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이 부당매출의 4%?" 빌트인 가구 담합과 솜방망이

최아름 기자 2024. 4. 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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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트인 가구 입찰 담합 논란
공정위, 가구업체 31곳 담합 적발
관련 부당 매출만 2조원에 육박 
입찰 전 낙찰자 미리 결정해 
주사위 돌리기, 제비 뽑기 등
입찰 담합 분양가에 영향 미쳐
공정위 “담합 관행 근절” 기대 
“솜방망이로는 불가능” 지적도 
공정위가 '빌트인 가구' 입찰에서 담합을 꾀한 가구업체 31곳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사진=뉴시스] 

신축 아파트에 설치하는 '빌트인 가구'도 담합의 결과물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31개 가구 제조‧판매업체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738건의 가구 입찰에서 담합한 사실을 확인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93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31개 업체 중엔 한샘, 현대리바트, 에넥스 등 가구시장을 이끄는 곳들도 있었다. 세 업체는 한샘 211억500만원, 현대리바트 191억2200만원, 에넥스 173억9600만원 등 총 576억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이들은 각각 22개 건설사에서 발주한 입찰 과정에서 담합했다.

아울러 넵스는 21개사, 넥시스는 16개사가 발주한 담합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각각 97억8500만원과 49억5400만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공정위는 5개사 외에도 한샘넥서스 41억6000만원, 우아미 32억900만원 등 26개사에 추가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신축 아파트의 싱크대‧붙박이장‧신발장 등 '빌트인 가구'를 설치하기 위해 가구업체의 입찰 참가 실적, 입찰 가격, 신용평가 결과를 고려해 입찰자를 선정해 왔다. 일반적으로 건설사는 최저가 입찰업체와 계약하지만 가구업체들은 입찰 전 모임을 갖거나 유선 연락을 통해 낙찰 예정자를 미리 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낙찰 예정자나 낙찰 순번은 '주사위 굴리기' '제비뽑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결정했다. 낙찰 예정 회사는 들러리 회사에 견적서를 전달했고 들러리 회사들은 견적서 상 금액을 일부 높여 입찰했다. 혹은 입찰참가자격을 유지하고 싶은 가구업체가 낙찰 가능성이 높은 업체에 거꾸로 견적서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담합으로 31개 가구업체가 거둬들인 매출은 총 1조9457억원에 이른다. 공정위는 가구업체의 이같은 담합이 아파트 분양가가 오르는 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가구업체들이 담합을 통해 얻은 부당 이익은 84㎡ 아파트 기준 25만원 상당이다. 1000세대 아파트라고 가정할 경우 한 단지당 2억5000만원에 이른다. 3.3㎡당 아파트 분양가는 2013년 12월 말 805만9000원에서 2023년 12월 1736만원으로 10년간 115.4% 올랐다.

[사진=뉴시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중대형 건설사가 발주한 현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서 "향후 소형 건설사가 발주한 70개 입찰 과정에서도 담합이 있었는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조치가 가구업계의 담합 관행을 근절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정도 처벌로 가구업계의 '담합 관행'을 뿌리뽑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31개 가구업체에 부과한 과징금은 931억원으로 부당행위로 거둔 매출의 4.8% 수준에 불과하다. 과징금을 내고도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가구업계의 담합을 막기 어렵다.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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