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음색’ 위해 피아노는 20톤 장력을 견디고 [책&생각]

임인택 기자 2024. 4. 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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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대표작가 궈창성 국내 첫선
21년 타이베이도서전 소설 대상
대만문학 금상의 ‘피아노 조율사’
욕망·고통·상실의 음악적 고백
국내 처음 작품으로 만나는 대만 작가 궈창성(60). 그의 소설 ‘피아노 조율사’는 1996년 첫사랑과의 결별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 경험이 고독, 환멸, 이별, 죽음의 감정을 불렀다고 지난해 1월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 소설은 14개 이상의 언어권으로 번역 소개되어 왔다. 대만 문화부 누리집 갈무리

피아노 조율사
궈창성 지음, 문현선 옮김 l 민음사 l 1만5000원

이 소설을 읽으며 철학자 김진영(1952~2018)이 죽음을 앞두고 쓴 일기 ‘아침의 피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말했었다. 음 하나를 더하면 기쁨이 되고 음 하나를 빼면 슬픔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이야.”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 낼 뿐이다.”

모든 상념을 아울러 ‘자유는 몸과 함께 머무는 행복’이라 갈망하던 ‘아침의 피아노’ 속 통각 내지 통찰의 대만식 장르 변주가 ‘피아노 조율사’다. 다만 소설이라 겨우 조금 더 낙관해볼 뿐, 욕망과 고통과 상실의 비의적인 고백, 현의 음색만큼이나 묘사하기 어렵고 때로 상충하는 생의 감각이 하나는 에세이로, 하나는 소설로 정교하고도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활자화된다.

김진영에게서 그리 되었듯, 소설 초반 몇 대목에 붙들린 독자라면 말미까지 떨치기 어려우리라. “모든 사람이 공명의 방정식을 가지고 태어난다. …운이 좋은 사람은 망망한 세상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명을 깨우는 모종의 진동을 찾아낼 수 있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일 수도 있어. …우리는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기보다 흘러간 과거를 듣는다고 하는 게 맞아. 각각의 건반이 토해 내는 것이 바로 그 순간일 뿐이니까.”

연주가 그러할진대 피아노 자체가 과거를 품고 있음은 물론이요, 소설 ‘피아노 조율사’의 원제가 ‘피아노를 찾는 사람(尋琴者)’인 까닭이 미뤄 짐작된다. 소설은 시간과 화해하려는 몸짓이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대만 작가 궈창성(60)은 국립타이베이교육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삼십대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10년 넘는 공백 뒤 창작을 재개했다. 극작가, 연극 연출가로도 활동해 온 작가는 “13년 동안 내면 깊은 곳의 회의감, 상처의 누적에 따른 피로와 미망을 마주한 결과”가 바로 2020년 현지 출간된 ‘피아노 조율사’라고 한다. 사연을 다 알긴 어렵다. 다만 “배신과 배척, 생이별과 사별을 겪은 뒤에야 오롯이 인성만 추구하는 날에 이른 듯”하다는 지금 소회가 소설의 각주임엔 틀림없다.

‘과거’라는 악보를 찾아 연주해보니, 어떤 화려한 과거도 어떤 누추한 현재보다 화려할 수 없다고, 주인공은 40대가 되어 이제 그 현재를 받아들이려 한다고 한 줄 독후감이 필요하다면 적어볼 요량이다.

‘나’는 마흔세살 피아노 조율사다. 서른 지나 탈모가 시작된 민머리에 얼굴도 볼품없다. “주제 파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작곡가·연주자와 달리, 조율사의 분수가 그러하다. 진심일까. 한때 절대 음감과 뛰어난 악보 기억력을 지닌 음악 신동이긴 했다. 초등학교 때 ‘나’를 아껴 “포기하지 않고 계속 피아노 치겠다”는 약속을 받아간 여교사 추가 있었고, 피아노 근처에 겨우 맴돌던 17살 때 추 선생의 제자로 소개받은 34살 또 다른 영재 피아니스트 조지프가 있었다. 그리고 가난하고 무지한 만두장수 부모가 있었다. 재능을 타고난 소년이 (매우 뛰어나긴 하지만) 피아노 조율사가 되기까지가 소설의 한 축이다.

