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안동까지’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직접 걷는다

노인호 기자 2024. 4. 1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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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간 대장정…경복궁에서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지방 살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던 퇴계 선생의 뜻 기릴 것”
사진 / 12일 오후 서울 경복궁 사정전 일원에서 열린 제5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 개막식이 열렸다. 재현 행사는 약 270km를 걸어 퇴계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도산서원에서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2024.4.12. / 고운호 기자

서울을 떠나 지방발전을 위해 여생을 보낸 퇴계 이황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경북도는 이를 위해 서울에서 안동까지 270㎞에 이르는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을 함께 걸으면서 지방소멸 문제 해결책 등을 찾아보기 위해 5년 전부터 이 행사를 열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지금 우리사회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저출생으로 국가 전체적으로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퇴계선생의 귀향길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퇴계 선생, 균형발전 이뤄낸 지방시대 선각자

조선 대유학자이자 문신(文臣) 퇴계 이황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재현하는 행사가 12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진행된다.

경상북도와 안동시는 이날 오후 서울 경복궁 사정전(思政殿) 앞에서 ‘제5회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개회식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김형동(경북 안동·예천) 국민의힘 의원, 권기창 안동시장,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외 3개국(캄보디아·페루·교황청) 대사 등 귀빈들이 참석했다. 2주간 서울과 안동까지 270㎞의 대장정을 떠날 78명의 재현단도 도포와 갓을 쓴 채 행사장을 찾았다.

12일 오후 서울 경복궁 사정전 일원에서 열린 제5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 개막식이 열렸다. 재현 행사는 약 270km를 걸어 퇴계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도산서원에서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고운호 기자

퇴계 선생은 음력 1569년(선조 2년) 3월 4일 69세의 나이에 이조판서로 임명되자 관직을 사직했다. 당시 수도 한양에 국가의 자원과 인재가 쏠리자,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 지방의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선조는 만류했지만, 퇴계 선생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왕으로부터 귀향 허락을 받은 퇴계 선생은 그날로부터 2주간 270㎞를 걸어 안동 도산서원으로 갔다.

최고 기온 22도의 후덥지근한 날씨였지만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5살 아들와 함께 경복궁을 찾은 김정석(34)씨는 “경복궁을 찾았다가 우연히 행사장에 들렀다”며 “같이 온 아들에게 1000원 권 지폐에 있는 퇴계 선생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 뜻깊다”고 했다.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들도 도포와 갓을 쓴 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미국에서 온 헬렌 젠킨스(48)씨는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를 후손들이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 흥미롭다”고 했다.

12일 오후 서울 경복궁 사정전 일원에서 열린 제5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 개막식이 열렸다. 재현 행사는 약 270km를 걸어 퇴계의 가르침이 남아있는 도산서원에서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고운호 기자

행사가 끝난 후 재현단은 경복궁을 떠나 퇴계 선생이 한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다는 동호대교 인근 두뭇개 나루터로 향했다. 이들은 13일 퇴계 선생이 한양을 떠나기 전 머무른 봉은사를 찾는다. 이후 경기 남양주, 양평, 강원 원주, 충북 충주, 제천, 경북 영주를 거쳐 오는 25일 안동 도산서원에 도착한다.

재현단은 현재 도산서원에서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과 일반인으로 구성돼있다. 최연소가 초등학교 6학년, 최고령은 올해 79세인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다. 재현단 중 한 명인 김승환(25)씨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2주간의 대장정을 잘 마무리하겠다”며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모두가 잘 사는 지방시대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보였다.

퇴계정신으로 지역발전 선순환 모델 만들어야

경북도는 현재 소멸위기에 놓여 있다. 올해 2월 경북도 인구 수는 254만 8440여 명으로, 대구와 분리된 1981년 인구수 319만 명에서 계속 줄고 있다. 이런 탓에 산업연구원이 국내 인구의 지역 간 이동 특성을 고려해 개발한 ‘K-지방소멸지수’를 토대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인구 변화를 조사한 결과, 경북 내 소멸위기 지역은 9곳으로, 전남(13곳)·강원(10곳) 다음으로 많았다.

또 2019년 1.09명이었던 경북지역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6명으로 떨어졌다. 반면 전국 시·군·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40%가 넘은 곳은 15곳이고, 그 중 6곳이 경북에 있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노령 인구의 자연감소로 소멸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중앙 관직을 버리고 지역으로 내려와 후학 양성을 통해 지역 발전의 씨앗을 뿌린 퇴계 선생의 정신으로 새로운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 이같은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퇴계 선생이 고향 안동으로 내려 간 이유는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다운 사람’을 키워내야 하다는 생각을 실현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사립 교육기관인 서원 설립운동을 시작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서예 류성룡, 학봉 김성일, 약포 정탁 등이 퇴계의 제자들이다. 지금으로 보면 낙후된 인구소멸 지역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교육, 그 지역만의 문화 운동을 시작한 셈이다.

도산서원 김병일 원장은 “퇴계 선생 같은 인물이 조용한 지역으로 오면 그곳으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결국 퇴계 선생을 따라 지역에 인재가 모이고, 그 지역에 문화 창달이 이뤄졌다”면서 “이를 현재에 도입하면 각 지역에서 인재가 모이게 만들면 성공적인 지역발전 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하나의 성공모델이 나오면 전국으로 확산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퇴계 선생은 한양으로 쏠리던 국가 자원과 인재를 서원 교육 체계화를 통해 교육 균형발전을 이뤄낸 지방시대의 선각자”라며 “퇴계 선생이 행하신 업적처럼 중앙과 지방이 고루 잘 사는 시대를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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