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보여준 큰 병원 쏠림…너도나도 ‘대학병원’ [취재후]

김옥천 2024. 4. 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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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부산은 지난 1월 4분 거리 대학병원이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심정지 환자를 받지 못해 숨진 '응급실 뺑뺑이' 사고를 보도했습니다. 이후 응급 환자 이송 체계와 현황을 집중 보도했는데요. 그중 응급의학계가 '응급실 뺑뺑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대형병원 쏠림 현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부산시 119 응급 이송 11만 건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응급 상황에 부닥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번호, 바로 119입니다. 지난해, 부산의 119구급대의 환자 이송 건수는 112,427건. 하루 평균 308건이 넘습니다. 119구급차는 대부분 '응급실'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92%가량이 부산 28개 응급의료기관으로 이송됐습니다.

그럼, 28개 응급의료기관으로 '균형 있게' 옮겨졌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산 대학병원 5곳(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고신대학교복음병원, 인제대 백병원, 해운대백병원)으로 40%의 환자가 옮겨졌습니다.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겁니다.

의료·소방 관계자들은 "환자는 '큰 병원'을 원하고, 중형 병원은 '인력'이 없고, 그래서 119구급대가 '웬만하면 큰 병원'으로 보낸다"고 말합니다.

■같은 응급실인데 이송 환자 수용 건수 '13배' 차이…"응급 상황 아니라도 대학병원 갔다"


부산소방재난본부의 응급실 이송 현황 자료를 분석해보니, 28개 응급의료기관 중 가장 많은 이송 환자를 받은 병원은 해운대백병원이었습니다. 9,222건으로, 지난해 1월 기준 14명의 응급실 전문의가 근무하고 있으니 의사 1명당 650여 건의 이송 환자를 받은 셈입니다. 부산보훈병원은 697건, 지난해 1월 기준 응급실 전문의는 3명입니다. 1명당 받은 이송 환자 건수는 230여 명 정도입니다. 절대적 숫자만 따지면 13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이번에는 응급한 정도에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해 소방청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구급차에 탄 환자는 응급, 준 응급, 잠재응급, 대상 외 등으로 나뉘는데요. '불완전 활력 징후' 등 빠른 치료가 필요한 중증 응급 환자는 60%가 5개 대학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중증 환자는 큰 병원으로'라는 원칙이 잘 지켜진 걸까요? 수 시간 내 처치가 필요한 준 응급 환자 2명 중 1명도(47.6%), 촌각을 다투지 않는 수준의 환자인 '잠재응급 환자' 3명 중 1명(32.6%)도 5개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비율이 줄어들긴 하지만, 경증·중증을 가리지 않고 '웬만하면' 대학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응급의료기관에서 당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는 경우가 있으며, 환자분들이 과거 진료 이력과 배후 진료 등의 이유로 상급병원으로 이송을 원하고 있습니다."

-김정환 부산소방재난본부 구조구급과 주임

소방 당국의 답변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였습니다. 응급의료기관에 '전문의'가 없는 경우가 있고, '환자'들이 원해서 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전국 119구급대 재이송,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의 가장 큰 사유는 '전문의 부재'(36.5%)였습니다.

■24시간 응급실 전문의 2명인데 '조건 충족'…응급의학계, "예전부터 제기된 심각한 문제"


"(응급실 전문의가 적으면) 당직 부담도 크고, 또 그 선생님들이 응급의학 전문의가 아닌 경우도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환자에게 충분한 응급의료를 적시에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

전문의 부재가 큰 이유라면, 응급실에는 의사 몇 명이 근무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했습니다. 부산시 보건위생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부산 28개 응급의료기관 중 5곳은 전문의 3명, 다른 5곳은 4명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응급실로 오는 환자를 바로 볼 수 있는 인력 자체가 적은 겁니다. 또 전문의 중 응급의학 전공자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응급의학' 전공 없는 '응급실'이 운영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운영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기관 종별 구분에 따르면, 동네 의원(1차)과 대학 병원(3차) 사이에 있는 종합 병원(2차)급 응급의료기관인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응급실 전담 의사 최소 기준이 '2명 이상'입니다. 심지어 연간 환자 만 명이 넘지 않으면 '1명'으로 운영해도 괜찮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방 응급의료 취약지는 '응급실 전담' 의사를 따로 뽑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기준을 강화하면 운영할 수 없는 응급의료기관이 생긴다"면서도 "현재 기준이 낮은 것은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절대적 전문의 수가 적은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응급 이송 환자를 많이 받기 어렵고, 환자는 '큰 병원'을 원하고, 119구급대는 병원과 환자의 입장에 따라 큰 병원으로 향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큰 병원은 과하게 환자를 받아 정작 중증 환자 진료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응급의학계 관계자는 "전문의 최소 기준 상향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기준 상향과 맞추어 '응급실 전담 의사'를 뽑을 수 있는 정부 지원이 꼭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무작정 기준만 늘리면 보건복지부의 설명처럼 '운영 불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이 생길 수 있고, 이는 결국 지역 필수 의료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대형병원 쏠림은 " 예전부터 제기된 심각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이에 경증 환자를 1, 2차 병원으로 우선 이송해 대형병원이 중증 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중형 병원도 규모에 따라 수가를 제공하는 제도를 고쳐 치료 정도가 수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이를 지원하기 위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예전부터 나온 말이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며 신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펼쳤습니다.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전공의 사직으로 '필수의료'는 일종의 실험대에 올랐습니다. 특히 지역 의료는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이미 곳곳에서 붕괴의 조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공의로 유지되던 위태로운 응급실, 제대로 된 논의를 거쳐 이번에야말로 '체질 개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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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천 기자 (hu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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