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직전 멈춘 ‘자유로운 욕망의 연대’ [책&생각]

한겨레 2024. 4.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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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에펠탑과 결혼한 여자의 에피소드를 본 적 있다.

인간이 사물에 느끼는 성적 욕망은 소위 "정상적"이지 않다는 전제가 여기 깔린다.

세상은 다양한 욕망이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어떤 욕망은 소수자에도 포함하지 않고 변태적인 페티시즘으로 분류하고 제외한다.

건물 침입이나 절도 같은 위반이 결부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욕망만으로는 법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암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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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l 리드비(2024)

언젠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에펠탑과 결혼한 여자의 에피소드를 본 적 있다. 공공건물과 결혼해도 될지와 같은 법적 문제는 제외하고라도 이런 사물기호증 케이스는 보는 이에게 사뭇 색다른 감정을 안긴다. 이미 ‘서프라이즈’의 소재라는 건 많은 이들이 놀라워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사물에 느끼는 성적 욕망은 소위 “정상적”이지 않다는 전제가 여기 깔린다. 그렇다면 “정상” 욕망이란 무엇인가?

아사이 료의 ‘정욕(正欲)’은 제목대로 “올바른 욕망”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설이다. 첫머리에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욕망을 품고 있기에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이의 선언문이 나온다. 곧이어, 아동 성 착취물 적발 사건에 관한 기사가 인용된다.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와 식품 회사의 직원, 국공립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세 명이 아이들과 물대포 놀이를 하면서 찍은 영상을 공유했다는 혐의이다. 교사인 야다베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이 파티의 리더이자 대기업 직원인 사사키는 혐의를 부인하고, 대학생 모로하시는 이에 대해 침묵한다. 이 사건은 과연 아동을 자신들의 성적 만족을 위해 착취한 범죄일까? 사사키와 모로하시에겐 변호의 여지가 있을까? 혹은 전혀 없을까?

2013년 ‘누구’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국내에도 알려진 아사이 료는 다수에 편입되지 못하는 청년들의 분리 감각에 대한 소설들로 독자의 공감을 샀다. 현대인의 불안을 미묘하게 포착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정욕’은 올바른 욕망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두려움을 더 선명하게 발화하는 데 중점이 있다. 소설은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사건을 구성한다. 평범하게 연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젊은이들, 등교를 거부하는 초등학생을 둔 아버지, 어느 순간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다양성이란 현대 사회의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상력을 시험하는 단어”(220쪽)일 뿐이다. 세상은 다양한 욕망이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어떤 욕망은 소수자에도 포함하지 않고 변태적인 페티시즘으로 분류하고 제외한다. 소설은 일정한 욕망만이 허락되는 사회에 던지는 거대한 질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욕’은 보이기만큼 도발적이지는 않다. 사사키와 모로하시를 비롯해 사사키의 중학교 동급생인 나쓰키가 품은 욕망은 남과는 달라도 범죄성에 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있다. 건물 침입이나 절도 같은 위반이 결부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욕망만으로는 법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암시도 있다. 다만 처음 기사에서 소아성애적 의도를 명백히 품은 것으로 밝혀진 인물은 작품의 목소리에서는 아예 제외되었다. 아동 대상 착취 범죄를 반대하는 작가의 엄정한 선 긋기이다. 또한, 소설은 개인적 경험으로 이성애적 성욕에 거부감을 품게 된 야에코라는 인물을 통해서 “머릿속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취향 존중의 시대이다. 그러나 어떤 욕망은 취향으로 존중할 수 없다. ‘정욕’은 사회가 그은 선을 넘는 욕망을 그리려 했으면서도 그 선을 지키는 역설 속에 남은 작품이다. 머릿속에 치솟는 욕망과 그를 다수와의 관계 안에 포함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해야겠지만 이 소설이 그런 노력의 한 모습일 수는 있겠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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