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바허바 낙동정맥 종주] 낙동정맥 1박2일 28리터 배낭으로 충분했다

윤성중 2024. 4. 1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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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구봉산을 지나 느릅재를 향해 가는 중. 3월 초였는데도 산에 눈이 많았다.

걷기는 공부다. 특히 산에 올라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지도를 확인하고, 다시 하산해 지역 사람과 만나는 건 지리학 심화학습에 해당된다. 자주 접하기 힘든 낙동정맥 능선을 타면서 주변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익히고 싶었다. '허바허바 낙동정맥 종주대'는 앞으로 3회 진행된다.

낙동정맥 구봉산을 지나 느릅재를 향해 가는 중. 3월 초였는데도 산에 눈이 많았다.

왜 낙동정맥을 종주하고 싶었을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낙동정맥을 사람이라고 가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은 낙동정맥의 묘한 매력을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하리라. 내가 그(낙동정맥)를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이다. 1990년대 후반 여러 등산잡지에서 그 이름만 숱하게 봐오다가 몇 해 흘러 강원도 태백 인근에 있는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둘레길을 걸었다). 그때는 숲에서 막 파란 잎이 나오던 초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주변 분위기가 썰렁했다. 공업소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석탄 때문인지 시멘트 때문인지 주변이 온통 회색이었다. 사람도 얼마 없었다. 기운 빠지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와 별 일 없이 서울로 왔다. 이때의 기억 때문에 나는 그를 음침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얼굴에 그늘이 진 사람, 그 얼굴이 밝게 핀 날은 두 달에 1회 정도뿐인, 그 외 1년 360일 정도는 바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 친구가 얼마 없고 소심한 사람 등. 컴컴한 인상의 그에게서 그후 별 다른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그러길 바라는 것 같았다. 자신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달까?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조용함에 끌렸다. 공전하는 행성처럼 그의 커다란 덩치(태백에서 부산까지 약 370km 능선) 주변을 오랫동안 맴돌았다. 나는 생각했다. 그가 나를 이토록 끌어당기는 이유는 뭘까? 그는 부드러운 사람일까? 험한 사람일까? 그는 나에게 이로운 존재일까? 해로운 존재일까? 그를 향한 온갖 궁금증이 무럭무럭 자랐는데, 마무리는 항상 그를 알아서 뭘 할까?라는 물음으로 끝이 났다. 그를 직접 만나야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느릅재에 도착해서 텐트를 쳤다. 산신당 건물 옆에 널찍한 터가 있다.

낙동정맥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시기는 1990년대 즈음이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쓴 지리서 <산경표>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한반도의 산줄기 대부분에 세세한 이름이 붙었다. 백두대간을 비롯해 강줄기를 기준으로 나눈 9정맥(한북정맥, 낙동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낙남정맥)이 그것이다. 그 이전 낙동정맥은 '태백산맥'으로 불렸다.

백두대간 능선 상에 있는 매봉산에 올랐다. 바람의 언덕에서 30분쯤 올라가면 나온다. 낙동정맥 분기점 표지석은 여기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데, 우리가 간 날은 눈 때문에 길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분기점 표지석을 지나쳐 이동했다

태백산맥은 부산에서 시작해 백두산까지 이어진다. 그렇다면 태백산맥 전 구간은 왜 백두대간에 포함되지 못했을까? 그것은 낙동정맥이 여러 정맥과 이어지지 않는 데 있다. 그러니까 태백산에서 소백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서쪽으로 여러 크고 작은 능선과 연결되며 국토의 서쪽을 형성하고 있다. 낙동정맥은 이에 비해 세기가 약하고(이견이 없을 정도로), 이 능선은 무엇보다도 낙동강을 분명하게 가른다. (<산경표>에서 대간의 정의를 이렇게 표기했다. '대간은 나라의 물줄기를 동서로 나눈다') 이러한 분류 체계에 지금 누구도 반대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게다가 확실히 한반도의 산줄기를 '산맥'이라고 부르기보다 '대간'이나 '정맥'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발음하기가 한결 부드럽기 때문이다. 특히 정맥이라는 말은 따뜻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핏줄' 같은 느낌도 드는데, 따라서 어쩌다 정맥의 산들을 걸을 때면 펄떡펄떡 꿈틀대는 생명체를 탐구하는 기분까지 들었던 것이다. (나의 낙동정맥에 관한 호기심은 여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구봉산 정상. 작은피재에서 30분쯤 올라가면 나온다. 조망이 좋지 않았다. 날씨가 좋았어도 주변 잡목 때문에 경관을 살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자, 그럼 낙동강 동쪽에 있는 따뜻한 핏줄 같은 능선을 타기 위해 뭘 준비해야 할까? 고민을 좀 했다. 무겁고 두꺼운 차림보다 가볍고 얇은 차림으로 평소보다 살짝 빠르게, 더 멀리 움직이면 낙동정맥과 더 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른바 '패스트 패킹(트레일러닝과 백패킹을 결합한 종목)'을 해볼 계획이었다. 누구와 함께하면 좋을까? 한국 여자 트레일러닝 선수로 오랫동안 상위권 순위를 점령 중인 장보영과 3년 전 호상사에 입사해 백패킹에 빠져 있는 문학수 주임이 참여하기로 했다. 종주를 떠나기 전 나는 두 사람에게 주문했다.

