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동결에도 ‘하반기 인하’ 내비친 한은… 시장선 “비둘기에 무게 실렸다”

최온정 기자 2024. 4. 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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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기준금리 3.5%로 10연속 만장일치 동결
”불안한 물가·유가 고려… 美 금리 인하 지연도 주목”
연내 인하 불씨 살려… 이창용 “美보다 먼저 내릴 수도”
전문가 “美 인하 지연돼도 3분기엔 韓 금리 내릴 것”

한국은행이 12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물가안정 목표인 2%에 도달하지 않은 데다, 이스라엘-이란 갈등 고조로 국제유가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당초 6월로 예상되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가 늦춰질 가능성이 커진 점도 영향을 줬다.

그러나 이날 금통위 직후 시장에서는 “비둘기에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은이 그간 금통위 의결문에 꾸준히 등장했던 ‘충분히 장기간 긴축’이라는 문구에서 ‘장기간’을 빼면서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살려뒀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미국보다 금리를 먼저 인하할 수도, 뒤에 내릴 수도 있다”고 언급한 점도 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 기준금리 10회 연속 동결… “고물가·고유가 등 불안 여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12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했다. 지난해 2·4·5·7·8·10·11월과 올해 1·2월에 이어 이번까지 10번 연속 금리를 묶어둔 것이다.

이번 금리 동결은 두 달 연속 3%대를 유지하고 있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10월 3.8%를 기록했던 CPI 상승률은 올해 1월 2.8%로 낮아지면서 둔화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2월부터 다시 3%를 기록하면서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를 웃도는 모습이다.

그래픽=손민균

국제유가와 농산물가격 상승세가 물가 상승률 둔화를 가로막는 주범이다. 유가는 최근 이스라엘-이란의 군사 충돌 가능성이 커지면서 배럴당 9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달 1~12일 평균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로, 지난해 연간 유가(82달러)보다도 높다. 농산물 가격은 사과·배 등 과일을 중심으로 전년 동월 대비 80% 넘게 급등하면서 서민 생활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금통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6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한 점도 주목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3월 미국 CPI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5% 오르면서 시장 예상치(3.4%)를 상회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후퇴했고, 미국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통위는 의결문을 통해 “물가상승률이 둔화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높은 수준이고 주요국 통화정책과 환율 변동성, 지정학적 리스크(위험)의 전개 양상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여전히 크다”면서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대내외 정책 여건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 금리인하 불씨 살린 한은… “하반기 인하 가능성 배제 못 해”

당장은 긴축 기조를 이어갔지만, 금통위는 이날 금리 인하가 멀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메시지도 던졌다. 먼저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유지하겠다’는 문구에서 ‘장기간’을 뺐다. 통상 ‘장기간’은 6개월을 의미한다. 이 문구가 빠졌다는 것은 오는 7~8월엔 금리가 내릴 수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은 총재의 발언도 금리 인하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를 먼저 내리는 상황을 고려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미국이 작년부터 피벗(통화정책 전환·pivot) 신호를 줘서 통화정책 탈(脫)동조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과거 미국의 통화정책을 굉장히 많이 봤다면, 지금은 소비자물가를 보면서 미국보다 (금리 인하를)먼저하거나 후에 할 것”이라고 했다.

금통위원들의 3개월 뒤 금리 전망을 취합한 ‘포워드 가이던스’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금리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지만, 1명은 인하 가능성을 제기했다. 인하를 주장한 한명은 기조적인 물가 둔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내수 부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상황만 보면 금리 인하에 나설 여건은 갖춰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이 회복되고 있지만, 내수를 중심으로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연초 일시적으로 반등했던 건설투자도 신규 수주 및 착공 위축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감소 흐름을 재개할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한은은 경제상황 평가 보고서에서 “향후 성장경로는 인공지능(AI) 확산 등 정보통신(IT) 경기 개선 속도,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영향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5월 발표되는 수정 경제전망을 보고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한 달 뒤 발표하는 5월 수정 경제 전망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말 기준 2.3%에 부합할지가 중요하다”면서 “당초 예상대로 물가가 2.3%로 가면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 의견이 금통위 전원의 일치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동시에 그는 최근 급등한 유가가 내려가지 않으면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경제전망은)평균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중후반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전제였는데, 유가가 90~100달러에 오래 머물러있으면 경제전망을 바꿔야 한다”면서 “유가는 이스라엘-이란 갈등 등 불확실성이 커서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 시장 “비둘기에 무게 실렸다”… 일각선 “미국보다 먼저 인하” 전망도

시장에서는 이번 금통위가 예상보다 비둘기파(완화 선호)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6월을 넘어 3분기로 늦춰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 (이 총재가)먼저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은 굉장한 리스크를 안고 얘기한 것”이라면서 “매파(긴축 선호)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비둘기에 무게가 실려 있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4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한국은행 제공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오늘 금통위는 연준이 피벗하지 않고 신호만 줬는데도 주요국의 탈동조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강하게 얘기했다”면서 “연준이 금리인하를 7월에 하고, 한은은 8월에 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연준의 인하 시점이 9월로 밀린다고 해도 한은은 8월에 금리를 내리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도 “2019년에도 우리나라가 연준보다 약 20일 먼저 금리를 인하했던 사례가 있다”면서 “연준의 금리인하가 지연돼 9월로 늦어진다고 해도 한은은 8월에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반응해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1.3원 오른 1375.40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370원을 돌파한 것은 지난 2022년 11월 10일(1378.5원)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코스피도 전 거래일 대비 25.14p(0.93%) 하락한 2681.8에 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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