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총선 기획] 언론인 정치권행, '방법이 없다'는 말부터 지우자

노지민, 김예리, 윤유경, 장슬기 기자 2024. 4. 12. 13: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누가 '폴리널리스트'인가 (05)] 언론계가 주도적으로 '폴리널리스트' 제한 기준 만들어야...강제적 규제 주장도

[미디어오늘 노지민, 김예리, 윤유경, 장슬기 기자]

▲22대 국회의원 배지 ⓒ연합뉴스

4·10 총선으로 다시금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국회로 진출한다. 퇴사하기도 전에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방송사나 신문사 혹은 인터넷 매체에서 보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당 점퍼를 입고, 이미 언론사에서 쌓은 자산을 활용해 권력 중심부를 거쳤던 인사들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나선 선거였다. '폴리널리스트'라는 조어가 상징하듯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에 대한 우려가 깊은 한국 사회이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강도를 논하기 전에 양적으로도 미약하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언론인의 정계 진출 비판을 두고 일선 현장에선 기준이 모호하거나 막을 방도가 없다는 '현실론적' 반응이 나온다. 앞서 본지와 인터뷰한 현업 언론인들 사이에선 '생계형 이직' 여부, 기존 언론사에서의 연차 및 직급 수준, 공백 기간 등에 따라 차등적 비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의견만큼이나 제각각인 언론사별 사규를 넘어 언론계의 합의된 기준을 만들 필요성도 제기된다.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을 지켜보거나 관련 연구를 한 전문가들은 언론계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치활동 금지' 강령, 6개월에서 3년…'SNS 자제' 조항도

현행법상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에 아무런 제재가 없는 건 아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신문법·방송법 등이 규정하는 언론사의 발행·경영자나 구성원은 선거일을 기준으로 지역구에 출마하려면 90일 전, 비례대표로 출마하려면 30일 전에 사퇴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 가입 등의 정치 활동에는 제한이 없고, 출마를 공식화하기 전의 활동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일부 언론사들은 정치활동 제한을 위한 내부 규정을 만들어왔다. KBS·SBS·연합뉴스TV 등 윤리강령은 TV·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취재·제작 담당자 등이 해당 직무 기간 이후 6개월 이내에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조선일보의 경우 '정치 및 사회 관련 취재 기자와 부서장'이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 정치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TV조선은 시사·보도 프로그램 진행자 직무가 끝난 뒤 3년간 출마를 금지한다.

YTN 윤리강령은 좀 더 포괄적이다. YTN 구성원은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적 성격이 짙은 게시글에 대한 동의 표시를 자제해야 하고, 근무 기간 이후 6개월 이내에 정치활동을 해선 안 된다. 본인 외에도 배우자나 가족이 지속적으로 정당·정치 활동을 하면 이를 부서장에게 알려야 한다. JTBC의 경우 시사프로그램이나 정치 관련 취재·제작 담당 이후 6개월 이내 정치활동 금지에 더해 정당·정치단체 가입과 활동도 금한다.

▲조선일보 윤리강령
▲YTN 윤리강령

이런 내부 강령의 한계는 실제 사례로 증명돼왔다. '3년간 출마 금지' 조항을 둔 TV조선의 신동욱, 박정훈 앵커 등이 지난해 12월까지 뉴스를 진행하다 올해 1월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한 것이 단적인 예다. 2021년 KBS 기자에서 대선 캠프로 직행한 뒤 용산 대통령실로 간 김기흥 전 부대변인은 퇴사 전 1년간 경인취재센터에서 일했기에 윤리강령 위반에 해당하지 않았다.

YTN 안귀령 앵커, JTBC 이정헌 앵커 등도 각 방송사에서 퇴사한 뒤 곧바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대위에서 활동하다 이번 총선에 나섰다.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는 지난달 국민의미래 유력 후보로 거론된 가운데 사표를 냈고, 며칠 뒤 실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순번에 배치됐다.

낙선 후의 귀환도 문제다. MBN 출신으로 대통령실 행정관을 거쳐 총선에 도전한 이동석 전 행정관, 지난해 7월 출마를 위해 퇴사한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 등은 경선에서 떨어진 뒤 평론가로서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이에 MBN은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관련 가이드라인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달 공방위에서 실무자 측은 선거 전 6개월 전 퇴사, MBN 출신 정치인의 출연 횟수 등 제한 등을 제안했다.

