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이상한 나라의 인터넷 문화[살며 생각하며]

2024. 4. 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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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장, 영화평론가, 前 숙명여대 교수
영화 속의 댓글부대 멤버는 3명
수많은 아이디 구입해 여론조작
비합리적·비이성적 인터넷 문화
권선징악 아닌 열린 결말로 마감
수수께끼 같은 세상 드러내며
반성적 인식·비판적 사고 요구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인터넷에 게시된 악플 때문에 극단적 시도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터넷보급률 세계 1위인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악플이 선플의 4배가 된다는 연구까지 나와 있는 형편이다. 뉴미디어 시대에 맞춰 엄청난 뉴스가 생산·재생산되고 확산돼 가짜 뉴스, 댓글 조작 등이 사회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건의 실체를 잘못 파악한 ‘잘못된 정보’와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까지 가릴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이 시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기자 출신의 작가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는 실제 댓글 조작 사건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픽션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다. 작가는 ‘읽는 독자 전체를 조금씩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면서 이 소설을 읽고 건강한 회의주의가 없는 위험에 이르게 된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성찰이 생기게 될 것을 강조하였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안국진 감독의 영화 ‘댓글부대’의 영문 제목은 ‘트롤 팩토리(Troll Factory)’다. ‘트롤’은 원래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적 의미로는, ‘인터넷 문화에서 고의적으로 논쟁이 되거나, 선동적이거나, 엉뚱하거나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 또는 공격적이거나 불쾌한 내용을 공용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의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하고 모임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영문 제목은 이런 트롤들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뜻인 셈이다.

영화는 원작보다 임상진 기자(손석구)에게 많은 중심을 두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 소개와는 달리 외국영화 사이트에서는 ‘댓글부대’ 멤버들이 먼저 소개되고 이후에 임 기자가 리스트업되어 있다. 그만큼 ‘댓글부대’의 행동을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다. 영화 스토리는 도입부의 화자인 임 기자가 고발한 대기업의 횡포에 관한 기사가 오보로 몰려 정직당한 후 복직을 노리며 ‘댓글부대’의 실체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실제 주인공은 임 기자를 만나 ‘댓글부대’ 팀알렙의 실체를 제보하는 찻탓캇(김동휘)과 그 일당이다. 찻탓캇은 “악플도 다 가짜예요”라고 말하면서 영화 속 대부분의 화자로 활약한다. 멤버 찡뻤킹(김성철)은 “최대한 어그로(인터넷 게시판에서의 자극적인 내용이나 악의적인 행위) 끌어”라면서 돈을 벌기 위해 빠른 두뇌 회전으로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팹택(홍경)은 온라인 여론 조작의 위력을 체감하고, 점점 더 과감하게 빠져든다. 영화 속 댓글부대, 즉 댓글 공장의 멤버는 고작 세 명이며, 이들이 돈으로 수많은 아이디를 사서 어떻게 여론을 조작하는지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픽션임을 강조하지만,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알레고리다. 영화 ‘댓글부대’는 이런 현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환기한다.

독일의 미학자 아도르노는, 예술 작품은 이 세계를 인간을 불의와 연관 맺게 하며 고통에 빠뜨리는 수수께끼와 같은 사회라고 보고 이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이 수수께끼적인 형상을 통해 결정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이 속 시원한 권선징악이 아닌 열린 결말로 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국진 감독은 생계 밀착형 코믹 잔혹극을 표방하는 블랙코미디인 이정현 주연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장편 데뷔한 후 9년 만에 ‘댓글부대’ 원작 소설을 재구성하여 공개한 것이다. 데뷔작에서도 사회 부조리가 강조되는데, ‘댓글부대’ 역시 우리 사회의 인터넷 문화가 얼마나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인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은폐된 모습들을 하나하나 드러내면서 우리의 반성적 시각을 요구한다.

‘댓글부대’의 결말에서 만일, 댓글 조작을 물밑에서 작업한 대기업 만전이 인터넷 만천하에 고발되고 이 사건이 인터넷 내에서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확산되어 시민들이 이에 대대적이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만전 기업 대표와 이사들이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임 기자는 복직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면 관객들이 속 시원해졌을까? 하지만 감독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세계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관객들의 반성적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갔다. 이 때문에 대중성을 손해 볼 것도 예상했겠지만, 우리나라 관객의 수준을 더 높이 상정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의 결말에서 2년 남짓한 기간에 많은 사람을 사망케 하고 고통을 준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사람들이 기뻐하는 상황에서도 페스트가 진정으로 사라지지 않았음을 천명하였다. 언젠가 또 다른 페스트가 창궐하게 될 것을 예감한 것이다. 그 페스트가 반드시 바이러스만은 아닐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세계의 알레고리로서의 페스트를 말한 것일 터이다. 우리도 코로나19가 사라졌다고 기뻐하지만, 실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다.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재난이나 문제를 경험함으로써 시민들의 반성적 인식, 비판적 사고가 확산되느냐 안 되느냐는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확증편향 되어 가는 이상한 인터넷 문화에 대한 반성도 그와 다름없을 것이다.

황영미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장, 영화평론가, 前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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