"28리터 배낭에 1박 2일 짐을 챙겨오세요! 무거운 건 다 빼고 최대한 가볍게요!"

그러자 둘 다 똑같이 되물었다.

"28리터요? 그게 가능한가요?"

내가 다시 대답했다.

"그럼요. 할 수 있습니다."

유령산 정상. 우보산, 느릅령산이라고도 한다. 산 아래 큰 고개가 있는데, 고개 이름이 느릅령이다. 느릅나무가 고개에 많았다고 해서 이름 붙었는데, 느릅나무보다 넘어재, 넘을재에서 온 말일 수도 있다고 지역에서는 추측한다.

3월 첫 주 우리는 새벽 5시에 서울을 떠나 강원도 태백에 도착했다. 정선에 이르자 눈발이 날렸다. '곧 그칠 거야'라고 생각했다. 태백으로 넘어가는 두문동재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발은 더 굵어졌다. 게다가 주변은 온통 흰 눈밭이었다. '큰일났네'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수열 사진기자가 툴툴댔다.

"3월에 눈이라니. 패스트 패킹은 내가 4월에 하자고 했잖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문학수 주임은 신난 것 같았다. 이번 겨울에 설산 산행을 제대로 못 했다고 했다. 장보영 선수는 눈이 오건 말건 별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침 먹을 거죠?"

삼수령으로 올라갔다. 거긴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삼수령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휴게소에선 라면만 판다). 휴게소 정의길 사장은 관광버스 타고 오는 등산객들이 아주 싫다고 했다.

"그 사람들 오면 온 천지가 쓰레기장이 돼요. 가게에 들어와서 라면 한 그릇 시켜놓고 대여섯 명이 앉아 있다가 가요. 아휴!"

느릅령에 도착한 일행. 고개 정상에 큰 산신당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매년 봄 이곳에 올라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산신당 옆에 쓰레기가 많았다. 우리는 산신당 옆 공터에 텐트를 쳤다.

머쓱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휴게소를 등지고 보이는 세 갈래 도로 중 가장 왼쪽의 것을 타고 올라갔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만나는 매봉산 꼭대기에 들르기로 했다. 올라갈수록 눈이 많아졌다. 바람도 세게 불었다. 흰색 렌즈가 장착된 선글라스를 쓴 것처럼 주변이 온통 하얗다. 등산로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임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밭에 들어갔다가 숲에 들어갔다가 하면서 겨우 매봉산에 올랐다. '낙동정맥 분기점 표지석이 어디 있지?' 나는 여기로 오기 전 인터넷에서 봤던 커다란 돌덩이('낙동정맥 예서 갈래치다'라고 쓰여 있음)를 찾아 두리번댔다. 발 앞엔 매봉산 정상석밖에 없었다. 욕을 먹을까봐 두려웠던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매봉산엔 어차피 올라왔어야 해요. 여기가 분기점이 맞기도 하니까!"

일행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올라왔던 길을 따라 우르르 내려갔다. 눈길이 중간에 끊어져서 다시 임도로 나왔다. 화이트 아웃 속에서 휴대폰 지도를 꺼내 진짜 분기점을 찾아 손가락을 놀려댔다. "여기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길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 속을 뚫고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분기점 표지석을 보지 못했다. 눈을 헤치며 비탈을 내려가느라 모두 표지석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등산로에서 올라가는 방향에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우리는 곧 널찍한 국도가 지나는 작은피재로 내려와 구봉산을 향해 오르막을 올랐다.

느릅령에서 통리역으로 가는 길. 가파른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끝에 전망대가 있는데, 2~3인용 텐트 2동 정도 펼칠 수 있는 데크가 있다. 스키장 슬로프처럼 눈이 덮여 있는 곳은 배추밭이다.

나는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지고 온 종이지도를 자주 펴서 확인했다. 우리가 밟고 가는 능선 아래로 계곡이 보였다. 계곡은 구와우마을을 지나 황지동을 거쳐 상주와 구미, 부산으로 이어졌다. 어떤 거대한 존재의 근원을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눈 쌓인 능선에서 "훅"하고 생명체의 온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본 것 같기도 했다. 소름이 돋았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산길을 이어갔다.

