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韓 압축 성장 비결은 기업·정부의 공생관계"

신연수 2024. 4. 1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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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인을 만날 때 으레 쏟아내는 질문이 자조의 대상이 되곤 했다.

2022년 영국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1948년부터 현재까지 연대기 순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전 분야에서 개괄한다.

저자는 책을 쓰기 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영상을 수차례 돌려봤다고 한다.

서구 국가들이 100년, 200년 동안 이룩한 발전을 한국이 불과 20~30년 만에 완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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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에서 고래로
라몬 파체코 파르도 지음 / 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 416쪽|2만2000원
스페인 학자의 '코리아 안내서'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 교수
국제외교 무대 '고래'로 성장한
대한민국 발자취 70여년 조명
"30년 전 '시민 민족주의' 태동
전통·세계시민 의식 조화이뤄"
<새우에서 고래로> 저자 라몬 파체코 파르도가 한국 민족주의 상징으로 꼽은 ‘88 서울 올림픽’. 한경DB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지성 팍, 강남스타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인을 만날 때 으레 쏟아내는 질문이 자조의 대상이 되곤 했다. 자부심의 표현인 것과 동시에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비슷한 질문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수많은 K팝과 콘텐츠, 기업 등이 세계 주류 시장에서 대세가 됐다.

그래도 아직 우리 마음속에 남은 인정 욕구가 있다면 <새우에서 고래로>는 그것을 마저 채워주는 ‘한국 안내서’다. 스페인 출신으로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저자 라몬 파체코 파르도는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한국과 처음 연을 맺었다. 이후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한국 석좌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에 대한 저서를 여러 권 쓴 이른바 ‘한국통’이다.

2022년 영국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1948년부터 현재까지 연대기 순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전 분야에서 개괄한다.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약한 새우가 아니라 당당한 고래 위치에 올라선 한국의 변화를 외부자 시선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책을 쓰기 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영상을 수차례 돌려봤다고 한다. 한국 사회 변화와 발전의 핵심 원동력이 된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장면이라서다. 당시 개막식에선 과거 일제강점기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마라토너 손기정이 66세의 노장이 돼 성화를 들고 달리는 모습이 감동을 줬다. 단군 시대부터 일찍이 자리 잡은 한민족이란 개념은 각종 수난의 역사를 거치며 강화됐다. 때때로 민족이란 강력한 구심점은 독재 정권의 도구로 이용됐다.

1990년대 들어선 민족에서 한층 진화해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새로운 정체성이 등장했다. 바로 시민이다. 전통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그대로 가지되 세계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보편적인 평등과 인권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태동했다. 저자는 이를 일컬어 ‘시민 민족주의’라고 정의했다.

저자가 국내 경제 발전의 역사를 분석하는 시각도 상당히 정확하다. 서구 국가들이 100년, 200년 동안 이룩한 발전을 한국이 불과 20~30년 만에 완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있다. 저자는 개발국가 시절 급성장한 대기업뿐 아니라 2000년대 들어 정부 지원을 통해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확장한 정보기술(IT) 및 바이오 기업 등의 사례에 주목한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갖춘 사업가와 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정부 간 공생 관계가 한국 경제의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책에선 한국 사회 여성과 성소수자 문제도 꽤 비중 있게 다룬다. 국내 최초로 이화여대에 여성학 과정을 개설한 이효재 교수부터 호주제 폐지, <82년생 김지영>의 유행까지 국내 여성 인권사의 주요 변곡점을 충실히 담았다. 여기에 초기 성소수자 단체 활동과 방송인 홍석천의 커밍아웃 등 퀴어 운동도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저자는 변화에 열린 개방성이 곧 한국인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70여 년 동안 한국 사회가 겪은 격동의 역사를 모든 분야에서 충실히 다 담으려다 보니 책의 서술 방식이 다소 나열적인 건 불가피하다. 그 과정을 직접 겪어 온 내부자의 입장에선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찾기 어렵다. 원래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 쓰인 책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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