다른 축에 예순살 린쌍이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력 인사와 어울리는 사업가다. 183㎝ 장신에 돋보이는 은발 곱슬, 점잖은 보수주의자. 자신보다 스무살 적은 아내 에밀리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아내를 위해 업라이트 피아노(현을 세움)인 뵈젠도르퍼를 내보내고 그랜드 피아노(현을 눕힘)인 스타인웨이를 집에 들였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구분 못 했던 린쌍이 아내가 연주해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에 불현듯 공명된다. “너무 슬픈 거 아니냐”고. 그 아내가 결혼 4년도 되지 않아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보칼리제’로 죽은 어머니를 떠올린 순간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아내는 음악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에밀리의 피아노들을 조율한 이가 ‘나’다.

린쌍은 학원을 처분하려 한다. “오래된 피아노 같았”던 린쌍과 단 한번 “피아노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나’가 만나게 되는 계기다. 불협화음에 가까운 둘의 만남은 서로의 비밀을 하나씩 드러내는 악장이 된다. “하모니는 관계다. 관계는 모두가 음악이다.” 장조와 단조로만 구분될 수 없는 세계에서, 실상 린쌍은 깊은 외로움과 배신의 상처를 간직해 왔으며 ‘나’는 깊은 절망감과 자기연민, 분노를 자신도 모르게 발산하는 중이었다. 아니, 작중 인물 누구도 과거 열망에 견주면 제대로 조율된 삶을 산다 할 수 없다. “세상에는 완벽한 음을 가진 피아노가 없다. 연주자는 조율사가 조정한 건반을 연주할 수 있을 뿐이다.” 아니다, 삶의 조율사란 게 있기는 할까. 에밀리와 추 선생은 꿈을 이루지 못한 음악가로 그 욕망을 제자들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투사했다. 일탈이었기에,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를 입히는 정동. 17살 ‘나’를 다시 음악으로 일깨워주던 영재 피아니스트 조지프도 자신의 동성 연인 때문에 나를 배반한다.

에밀리의 외도를 목도했던 ‘나’는 실상 린쌍을 동정했으나 이 또한 자기연민이며 분노의 표출이다. 막상 린쌍 역시 아내가 죽기 전부터 외도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니, 그 연민이 설 자리가 없을 뿐이다. 상실과 집착이 재능과 열정을 삼켜버린 과거를 ‘나’는 비로소 현재와 ‘조율’해 보려는 듯하다.

“피아노 현의 장력은 한 줄당 평균 73㎏이다. 모든 현을 합치면 피아노 한 대가 20톤의 중량을 견딘다. 피아노가 은은한 음색을 낼 때 본체는 거대한 장력을 감당해야 한다”는 명제는 삶의 진리 같다. 명료한 물리적 사실로부터 ‘은은한 음색’과 같은 모호한 삶의 가치가 추구되기까지. 그러니 진실은 이렇게도 표명되겠다.

“음악은 우리에게 시간을 들려주거든.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들려줘. 누구도 음악이 피아노가 아니라 내 그림자 속에 있다는 건 말해주지 않았지.”

결국 이른 죽음으로 제 삶을 감당못한-아마 17살 ‘나’가 사랑했던-젊은 영재 피아니스트가 했던 얘기다. 소설 속 실재한 인물로서, 라이브 연주를 중시하고 녹음을 거부했던 러시아의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1915~1997), 반면 가장 훌륭한 음악은 녹음실에 있다고 고집했던 캐나다의 글렌 굴드(1932~1982), 굴드와 같은 해 태어나 존재감 없이 피아노 교습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일흔 다 되어 출연한 심야방송 연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일본의 후지코 헤밍(92)까지 음악도, 삶도, 진실도 다양하다. 뉴욕엔 영재라 불리던 숱한 예술인들이 배회하고, 세계 가장 큰 중고 피아노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궈창성은 “원래 우리는 육체가 없는 영혼에 불과했다”는 소설 첫 문장을 적자 모든 이야기가 펼쳐졌다고 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첫 문장을 쓰자 생명 속 모든 광기와 희열과 슬픔과 고독이 순식간에 집중돼 물러설 수 없었다 했던 버지니아 울프에 빗대면서다. 철학자 김진영도 그 문장에 사로잡혔었다. “댈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기가 사겠다고 말했다.” 철학자는 그것을 “해맑은 아침 햇빛”으로 감각한다. ‘샀다’가 아닌 ‘사겠다’의 삶을 죽음 앞둔 철학자는 이미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궈창성이 그것을 조금 길게 펼쳐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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