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잡초’의 그림과 ‘난초’의 결말

관리자 2024. 4.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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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마지막 장을 덮은 화가가 오원(吾園) 장승업이다.

고삐 풀린 성정(심성)을 지닌 오원이라 '술에 취한 그림의 신선' 곧 '취화선(醉畵仙)'이란 별명조차 그럴싸했다.

젊어서 중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끼니를 때운 오원은 타고난 그림 솜씨 하나로 감찰 자리를 얻었지만 그마저 잠시에 그쳤다.

오원 그림은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충동과 기이하고 환상적인 기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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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보면 똑같이 베끼는 재주로
감찰자리까지 얻은 오원 장승업
관찰·묘사력·채색 남달라 ‘감탄’
화가의 파격·일탈은 생래적 습성
‘고사세동도’ 예찬의 결벽증 그려
고상한짓만 골라했지만 결국엔…
장승업의 ‘고사세동도’(19세기, 비단에 담채, 141.5×40㎝, 리움미술관 소장)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장을 덮은 화가가 오원(吾園) 장승업이다. 그는 분수처럼 솟는 창작력으로 다른 화가를 기죽였다. 하루에 백점을 그려댈 기세가 넘쳤고, 쓱 보면 똑같이 베낄 줄 아는 재주가 남달랐다. 고삐 풀린 성정(심성)을 지닌 오원이라 ‘술에 취한 그림의 신선’ 곧 ‘취화선(醉畵仙)’이란 별명조차 그럴싸했다.

오원의 이 작품은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다. ‘고상한 선비가 오동나무를 닦는 그림’이란 뜻이다. 길쭉한 화면을 차지한 오동나무는 주름투성이다. 받침대에 한발을 위태롭게 디딘 아이가 수건으로 샅샅이 나무를 닦는다. 탁자 위에 물 단지를 통째 올려놓은 걸 보면 닦고 또 닦을 요량이다. 석상에 기댄 사내는 다리를 꼬고 독서하는데, 읽고 또 읽는 일로 하루가 저무는 그의 삶이 한가롭다.

이 그림에 무슨 이야기가 숨었을까. 그림의 주인공은 원나라 문인화가인 예찬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학문과 예술에 빠져든 그는 골동과 악기와 서책을 사 모았다. 거처하는 곳은 소나무·계수나무·대나무로 수풀을 이루고, 바람 부는 날이면 그곳에서 시를 읊조렸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그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걸핏하면 목욕을 했고 세수할 때는 물을 몇차례나 갈아야 직성이 풀렸다. 의복도 하루에 서너번씩 갈아입고, 정원에 있는 괴석이나 나무를 종일토록 씻고 닦도록 시켰다. 이런 결벽증이 ‘고사세동도’의 모티브가 된 셈이다.

난초 향기처럼 처신하던 예찬에 비하면 장승업이란 화가는 파란곡절을 있는 대로 겪은 잡초였다. 족보 없이 자랐고 공부 밑천은 아예 쌓지 못한 처지라서 오원은 제 이름 석자를 겨우 익혔다. 이 그림에 적힌 멋들어진 제목 글씨도 후배 화가인 심전(心田) 안중식이 대신 써줬다.

젊어서 중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끼니를 때운 오원은 타고난 그림 솜씨 하나로 감찰 자리를 얻었지만 그마저 잠시에 그쳤다. 그는 주색과 놀아나기를 즐겼고 탕아 기질을 도통 버리지 못한 인물이었다. 벼슬아치들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실물을 빼닮게 그려내는 오원의 묘사력에 감탄하면서도 돌아서서는 “문자의 향기나 독서의 기운이 전혀 없는 환쟁이”라고 쑥덕공론하며 비웃었다.

예찬의 돋보이는 문인화는 깊은 사유와 우아한 취향이 서려 있다. 손으로만 익힌 솜씨를 얕잡아보던 지배층 문인들은 오원 같은 화가를 귀애하지 않았다. 오원 그림은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충동과 기이하고 환상적인 기운이 감돈다. 능란한 붓놀림과 거칠 것 없는 감각의 채색이 그의 장기다. 잽싸게 몸을 놀리는 한순간마저 스틸 사진처럼 포착하는 오원의 눈썰미는 탄성이 나올 정도다.

파격과 일탈은 오원의 생래적 습성이었다. 그의 성품을 제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비난은 학의 긴 다리를 잘라내는 독단이다. 전설에 따르면 오원은 어느 날 사라져 신선이 되었다. 고상한 짓 골라 하던 예찬의 결벽증은 어떻게 됐냐고? 분뇨 통에 빠지는 벌을 받았다는 후일담이 나돈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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