 토지 소유주에게 좋은 제도다. 그러나 현실에서 토지소유자가 이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먼저 토지소유자가 자신이 원하는 감정평가사를 추천하기 위해서는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하며 기간 내 한 명의 감정평가사를 추천해야 한다.

요건은 보상 대상 토지면적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토지소유자와 보상 대상 토지의 토지소유자 총수의 과반수 동의를 받은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상계획열람공고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위 2가지의 요건을 갖춘 서류를 제출하여야 하는데, 만약 내 토지만 수용된다고 하면 문제가 없다. 나 혼자 추천하면 되니까 상관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익사업에 편입되는 토지소유자는 최소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른다.

이 토지소유자들은 서로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이다. 요즘처럼 개인정보에 민감한 시대에 피수용자들의 연락처는 고사하고 성명과 사는 집 주소도 공개되지 않는다.

적어도 어떤 토지가 보상 대상이라는 보상계획열람공고가 나야 전체 보상 대상 면적을 알 수 있고, 따라서 보상 대상 토지면적의 절반 이상이라는 요건을 갖추기 위한 전략을 짤 수 있다.

하지만 면적 요건도, 소유자 총수 요건도 30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 달이라는 기간 내에 서로 연락하여 한 명의 감정평가사를 추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주택이나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서 공익사업이 진행된다면 옆집 문이라도 두드리고 동네에 현수막이라도 걸어서 주민들이 서로서로 모이려는 노력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방의 도로 사업이나 공원 사업, 산업단지처럼 맨땅만 수용되는 경우 전국으로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고 있을 토지소유자들이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는 서로를 찾아 기간 내에 감정평가사 추천 요건을 갖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전에 필자가 공원보상지역에서 업무할 당시 토지주 대표자가 편입되는 토지 중에 ‘00종중’ 소유 토지를 발견하고, 해당 종중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종중 연락망을 이용해 공원부지 내 임야를 소유했던 먼 친척까지 연락처를 알아내 토지주 감정평가사 추천 요건을 갖출 수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토지주들 정보를 정리하고 정리해서 너덜너덜해진 수첩을 들고 3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심지어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토지주들에게까지 이 제도를 설명하고 설득했던 지주대표의 눈물 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감정평가사 추천을 할 수 없었을 것이 자명하다.

토지소유자의 감정평가사 추천제도의 취지는 피수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요건을 갖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 가혹하여 막상 권리행사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토지소유자가 2인 이상인 경우 다수 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업시행자의 감정평가사를 쉽게 한 명 선정할 수 있는 것과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피수용자의 권익보호라는 제도 취지에 맞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에서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박효정 로안감정평가사사무소·토지보상행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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