언론계 '합의된 기준' 필요…강제력 있는 협의체 제안도

이처럼 개별 언론사의 윤리강령이 무용한 현실에서 언론계 전체가 합의된 기준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언론인 퇴사 후 6개월까지 '정치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심 교수는 “TV조선의 경우 '앵커 활동 후 3년간 출마 금지' 조항이 있는데 지킬 생각 없이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고 예를 들면서 “현실적인 타협책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나아가 언론사 안에서의 근무 기간, 취재 영역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한을 두기보다는 통일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심 교수는 “언론의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가는 것에 대해선 일률적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행정관이나 하위직으로 가는 것도 직역 전체에 주는 영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을 '취재원 유착형 재취업'이라 규정했던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규범을 정립하는 과정에서의 자정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언론계와 학계의 무관심이 “당당하게 프로야구 구단 옮기듯 출입처로 옮겨가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이해관계 상충이라는 고전적인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사례별 질문부터 시작해 적용 대상과 유예 기간, 위반 사례에 대한 제약 등을 논의해야 한다. 쟁점은 뻔하지만 그 과정이 윤리 문제를 부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율적 규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강제력 있는 제도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정치부장이나 논설위원 등 자격 기준을 두고 냉각기를 2년 이상 두는 강제규정을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며 “김영란법 같은 제도를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단 과도기 차원에서 준협의체 같은 걸 두면 낫지 않을까. 그것도 안 되면 더 강도가 높은 방안을 찾아야 될 것”이라며 “협의체 안에서 권고 사항을 만들고 (공천 등) 심사할 때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이중 삼중을 만들어 놓으면 효과를 보지 않을까”라고 했다.

▲OBS 출신 이훈기, YTN 출신 노종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가 지난 국민의힘 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인재 영입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제재 없는 사표수리 금지, 언론사 스스로 공표·기록해야

그에 앞서 있는 규정부터 명확히 적용할 필요성도 있다. 그간 언론사들은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구성원들의 사표를 제재 없이 수리하거나, 심지어 퇴사 일자를 '소급' 적용해주기도 했다. KBS만 놓고 봐도 2014년 민경욱 전 앵커에 이어 지난해 12월 이충형 전 인재개발원장의 사직을 사표 제출 전 날짜로 처리해줬다. 공영방송이 현직 신분으로 청와대로 가고, 예비후보로 등록하는 이들을 오히려 도왔다. 이런 경우 사직서를 반려하고 징계를 하는 원칙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사 스스로 자사 구성원의 정치권 직행 사례를 알리고 기록할 필요성도 있다. 관련해 2019년 한겨레가 여연호 선임기자의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임명에 입장을 밝히고, 언론인의 직업윤리 문제를 다룬 기사를 함께 보도한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중앙일보도 지난 2020년 강민석 전 부국장의 청와대 대변인행에 대해 '중앙일보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오히려 최근 들어선 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한 명이라도 당선되면 자사에 유리하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얻는 정치적 실익보다 잃는 신뢰가 더 크다. 언론사가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하는 것, 그 선택이 저널리스트로서는 잘못된 윤리 위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실적으로 금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꾸 면죄부를 주면 그런 것들이 쌓여서 (직행 등을) 당연시하게 된다. 그런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향후 언론계의 움직임이 있을지도 주목된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공직선거법상 3개월 전 퇴사 규정은 사실상 선거운동을 할 최소 시간을 주는 것”이라며 “6개월 정도의 규제도 실효성이 없고 늘린다면 최소 1년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정도의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사의 윤리강령에 맡길 게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현업 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 선언을 해보는 등의 부분은 충분히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선거 이후라도 논의를 하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2일 언론인 출신 국민의힘 의원들과 국민의힘 소속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과방위 회의실 앞에서 전체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방송법 개정안 반대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언론의 적은 전직 언론인”이 된 현실

이번 총선을 통해 5월부터는 또 새로운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들을 향한 당부로 임영호 교수는 “한때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언론에 몸담았던 정치인들이 오히려 언론의 자유나 기본원칙에 대해 더 극악무도한 사람이 많았다”며 “언론의 기본 가치는 존중하는 방향으로 활동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김성해 교수는 “밥값을 하라”고 했다. 김 교수는 “언론의 특권을 이용해 정치 권력을 얻었다면 그 빚을 갚아야 한다”며 “많은 걸 욕심내기보다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예를 들어 KBS 이사회 확대 등 문제에 발 벗고 나서서 의미 있는 성과물을 만들어내면 어떨까”라고 했다.

심석태 교수는 “한국 언론의 적은 전직 언론인”이며 “언론에 폐를 그만 끼치면 좋겠다”고 했다. 심 교수는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반대 쪽은 '가짜뉴스 전쟁'하고 포털 때려잡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론 정책에 정치적 영향력을 덧붙이는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미디어, 언론 정책 분야가 정쟁화되어있고, 언론인 출신이 오히려 그런 것들을 굉장히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 오래됐다”면서 “소통이 필요한 부분은 거리 유지를 명분으로 하지 않고,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너무 가까이 하는 역전된 현상”이 벌어지지 않기를 당부했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