느릅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눈을 헤치며 걷느라 허벅지가 뻐근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하다가 재빨리 텐트로 들어갔다. 아! 3월에 폭설이라니! 낙동정맥이 사람이라면 무심한 바위같은 성격을 가진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잠에 빠졌다. (2회에 계속)

느릅령에서 1시간 정도 산길을 타고 내려오면 통리역이다. 우리는 여기서 1구간을 끊기로 했다. 지금 역은 운영되지 않는다. 역 근처는 철길을 이용해 공원으로 꾸민 '오로라 파크'다.
3월 초, 사방이 온통 흰 색으로 덮인 태백 '바람의 언덕'을 오르는 중. 우리는 겨우 매봉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찾아 올라갔다.

태백에서 만난 사람들

삼수령 휴게소 정의길 사장

"쓰레기는 제발 되가져가세요!"

낙동정맥 1구간의 출발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삼수령에는 오래된 휴게소가 있다. '삼수령 휴게소'라고 하며, 정의길(71) 사장이 아내와 이곳에 거주하면서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다. 휴게소가 생기기 전 이곳은 지역민들이 고개에 차를 가지고 올라와 각종 먹거리를 파는 곳이기도 했다.

정의길 사장이 이곳에 휴게소를 차린 건 24년 전으로 그 전에 그는 매봉산 인근에서 배추 농사를 지었다. 1964년쯤 개발되기 시작한 바람의 언덕 첫 '입주자'이기도 하다.

그는 주말이면 삼수령이 전국에서 온 관광버스로 붐빈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린 손님들 대부분이 주변을 어지럽히는 통에 그들을 아주 싫어한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이곳은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까지 눈이 많이 내린다.

태백 개인택시 기사 소현규

"태백 사람들 인근 카지노에서 많이 일해"

그의 고향은 태백이다. 군 전역 후 객지생활을 하다가 태백으로 와 택시기사를 한 지 8년 됐다. 깔끔한 성격의 그는 택시가 더럽혀질까봐 보통 등산객들은 차에 태우지 않는다. 이것은 통리역에서 택시를 타는 등산객이 거의 없다는 증거고, 여기서 낙동정맥 구간을 끊는 사람도 얼마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눈 때문에 운행을 많이 못 했다) 그에 따르면 태백시민들 중 많은 수가 인근 카지노에서 일하고 그 외 사람들은 경동 광업소, 석포 제련소, 대한석탄공사 등지에서 일한다. 나머지 마을에선 배추와 곰취 어수리 등의 밭농사를 지으며 먹고 산다. 머지않아 근처에 여성 죄수들을 수용하는 교도소가 들어선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 시민들 의견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하지만 시에 젊은 인구가 없어 반대시위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산행길잡이

낙동정맥 1구간은 보통 매봉산 아래 분기점에서 시작해 경북 봉화군의 석개재까지 끊는다. 우리가 낙동정맥을 찾은 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운행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어 통리역에서 1구간을 마무리했다. 이 구간에서 길 찾기에 유의할 지점은 딱 한 군데 있다. 낙동정맥 분기점 표지석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표지석은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갈림길 부근에 있다. 삼수령휴게소를 등지고 보이는 맨 왼쪽 임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두 갈래 갈림길과 마주치는데, 여기서 왼쪽에 낙동정맥 능선을 탈 수 있는 산길이 나온다. 산길로 들어간 다음 오른쪽으로(종주 진행방향은 왼쪽) 50m가량 올라가면 분기점 표지석이 있다. 이 외에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 잘 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도차도 얼마 없어 비교적 편하게 능선을 탈 수 있다. 통리역까지 중간에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지점은 없다. 물을 충분히 챙겨가는 것이 좋다. 통리역 바로 앞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여기서 숙박하고 다음 구간을 이어가는 것도 좋다.

교통

태백시에서 삼수령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없다고 봐야 한다. 터미널에서 13-5, 13-4번 버스가 평일 1회 출발한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태백시에서 삼수령까지 요금 1만5,000원 정도 나온다. (개인택시 소현규 기사, 010-3366-2133)

맛집

태백시는 물닭갈비가 유명하다. 옛날 탄광에서 일했던 광부들이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일하다가 칼칼해진 목을 진정시킬 목적으로 일반 닭갈비에 매콤한 국물을 넣어 먹었던 것이 유래다. 물닭갈비를 만들어 파는 식당이 여러 군데 있는데, 태백닭갈비(강원도 태백시 중앙남1길 10, 033-553-8119)가 인기 있다. 냄비에 미나리를 산더미처럼 올려 내오는 게 특징이다. 1인분 1만 원.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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